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바이오해킹을 저속노화라고 부른다
러닝 인구 1,000만, 편의점의 저속노화 도시락, 2030이 절반인 웰니스 결제. 수요는 이미 흐르고 있다
이 글은 《사람 정비소》 3편이다. 2편에서 몸을 바꾸는 해외 사업의 세 가지 형태와 한국 이식 조건을 다뤘고, 이번 편은 그 수요가 한국에서 실제로 얼마나 크고 어떤 말로 흐르는지를 실측치로 확인한다. 시리즈 전체 보기 →
2025년 1월 넷플릭스에 다큐멘터리 한 편이 올라왔다. 몸에 연 수십억 원을 쓰며 노화를 되돌리겠다는 미국 사업가 브라이언 존슨의 「돈 다이」다. 국내 언론도 그를 소개했고, 측정과 개입으로 몸을 최적화한다는 "바이오해킹"이라는 말이 함께 들어왔다. 그런데 이 말은 한국에서 검색창을 크게 움직이지 못했다. 번역서 몇 권과 소개 기사가 전부다.
같은 시기 한국의 편의점 매대에는 다른 말이 올라가 있었다. 저속노화. 노년내과 의사가 쓴 책에서 출발한 이 단어는 혈당을 천천히 올리는 식사와 생활 습관을 뜻하는 말로 자리를 잡더니, 잡곡밥 간편식의 상품명이 되어 전국 편의점에 깔렸다. 같은 욕망이다. 몸의 시간을 붙잡고 싶다는 것. 미국에서는 억만장자의 실험 이름으로 소비되는 욕망이 한국에서는 4,000원짜리 도시락의 이름으로 소비된다.
사업을 검토하는 입장에서 이 차이는 장식이 아니라 본질이다. 수요는 언어를 타고 흐르고, 언어를 잘못 고르면 실재하는 수요 앞에서도 검색되지 않는 가게가 된다. 2편에서 해외의 사업 형태를 봤으니, 이번 편의 질문은 두 개다. 한국에서 몸에 돈을 쓰는 수요는 실측으로 얼마나 큰가. 그리고 그 수요는 어떤 말로 흐르는가.
숫자부터 본다. 지난 3년 사이 한국인의 몸 관련 소비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들이다.
러닝 붐은 얼마나 큰가
한국의 러닝 인구는 업계 추산으로 1,000만 명 규모다(2025년 보도 기준). 추산이라 폭이 있지만, 방향을 보여주는 단단한 숫자들이 따로 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조깅·달리기 경험률은 2021년 23%에서 2023년 32%로 올랐다. 성인 열 명 중 세 명이다. 마라톤 대회는 2024년 한 해 254개가 열렸고 참가자는 100만 명을 넘었다(경찰청 집계). 코로나로 대회가 멈췄던 시기의 기저효과가 커서 배수 비교는 의미가 없지만, 대회와 참가자가 매년 계단식으로 늘어난 것은 집계로 확인된다.
이 붐의 주인이 누구인지가 이 시리즈에는 더 중요하다. 2025년 서울하프마라톤 참가자의 71%가 20~30대였다. 마라톤이 중년의 운동이던 시절은 끝났고, 지금 출발선에 서 있는 것은 인증 문화와 함께 자란 세대다. 지갑도 같이 움직였다. 무신사에서 2025년 러닝화 판매량이 전년 대비 83% 늘었고, 한 러닝화 브랜드는 2024년 오프라인 매출이 한 해 만에 238% 뛰었다. 러닝 크루는 밴드·당근 같은 동네 플랫폼에서 수 배씩 늘어나는 중이다.
러닝 붐이 이 사업의 근거가 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돈이 안 드는 운동에조차 돈을 쓰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달리기는 원래 공짜다. 그런데 신발에 20만 원을 쓰고, 대회 참가비를 내고, 기록 측정 시계를 찬다. 몸의 상태를 끌어올리는 일에 지출 항목이 계속 추가되는 구조다. 둘째, 달리는 사람은 회복이 필요한 사람이다. 주 3회 이상 달리는 인구가 늘어날수록 근막과 수면과 심박의 관리, 즉 2편에서 본 회복 수요가 함께 자란다. 미국에서 러닝과 사우나·냉수욕 시설이 같이 크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헬스장 폐업률이 역대 최고라는 보도와 러닝 붐이 같은 시기에 공존한다는 점도 짚어둘 만하다. 운동 수요가 준 게 아니라, 실내 기구 앞에서 혼자 하던 운동이 밖으로, 크루로, 기록과 인증으로 이동한 것이다. 수요는 형태를 바꿀 뿐 사라지지 않는다. 1편의 감량 시장에서 본 것과 같은 문법이다.
저속노화는 편의점 도시락까지 내려왔다
저속노화라는 말은 2023년경 한 노년내과 의사의 책과 소셜미디어에서 출발해 2년 만에 유통 매대의 언어가 됐다. 혈당을 급하게 올리지 않는 잡곡밥 식사, 초가공식품을 줄이는 습관 같은 내용이 핵심인데, 확산 속도가 담론의 수준을 넘었다. 세븐일레븐은 2025년 1월 이 의사와 협업한 저속노화 간편식 5종(도시락 포함)을 내놨고, 편의점 CU에서 기능건강음료가 음료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자사 집계 기준 2021년 16.9%에서 2024년 22.1%로 올라 커피를 제쳤다.
결제 데이터는 이 흐름의 주인을 특정한다. 신한카드 집계로 프로틴·키토·제로 같은 건강식 가맹점 이용 고객은 2023년 대비 2025년에 두 배로 늘었는데, 이용자의 절반 이상이 20~30대다(20대 22.4%, 30대 33.5%). CJ온스타일에서는 제로 관련 상품 주문액이 엔데믹 직후 1년 대비 다섯 배 넘게 뛰었다. 건강식은 원래 중장년의 소비였다. 그 공식이 뒤집힌 것이 이 시장의 최근 3년이다.
젊은 세대가 노화를 걱정하는 게 유난이 아니라는 근거도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집계로 20대 당뇨 환자는 2016년 대비 2020년에 47%, 30대는 25.5% 늘었다. 배달 음식과 앉아 있는 노동의 청구서가 20대에게 먼저 도착하고 있고, 저속노화 담론은 그 불안에 정확히 올라탄 언어다.
리스크도 담론 안에 있다. 이 트렌드는 특정 인물의 신뢰도에 크게 기대 왔다. 발원자가 논란에 휘말리면 담론 전체가 흔들린다는 지적이 이미 나왔고, 실제로 그런 국면이 있었다. 사업 관점의 교훈은 명확하다. 특정 인물의 언어에 편승하되 그 인물에 의존하는 브랜드를 만들면 안 된다. 빌려 쓸 것은 이름이 아니라 그 말이 가리키는 수요다. 혈당, 근육, 수면, 회복이라는 실체는 담론의 주인이 바뀌어도 남는다.
회복이 소비가 됐다
운동과 식단 다음에 오는 세 번째 지출 항목이 회복이다. 인스타그램의 오운완 해시태그 게시물은 2022~2023년 보도 기준 730만 건대였고, 바디프로필 관련 게시물도 315만 건이 넘는다는 집계가 있었다(2022년 보도 기준). 이 인증 문화의 다음 단계가 지금 만들어지는 중이다. 운동한 몸을 어떻게 풀고 재우고 데우는지가 새 콘텐츠가 되는 것이다. 블랙핑크 제니가 보그 영상에서 냉수 입욕을 자기 회복 루틴으로 공개한 것이 2024년 11월이었고, 이후 콜드플런지는 연예인과 운동선수의 루틴 소개에 단골로 등장한다.
트렌드 관측 쪽도 같은 것을 보고 있다. Z세대 트렌드 매체 캐릿은 2026년 이 흐름에 리커버리노믹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회복이 하나의 소비 카테고리가 됐다는 뜻이다. 사우나만 다루는 인플루언서가 몇 달 만에 팔로워 수만 명을 모으고, 2편에서 본 대로 1인 사우나가 60분에 3만~4만 5,000원, 마사지와 사우나를 묶은 회복 코스가 10만 원대에 팔린다. 2만 원대 찜질방이 깔려 있는 나라에서 그 서너 배 가격의 회복 상품이 성립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최근 1~2년의 변화다.
주목할 것은 이 소비의 구조다. 러닝도, 저속노화 식단도, 회복 루틴도 전부 기록되고 공유된다. 달린 거리는 앱 캡처로, 식단은 도시락 사진으로, 사우나는 후기로 올라간다. 중국 감량 캠프를 키운 동력이 참가자의 카메라였다는 2편의 관찰이 한국에서도 그대로 성립한다는 뜻이다. 한국의 몸 관리 소비는 이미 과정 공개형이다. 인증할 수 없는 상품은 이 시장에서 절반만 팔리는 상품이고, 거꾸로 인증 장치를 설계에 넣은 상품은 광고비를 참가자가 대신 내주는 상품이 된다.
수요의 크기, 수요의 주인(2030), 수요의 소비 방식(과정 공개)까지 확인됐다. 남은 것은 이 수요가 어떤 말로 검색되는가다.
왜 바이오해킹이 아니라 저속노화인가
같은 수요가 나라마다 다른 말을 입는다. 미국의 바이오해킹은 기술의 언어다. 측정하고, 개입하고, 최적화한다. 웨어러블과 혈액 검사와 보충제 스택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 문화가 몸에 이식된 말이라, 주어가 데이터이고 몸은 개선 대상인 시스템이다.
한국에서 이 말은 이식에 실패했다. 번역서 몇 권, 다큐멘터리 소개 기사 몇 건이 전부이고, 커뮤니티의 규모를 보여주는 정량 자료는 검색되지 않는다. 대신 같은 욕망이 저속노화라는 말로 흐른다. 두 말의 차이는 번역의 문제가 아니다. 바이오해킹은 몸을 업그레이드하겠다는 말이고, 저속노화는 늙는 속도를 늦추겠다는 말이다. 앞의 것은 더 나아지려는 야망의 언어이고, 뒤의 것은 잃지 않으려는 방어의 언어다. 20대 당뇨가 47% 늘어난 나라,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몰려 앉아서 일하는 나라에서 어느 쪽 언어가 팔릴지는 데이터가 이미 답했다.
이 차이는 사업의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검색 유입이 걸리는 단어가 다르고, 신뢰를 얻는 화자가 다르다. 바이오해킹의 화자는 엔지니어와 창업가지만, 저속노화의 화자는 의사였다. 상품의 결도 다르다. 기술의 언어로는 기기와 검사를 팔게 되고, 방어의 언어로는 식단과 습관과 환경을 팔게 된다. 2편에서 본 세 모델 중 한국의 언어와 맞는 것은 데이터 단독 모델이 아니라 생활을 통째로 바꿔주는 환경 모델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시리즈가 만들 사업의 언어도 정해진다. 바이오해킹 캠프가 아니다. 몸의 시간을 늦추는 환경, 저속노화와 회복의 언어로 말하고, 측정은 전면에 내세우는 간판이 아니라 결과를 증명하는 장치로 쓴다. 검사 수치로 손님을 부르는 게 아니라, 잘 자고 잘 먹고 회복된 4주의 기록으로 부르는 것이다. 언어를 정했으니 다음은 공급이다. 이 수요와 언어 앞에 지금 한국에 어떤 가게들이 서 있는지, 강남의 클리닉부터 지방의 감량 합숙소까지의 지도는 4편에서 그린다.
제품은 사는데 환경은 아직 못 산다
이번 편의 숫자들을 한 줄로 접으면 이렇다. 한국의 2030은 몸의 시간에 이미 돈을 쓰고 있다. 러닝화와 대회 참가비로, 저속노화 도시락과 제로 음료로, 1인 사우나와 회복 코스로. 다만 지금까지의 지출은 전부 낱개다. 신발 하나, 도시락 하나, 사우나 한 시간. 낱개 소비를 아무리 쌓아도 생활 전체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소비자 본인들이 제일 잘 알고, 그래서 몰입형으로 생활을 통째로 바꿔주는 상품의 자리가 비어 있다는 것이 1편부터 이어온 이 시리즈의 관찰이다.
수요의 크기와 언어를 확인했으니 다음은 공급의 실태다. 월 100만 원을 받는 강남의 기능의학 클리닉과 4주 200만 원의 감량 합숙소 사이에 무엇이 있고 무엇이 없는지, 국내 공급 지도를 4편에서 그린다.
이 기록을 계속 보려면 뉴스레터를 구독하면 된다. 지방에 놀고 있는 숙박 시설이나 폐교를 가진 쪽, 기능의학과 검진 영역의 의료인, 이 시장에 투자자로 관심 있는 쪽이라면 연락이 빠를수록 서로 낫다.
출처
본문에 인용한 수치의 근거는 아래와 같다. 러닝 인구 1,000만은 공식 통계가 아닌 업계 추산이고, 마라톤 참가자는 경찰청의 안전관리 협조 기준 집계다. 해시태그 게시물 수는 인스타그램의 표시 방식 변경으로 현재 재검증이 불가능한 당시 보도의 스냅숏 수치이며, 카드·유통사 수치는 각 사 자체 집계라 시장 전체 지표가 아니다.
출처 전체(18건) 펼치기
러닝 · 운동 수요
- 조깅·달리기 경험률 추이 — 한국갤럽 · 2024
- 러닝 인구 1,000만 업계 추산 — 경기일보 · 2025-09
- 마라톤 대회 254개·참가 100만 명(경찰청 집계) — 우먼타임스 · 2026-05
- 2025 서울하프마라톤 2030 비중 71% — 스포츠조선 · 2025-04
- 무신사 2025 러닝화 판매 83% 증가 — 한국경제 · 2025-12
- 써코니 2024년 매출 238% 증가 — 뉴스1 · 2025
저속노화 · 식품 소비
- 정희원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 — 교보문고 · 2023
- 세븐일레븐 저속노화 간편식 5종 출시 — 바이라인네트워크 · 2025-01
- CU 기능건강음료 매출 비중 추이 — 뉴스핌 · 2025-04
-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 2026 웰니스 트렌드 — 신한카드 블로그 · 2026
- CJ온스타일 제로 상품 주문액 523% 증가 — 경향신문 · 2026-08
- 20~30대 당뇨 환자 증가(심평원 2016~2020) — 뉴시스 · 2023-11
회복 · 인증 문화
- 넷플릭스 「브라이언 존슨: 영원히 살고 싶은 남자」 — Netflix · 2025-01
- 브라이언 존슨 국내 소개 — 경향신문 · 2025-01
- 오운완 게시물 732만 건 — 농민신문 · 2022-09
- 바디프로필 게시물 315만 건 — 채널PNU · 2022-03
- 제니 콜드플런지 루틴 공개 — 농민신문 · 2024-11
- 리커버리노믹스 명명·고독한사우너 — 캐릿 ·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