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 전쟁 — 대면 설계사 vs 다이렉트, 공업사가 체감하는 차이
가입 경로가 바뀌면 공업사 카운터 풍경도 바뀐다
이 글은 《공업사 사장이 본 자동차 보험 생태계》 시리즈 8편이다. 6~7편에서 대형 4사와 중견·중소 회사를 봤다면, 이 편은 한 층 옆으로 움직여 채널을 본다. 같은 회사라도 어떤 경로로 가입했느냐에 따라 현장에서의 풍경이 달라진다.
카운터에 앉은 두 사람
오전 열한 시, 같은 공업사 카운터에 두 명의 차주가 차례로 앉는다.
앞의 남자는 범퍼를 긁었다고 전화로 먼저 접수 상담을 받고 왔다. 아는 설계사 이름을 먼저 꺼낸다. "○○보험 △△설계사님이 일단 입고 시켜두라고 하셨어요." 그 설계사가 공업사와 몇 년 된 관계라는 것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대화 전체가 느리고, 수리 기간이나 비용에 대해서는 거의 묻지 않는다.
뒤의 여자는 앱에서 접수를 완료하고 왔다. 사고접수번호를 외우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견적서·수리 진행 상황을 직접 확인할 계획이다. 수리 기간·대차 일수·자기부담금에 관해 구체적으로 질문한다. 앱 알림을 받아본 뒤 문제가 있으면 다시 보험사 콜센터에 전화를 걸 것이다.
두 사람은 같은 보험사의 같은 대물 상품에 가입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공업사에 들어오는 풍경은 다르다. 앞의 남자는 대면 설계사 채널을 통해 왔고, 뒤의 여자는 다이렉트 채널을 통해 왔다. 같은 보험사 같은 상품이라도, 공업사가 협의하고 응대하는 결이 다르다.
두 채널의 구조
자동차보험의 판매 채널은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대면(설계사·대리점)과 다이렉트(TM·CM).
대면 채널. 전속 설계사, 대리점(GA·법인대리점), 금융기관 제휴(은행·카드사 창구)로 세분된다. 공통점은 가입 과정에서 사람이 개입한다는 점이다. 설계사가 상품을 비교·설명하고, 가입자의 차종·운전 경력·특약을 맞춰 상품을 조립한다. 사업비가 더 들어가고, 보험료도 다이렉트 대비 높은 편이다.
다이렉트 채널. TM(Telemarketing, 텔레마케팅)과 CM(Cyber Marketing, 온라인·앱)으로 나뉜다. TM은 콜센터 상담원이 전화로 판매하고, CM은 가입자가 직접 웹·앱에서 가입을 완결한다. 최근에는 CM 비중이 꾸준히 커지는 흐름이다. 사업비가 적게 들기 때문에 보험료 자체가 대면 대비 낮다. 그 절감된 만큼이 가입자에게 할인으로 돌아가는 구조다.
대면과 다이렉트의 비중은 최근 10년 사이 빠르게 움직였다. 업계 통계 기준으로 다이렉트 비중이 자동차보험 전체의 과반을 넘긴 지 여러 해가 지났다. 대형 4사 안에서도 상품별로 다이렉트 비중이 상당한 수준까지 올라와 있다. 중견사 일부는 아예 다이렉트 중심 포지셔닝으로 잡고 있다.
왜 다이렉트가 공업사 협의를 빡빡하게 만드는가
이 채널 전환이 공업사 카운터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가. 한 줄로 요약하면, 다이렉트 비중이 늘수록 공업사 견적 협의가 더 엄격해진다.
메커니즘은 이렇다. 다이렉트 상품은 대면 대비 보험료가 낮다. 낮은 보험료는 곧 낮은 수입 보험료를 의미한다. 수입이 줄어든 상태에서 보험사가 같은 이익을 유지하려면 손해율(= 보험금 지급액 ÷ 수입 보험료)을 더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 손해율 관리의 핵심 변수가 곧 공업사 수리비 지급 규모다. 그러니 다이렉트 비중이 커질수록 대물 담당자는 견적 한 줄 한 줄을 더 엄격하게 본다.
이 구조는 공업사가 이미 체감하고 있는 흐름이다. 같은 범퍼 교체 건이라도, 몇 년 전보다 지금이 견적 협의가 더 오래 걸린다. 공임 단가의 수용 폭이 줄어들었고, 재생부품 인정 범위가 넓어졌고, 경미손상 기준이 여러 차례 개정됐다. 이 모든 변화의 배경에는 채널 전환으로 인한 수입 구조 변화가 깔려 있다.
대면 채널의 다른 얼굴 — VIP·단골 루트
그렇다고 대면 채널이 공업사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것은 아니다. 대면 채널에도 고유한 특성과 리스크가 있다.
대면 설계사 채널의 핵심은 관계다. 설계사와 가입자의 관계가 길고, 설계사와 공업사의 관계도 길다. 설계사는 가입자가 사고를 냈을 때 "어느 공업사에 입고하면 좋다"고 추천해 주는 송객 루트가 될 수 있다. 이것이 대면 채널을 통한 VIP·단골 유입의 구조다.
공업사 입장에서 이 설계사와의 관계는 자산이다. 몇 년을 쌓으면 일정한 입고 건수가 꾸준히 들어온다. 가입자가 바뀌어도 설계사가 그대로 있으면 관계는 유지된다. 공업사 견적 협의에서도 설계사가 가입자 쪽 목소리를 대신 내주는 경우가 있다.
단, 이 관계는 양날의 검이다. 설계사 중심 관계가 지나치게 강해지면, 견적 협의 과정에서 설계사가 공업사에 이런저런 요구를 하게 된다. 특정 부품·특정 공임·특정 대차 조건 등. 그 요구가 선을 넘으면 보험사기 관련 리스크로 연결된다. 이 시리즈 뒷부분(특히 22~27편)에서 이 경계가 어디에 있는지 다룬다.
채널별 가입자 프로필의 차이
채널이 다르면 가입자 프로필이 다르고, 가입자 프로필이 다르면 사고 프로파일이 다르다. 공업사 카운터에 들어오는 건의 성격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대면 채널 가입자의 일반적 경향:
- 연령대가 높은 편. 중장년·고령층에서 비중이 크다.
- 차종은 세단·SUV 위주. 신차·고급차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 사고 유형은 저속 접촉사고·주차장 사고 비율이 눈에 띈다.
- 대인 사고의 경우 장기 입원·전문의 치료 요청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
- 수리 과정에 직접 개입하는 빈도는 낮다. 설계사나 보험사에 위임.
다이렉트 채널 가입자의 일반적 경향:
- 연령대가 낮은 편. 2030·4050 초반이 많다.
- 차종은 경차·준중형·수입차 엔트리급까지 다양. 가격 민감.
- 사고 유형은 속도 있는 접촉·차로 변경·추돌이 상대적으로 많음.
- 대인 사고에서 단기 통원·한의원 치료 비중이 상대적으로 큼.
- 수리 과정에 직접 개입하는 빈도가 높다. 앱으로 진행 상황 확인, 견적서 직접 검토.
이 경향은 어디까지나 평균이며, 개별 사례는 얼마든지 다르다. 다만 공업사 카운터에 앉은 차주가 앱을 열어서 사고접수번호를 보여주는 순간, 또는 설계사 이름을 먼저 꺼내는 순간, 그 뒤의 응대 방식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접수 시점에 채널을 어떻게 읽는가
공업사가 접수 시점에 이 채널 정보를 미리 읽어두면 이후 응대가 수월해진다. 확실한 읽기가 되는 신호들이 있다.
대면 채널 신호:
- 가입 설계사 이름을 기억하거나 휴대전화에 저장되어 있다.
- 보험사 콜센터 대신 설계사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상담한다.
- 사고접수번호를 문자가 아니라 설계사가 대신 알려준다.
- 수리 기간이나 대차에 관한 질문을 공업사에 거의 하지 않는다.
다이렉트 채널 신호:
- 앱 화면을 열어서 사고접수번호와 진행 상황을 보여준다.
- 보험사 콜센터 번호를 외우고 있다.
- 자기부담금·대차 일수·견적 내역을 구체적으로 질문한다.
- 수리 진행 중에도 앱 알림을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이 신호를 읽는 것은 고객을 차별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응대의 결을 맞추기 위한 것이다. 설계사 경유 가입자에게는 설계사와의 커뮤니케이션이 같이 움직여야 하고, 다이렉트 가입자에게는 앱·콜센터와의 흐름이 끊기지 않게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이 결을 못 맞추면, 같은 품질의 수리를 해도 고객 만족도가 다르게 나온다.
채널별 협의 전략의 차이
대물 담당자와의 협의도 채널에 따라 톤이 달라진다. 이것도 회사의 공식 정책이라기보다는 현장에서 반복되며 굳어진 경향에 가깝다.
- 대면 채널 건. 가입자와 설계사 사이의 관계가 있고, 설계사와 보험사 사이에도 관계가 있다. 협의 과정에서 가입자 만족도를 고려하는 여지가 상대적으로 넓을 수 있다. 다만 설계사가 개입해 견적에 무리한 요청을 하는 경우, 보험사 측 심사가 오히려 더 깐깐해지는 국면도 있다.
- 다이렉트 채널 건. 가입자 만족도는 앱 리뷰·콜센터 평가로 수집된다. 개별 건에서 보험사가 적극적으로 가입자 편을 들기보다, 표준 가이드대로 처리하는 경향이 더 강하다. 견적은 수치 기준으로 엄격하게 들여다본다. 감정이나 관계로 풀 여지가 상대적으로 좁다.
공업사 입장에서는 두 채널 건을 같은 방식으로 협의하면 안 된다. 다이렉트 건은 서류·사진·표준 기준으로 승부해야 하고, 대면 건은 관계와 맥락을 함께 쓰되 그 관계를 과용하지 않는 선에서 협의한다.
채널 전쟁의 중장기 — 공업사 생태계가 받는 영향
다이렉트 비중은 계속 올라갈 것이다. 인구 구조·디지털 전환·가격 민감도가 모두 그 방향으로 밀고 있다. 앞으로 5년간의 흐름을 공업사 생태계 관점에서 정리하면 대략 이렇다.
하나, 공임·부품 견적의 표준화가 더 엄격해진다. 다이렉트 비중이 커질수록 보험사는 전국 표준 가이드를 강하게 적용하려 한다. 지역별·공업사별 재량이 줄어드는 방향이다.
둘, 대면 채널이 남기는 VIP 영역은 오히려 프리미엄화된다. 전체 비중은 줄지만, 그 안에 남는 고가 차종·고령 차주 중심의 영역은 공업사에게 중요한 마진 원천으로 남는다. 외제차 전문, 복원 전문처럼 대면 채널과 강하게 묶인 공업사의 포지셔닝이 더 선명해질 여지가 있다.
셋, AI·전산 기반 견적 평가의 도입이 더 빨라진다. 다이렉트 비중 확대가 이 도입의 근거가 된다. 공업사 견적을 사진·전산 기반으로 일차 평가하고, 그 위에 담당자 판단이 얹히는 구조가 더 넓어진다. 공업사의 사진·서류·전산 역량이 예전보다 훨씬 중요한 경쟁력이 된다.
넷, 중견사 중 다이렉트 특화 회사의 비중이 더 커진다. 이들의 견적 기준은 더 빡빡해질 여지가 크다. 중견사 매출 비중이 큰 공업사는 이 흐름을 미리 예측하고 대응해야 한다.
공업사 사장에게 이것이 의미하는 것
채널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내 공업사에 들어오는 건의 성격을 분류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대면 건·다이렉트 건·VIP 루트·일반 루트. 이 분류가 가능해야 응대와 협의의 결을 맞출 수 있고, 장기적으로 어떤 포지셔닝으로 갈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모든 공업사가 모든 채널을 동일하게 처리할 필요는 없다. 어떤 공업사는 대면 설계사 경로를 중심으로 VIP·단골 루트를 두껍게 쌓아 올렸다. 어떤 공업사는 다이렉트 건을 빠르게 표준화해서 회전율로 승부한다. 둘 다 유효한 포지셔닝이되, 둘을 섞으려면 내부 프로세스가 그만큼 두꺼워야 한다.
다음 편에서는 이 채널 논의를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간다. 보험사들이 공업사 제휴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방식, 우량업체·협력업체·제휴업체라는 등급 구조, 그리고 그 네트워크 안에 들어가는 비용과 나가는 비용. 채널이 수요 쪽의 지도라면, 정비 네트워크는 공급 쪽의 지도다.
시리즈 예고 — 9편: "정비 네트워크 전략 — 우량·협력·제휴, 공업사 등급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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