도장은 단순한 색칠이 아니다
8단 공정·블렌딩 면수·수용성 전환 — 도장이 견적의 한 단을 차지하는 이유
이 글은 《공업사 견적사》 시리즈 5편이다. 4편이 판금이냐 교환이냐의 결정을 다뤘다면, 이번 편은 그 결정 다음에 오는 단 — 도장 — 으로 들어간다.
한 면 도장은 한 번의 칠이 아니다
차주 입장에서 도장은 "색칠"이다. 펜으로 그리듯 한 번 쓱 칠하고 말리면 끝나는 작업처럼 보인다. 안에서 보면 8단 공정의 합이다.
| 단계 | 작업 | 시간 |
|---|---|---|
| 1. 탈부착 | 도장할 부재를 차량에서 분리 또는 마스킹 | 부재당 0.5~2시간 |
| 2. 연마 | 손상 부위 도장면을 사포로 갈아내기 | 0.5~3시간 |
| 3. 퍼티 | 변형부에 퍼티 충전 후 평탄화 | 1~4시간 |
| 4. 서피서 | 중간 코트. 퍼티 위·노출 외판 위에 도포 | 0.5~1시간 |
| 5. 중도 | 본 색상층의 베이스 | 0.5~1시간 |
| 6. 상도 | 본 색상 도포 (단색 또는 펄·메탈릭) | 1~2시간 |
| 7. 클리어 | 보호 코트 (광택 결정) | 0.5~1시간 |
| 8. 열처리 | 부스에서 가열 경화 | 1시간 |
한 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도장하면 6~12시간이 든다. 같은 차의 면 N개를 동시에 처리하면 단계별로 묶어서 작업하므로 면당 시간은 줄어든다. 운산 G63 견적의 도장 4면(범퍼·후드·휀다·루프)도 동시 진행됐다.
각 단계마다 기술이 갈린다. 퍼티가 평탄하지 않으면 상도 후 평탄도가 일그러진다. 서피서가 부족하면 본 색상이 떠 보인다. 클리어 두께가 불균일하면 광택이 어긋난다. 열처리 온도가 안 맞으면 도장이 갈라진다. 이 단계 어느 한 곳에서 실수가 있으면 도장 전체를 다시 한다.
이 8단을 매일 반복하는 도장기사가 한국에 점점 줄고 있다. 견적사와 마찬가지로 5년 이상 경력자가 시장에서 매우 귀하다.
색상 매칭 — 같은 코드도 다른 색이다
차량 색상은 보통 코드로 정해져 있다. 보디 라벨(운전석 도어 안쪽 또는 엔진룸)에 적힌 3~4자리 코드. 메르세데스 G63의 Obsidian Black 코드는 197이다. 도장기사는 이 코드를 보고 베이스 색을 잡는다.
그러나 같은 코드여도 색이 다르다. 차량 연식·노출·관리에 따라 도장면이 미묘하게 달라진다. 5년 운행한 차량의 197과 신차 197은 시각적으로 차이가 있다. 그래서 실무에서는 분광계 또는 색상 매칭 카메라로 실제 색을 측정한다.
측정 후 조색 작업이 들어간다. 베이스 색을 기준으로 흰색·검정·청색 등 색소를 미세 조정한다. 같은 차량의 다른 면에 테스트 분사를 해서 색상 일치를 확인한다. 일치하면 본 도장으로 들어간다.
이 조색 시간이 견적에서 자주 누락되는 항목이다. 표준 작업시간표에는 조색 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비표준 색상이거나 노후 차량은 표준 시간을 넘어간다. 견적사가 사진과 측정값으로 추가 시간을 방어해야 보험사가 인정한다.
면수의 정치학 — 블렌딩이 견적의 한 카드다
견적사가 도장에서 가장 오래 고민하는 건 단가가 아니라 면수다.
차주는 보통 "본 부위만 도장하면 안 되냐"고 묻는다. 답이 두 갈래다.
한 면만 도장 가능한 경우. 흰색·검정·은색 같은 단색은 인접 면과의 차이가 적다. 같은 코드면 색이 비슷하게 나온다. 블렌딩 없이 본 면만 도장해도 무난하다.
인접 면까지 같이 가야 하는 경우. 펄·메탈릭 색상은 빛이 닿는 각도에 따라 색이 다르게 보인다. 같은 코드여도 분사 패턴·도장 두께가 미세하게 달라서 본 면만 도장하면 인접 면과 색 차이가 보인다. 인접 면 1~2개에 같은 색을 얇게 덧입혀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작업이 블렌딩이다. 색 매칭이 까다로운 경우 블렌딩 면수가 더 늘어난다.
운산 G63 견적의 도장 면이 4면(범퍼·후드·휀다·루프)인데, 사고 손상이 4면이라기보다 인접 영향까지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다. G63은 Obsidian Black 메탈릭이라 블렌딩 범위가 넓다.
블렌딩 면수가 견적의 30%까지 갈라낸다. 한 면당 단가가 40~90만 원이라 한두 면 차이가 100만 원 이상이다. 차주가 "왜 이렇게 비싸냐"고 묻는 견적의 한 부분이 이 블렌딩이다.
운산 표준은 입고 시 차주에게 블렌딩 범위에 대해 미리 동의를 받아 두는 것이다. 출고 후 "색이 안 맞는다"는 클레임의 90%는 입고 시 블렌딩 동의가 없었던 케이스다. 동의 카톡 한 줄이 분쟁을 막는다.
부재별 단가 — 면적과 평탄도가 결정한다
운산 G63 견적의 도장 단가를 부재별로 보면 다음과 같다.
| 부재 | 단가 (수용성) |
|---|---|
| 프런트 범퍼 | 550,000 |
| 후드 | 700,000 |
| 앞 휀다 (편측) | 400,000 |
| 루프 패널 | 900,000 |
루프가 90만 원으로 가장 비싸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면적. 루프는 차량 외판 중 면적이 가장 크다. 도장재료비와 부스 점유 시간이 가장 길다.
평탄도. 루프는 차주가 자주 직접 보지 않지만, 평탄도가 어긋나면 인접 부재의 빛 반사가 일그러져 보인다. 햇빛 아래에서 차량을 옆에서 봤을 때 루프의 평탄도가 도드라진다. 그래서 도장 후 평탄도 검사가 가장 까다로운 부재다.
후드 70만 원, 범퍼 55만 원, 휀다 40만 원도 같은 논리로 정해진다. 면적이 큰 순서·평탄도가 까다로운 순서로 단가가 배열된다. 도어 한 짝의 단가는 휀다와 비슷하거나 약간 높다.
이 단가는 운산 자체 단가다. 다른 공장은 더 낮을 수도 있고 더 높을 수도 있다. 단가를 정하는 건 공장의 도장 부스 시설·도장기사 인건비·도장재료 매입 단가의 합이다.
수용성으로 가는 흐름
운산 G63 견적에 적힌 도장 단가는 모두 "수용성"으로 명기돼 있다. 이게 점차 한국 정비 애프터마켓의 표준이 되고 있다.
수용성 도장은 물 베이스 도료를 쓴다. 휘발성 유기화합물(VOC) 배출이 적어 환경 규제 대응이 가능하다. 색상 안정성도 유성 도장보다 높다. 단점은 도장 부스의 습도·온도 환경에 민감하다는 점이다. 부스 시설을 갖추지 못한 공장은 수용성 도장이 어렵다.
수도권의 일부 지역은 수용성 도장으로의 전환이 환경 규제에 의해 강제되는 흐름이다. 광명시흥 같은 신산업단지는 입주 단계에서 도장 시설 기준이 더 엄격하다. 운산자동차의 광명시흥 신공장 이전이 이 흐름의 한 자리에 위치한다.
차주 입장에서 "수용성"이라는 단어는 견적서에서 의미가 두 가지다. 첫째, 환경 규제에 맞는 도장이라는 것. 둘째, 단가가 유성보다 약간 높을 수 있다는 것. 두 번째는 부스 시설·재료 단가의 차이에서 온다.
도장 다음의 광택
도장 작업이 끝나면 광택 마감이 들어간다. 운산 G63 견적의 "외부 광택(유리 파편) 조정 200,000원"이 이 단계의 기록이다. 사고 시 유리 파편이 외판에 박힌 흔적을 광택으로 마감한 작업이다.
광택은 도장 단계가 아니라 부대비용이다. 견적서에 별도 줄로 적힌다. 도장 후 광택을 안 하면 도장면이 거칠게 보이거나 인접 부재와의 광택 차이가 두드러진다. 그래서 사고 차량 도장 작업의 마지막은 거의 항상 광택이다.
이 부대비용을 견적에서 빠뜨리면 운산이 손해다. 광택 작업 시간도 들고 광택 재료도 든다. 그래서 견적사가 작업 흐름의 맨 끝까지 그려서 견적을 짜야 한다.
한 줄 — 도장은 면수와 매칭의 정치학이다
도장은 한 번 칠하는 작업이 아니라 8단 공정의 합이고, 단가는 시간과 재료가 아니라 면수와 매칭으로 결정된다. 같은 차종 같은 색이어도 답이 매번 다른 이유다.
견적사는 입고 시점에 면수·블렌딩 범위·차주 의향을 한 번에 정리해 동의를 받는다. 이 동의가 없으면 출고 후 색상 클레임이 분쟁이 된다. 카톡 한 줄의 무게가 견적 단가의 30%를 지킨다.
다음 편은 보험수리 견적의 한복판으로 간다. AOS와 손해사정사 — 보험사·정비공장·차주 사이의 줄다리기.
출처
-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 제89호의2 (자동차 점검·정비 명세서 양식)
- 수도권 도장 시설 환경 규제 — 환경부 공시 자료
- 한국공제보험신문 — 정비 견적 이슈
- 운산자동차 자동차 점검·정비 명세서 (115어1600 G63 AMG, 2024-03-20)
- 사다리 신공장 시리즈 신공장 OEM 종합 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