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상 — OEM·OES·재생·비정품의 4단 피라미드와 어음의 종속
공업사 사장이 평생 부품상 사장과 밀고 당기는 두 가지 무대
이 글은 《공업사 사장이 본 자동차 보험 생태계》 시리즈 17편이다. 공업사 수익성을 결정하는 두 축 중 하나가 공임이고 다른 하나가 부품이다. 이 글은 부품 쪽 무대를 본다. 법률·회계 자문을 대체하지 않는다.
공업사 한 편에 쌓인 박스들
공업사 작업장 한 쪽에는 부품 박스가 쌓여 있다. 오전에 배송 온 박스 10여 개가 풀리지 않은 채로 받아놓은 상태. 아래쪽에는 어제 들어온 범퍼, 그 옆에 헤드램프, 구석에 재생 라디에이터. 박스 겉면에는 각기 다른 로고가 찍혀 있다. 제조사 로고, Tier-1 공급사 로고, 재생 센터 로고, 그리고 로고 없이 품번만 적힌 박스도 있다.
오후 두 시쯤 부품상 사장의 트럭이 도착한다. 공업사 사장은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나가서 악수를 하고, 트럭 뒷문을 열어 부품을 같이 내린다. 그 사이 잠깐의 대화. 이번 주 재고 상황, 긴급 조달 요청한 부품의 도착 예정일, 다음 주 지급 예정 금액, 업계에 도는 소문. 이 10분짜리 대화가 일주일에 2~3회 반복된다. 이 반복이 공업사 사장이 평생 하는 일 중 하나다.
공업사 사장이 부품상 사장과 밀고 당기는 무대는 두 가지다. 단가를 놓고 싸우는 무대와 결제를 놓고 싸우는 무대. 이 두 무대의 구조를 푼다.
4단 부품 피라미드
부품은 크게 네 등급으로 나뉜다.
1단 —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er). 완성차 제조사가 지정한 정품이다. 박스에 제조사 로고가 찍혀 있고 품번 체계도 제조사 것이다. 현대·기아·르노·쉐보레·BMW·벤츠 등 각 제조사가 자신의 정품 유통망에서 공급한다. 가장 비싸고, 보험사 인정에서 가장 확실하다.
2단 — OES(Original Equipment Supplier). 완성차에 납품하는 Tier-1 공급사가 만든 부품이다. Bosch, Mando, Hanon Systems, Denso, Valeo, Continental 같은 이름이 여기 들어간다. 같은 라인에서 만들어지고 품질도 OEM과 동일한 경우가 많다. 차이는 박스의 로고와 유통 경로다. OEM은 제조사 로고가 찍혀 나오고, OES는 공급사 로고가 찍혀 나온다. 단가는 OEM 대비 상당히 낮다.
3단 — 재생부품(Remanufactured). 사고 차량, 폐차 예정 차량에서 회수한 부품을 분해·세척·검사·교체·재조립해서 다시 유통 가능한 상태로 만든 제품이다. 환경부가 인증 기준을 만들어 관리하고 있으며, 인증 재생부품 품목이 꾸준히 확대되는 중이다. 단가는 OEM의 절반 수준 또는 그 이하다. 재활용·탄소 저감 측면에서 정책적으로 밀어주는 흐름이다.
4단 — 비정품(애프터마켓). 중국·대만·국내 중소 업체가 만드는 제조사·Tier-1과 무관한 부품이다. 품질 편차가 크고 내구성도 들쭉날쭉하다. 단가는 가장 저렴하다. 보험사 인정은 제한적이거나 불가능하다.
단가 차이를 단순화해서 말하면 이렇다. OEM을 100으로 놓고, OES 6080, 재생 4060, 비정품 20~40 정도의 감각이다. 부품 종류별로 편차가 크고 (특히 외장 부품과 전자 부품에서 차이가 다름), 브랜드와 유통 경로에 따라 변동이 크다. 이 감각은 절대 수치가 아니라 현장에서 통용되는 대략적 상대 비율이다.
왜 이 피라미드가 공업사 경영에 중요한가
수리비 견적서를 단순화하면 공임 + 부품 + 소모품이다. 이 중 부품이 전체 수리비의 40~60%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즉 부품을 어느 등급으로 쓰느냐가 공업사 원가 구조의 절반 이상을 결정한다.
보험사는 이 피라미드 중 어느 등급을 "인정"해주느냐의 정책을 각자 갖고 있다. 일반적인 흐름을 보면:
- OEM 전용 인정: 신차, 고급차, 복합 손상 등 특정 조건에서. 보험사는 이 경우 단가가 높게 나오는 걸 받아들인다.
- OES 허용: 일반적인 범용 부품에서 OES 사용을 인정한다. 공업사는 OEM 대신 OES를 쓰면 보험사에는 OEM 수준 단가로 청구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이 여지가 마진의 원천 중 하나다.
- 재생부품 인정 확대: 환경부 인증 품목 확대에 따라 보험사가 재생부품 사용을 인정하는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보험사 입장에서 손해율 개선의 수단이 된다. 공업사 입장에서는 적응해야 하는 변화다.
- 비정품 불인정 원칙: 고급차·고액 사고에서는 비정품이 원칙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경미 손상·단순 외판에서도 인정이 까다롭다. 고객 동의가 있고 공업사가 책임을 지는 조건에서 일부 허용되는 경우가 있다.
이 인정 정책은 보험사마다, 해마다, 차종마다 달라진다. 어제의 기준이 오늘 바뀌어 있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그래서 공업사 사장은 각 보험사의 최신 인정 기준을 부품상과 공유하면서 함께 맞춰 간다. 이 협업이 없으면 견적서에 올린 부품이 심사 단계에서 깎이거나 삭제된다.
보험사별 인정 비율의 흐름
재생부품에 대한 보험사별 태도는 2020년대 들어 확연히 움직였다. 대형 4사는 재생부품 인정 비율을 공시하고 있고, 이 비율을 끌어올리는 것을 손해율 관리의 핵심 지표 중 하나로 본다. 중견·중소 보험사는 대형사 뒤를 따라가는 구조다.
흐름을 요약하면:
- 소모성 부품(필터류, 소형 외장 부품): 재생 인정이 이미 안착됨
- 중대형 외장 부품(범퍼, 휀더, 도어): 인증 재생품 유통 확대로 인정 비율 상승 중
- 기능 부품(라디에이터, 에어컨 응축기, 머플러): 환경부 인증 확대에 따라 점차 인정
- 안전 관련 부품(에어백 관련, 제동계): 여전히 OEM 또는 OES가 기본
이 흐름을 놓치면 공업사는 구매 재고와 실제 인정 단가 사이에서 마찰이 생긴다. 부품상과 월 1회 이상은 최근 판정 사례를 공유하는 자리를 갖는 것이 실무 감각이다.
결제 구조 — 현금에서 장기 외상까지
공업사와 부품상의 결제는 다섯 가지 형태가 섞여서 돌아간다.
1. 현금 결제. 드물다. 긴급 단가가 맞거나 신규 거래처 첫 몇 건에서만 현금으로 정산한다. 현금 결제에는 대체로 5~10% 할인이 붙는다.
2. 30일·60일·90일 어음. 전통적인 거래 형태. 월말 마감 후 익월 말, 또는 그 이후 일정에 맞춰 어음을 끊는다. 어음은 부품상이 자기 거래 은행에서 할인받아 현금화할 수 있지만, 할인율만큼 부품상이 손해를 본다. 이 할인 비용은 간접적으로 공업사 단가에 반영된다.
3. 외상(계좌 이체). 어음 없이 매월 정산 날짜에 계좌 이체로 갚는 형태. 신뢰 관계가 쌓인 장기 거래처와 주로 쓴다. 어음 발행·할인 비용이 빠지므로 실질 단가가 더 낮아진다.
4. 일부 선급 + 잔금 후지급. 특수 부품, 고가 부품, 수입 부품에서 쓰이는 형태. 부품상이 재고를 쥐기 부담스러운 품목을 공업사가 선주문할 때.
5. 장기 채권화. 공업사가 결제를 계속 미루면서 부품상에 외상 잔고가 누적되는 상태. 좋은 거래 형태가 아니다. 쌓이면 부품상 자금 사정이 나빠지고, 결국 공업사가 부품 우선순위에서 밀리거나 거래 자체가 끊긴다.
공업사 사장이 가장 조심해야 할 구간이 4번과 5번 사이다. 잠깐 현금이 안 돌면 부품상에 잔고를 밀어두게 되는데, 한두 번이 구조로 굳어버리는 순간 관계의 주도권이 넘어간다.
어음이 만드는 종속
어음 구조는 공업사-부품상 관계를 미세하게 비대칭으로 만든다.
공업사가 현금 결제 또는 단기 이체로 깨끗하게 정산하는 거래처에는 부품상이 좋은 조건을 먼저 제시한다. 긴급 조달 시 우선순위를 받고, 신제품 재생부품·인증부품이 들어오면 먼저 안내받고, 단가 협상에서도 유리한 자리를 잡는다.
반대로 만성 외상 상태의 공업사에는 부품상이 조건을 좁혀간다. 단가는 기본 표에 가깝게 유지하고, 긴급 조달 시 다른 거래처를 먼저 챙기고, 신제품 안내는 뒤로 미룬다. 직접적인 거절이 아니라 조금씩 뒤로 밀리는 형태다. 공업사 사장이 그 밀림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서너 달이 지나 있다.
이 비대칭이 공업사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을 누적하면 크다. 연 단위로 보면 단가 차이, 긴급 조달 실패, 신제품 누락이 쌓여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 단위의 차이를 만든다. 공업사가 자기 현금흐름을 지키는 것이 단순한 재무 관리가 아니라 부품 조달 능력의 원천이 된다.
부품상의 수익 구조
부품상이 어떤 수익을 갖는지 알면 관계가 투명해진다.
기본 마진. 제조사·공급사로부터 받은 가격과 공업사에 파는 가격의 차이. 품목에 따라 편차가 크다. OEM은 마진이 얇고, OES·재생은 상대적으로 넓다. 수입차 부품은 수입 유통사가 몇 단계를 거치므로 단계별 마진이 누적된다.
리베이트. 제조사·공급사에서 일정 매출 달성 시 분기·반기·연 단위로 환원되는 금액. 부품상의 실질 수익에서 비중이 크다. 리베이트 구조는 부품상이 특정 브랜드·특정 품목에 왜 더 적극적인지를 설명해준다.
재생부품 중개. 재생부품 유통이 확대되면서 부품상이 재생 센터와 공업사 사이 중개자 역할을 한다. 이 중개 마진이 새로운 수익원으로 커지는 중.
장기 파트너십 인센티브. 공업사와 5년·10년 거래가 이어지면 부품상 쪽에도 안정적 거래처라는 자산이 쌓인다. 이 자산은 부품상이 은행 여신을 받을 때, 제조사와 재계약할 때 점수가 된다. 그래서 부품상은 장기 거래처에 가격 외의 배려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부품상 고르는 다섯 가지 기준
공업사 사장이 부품상을 처음 선택할 때 보는 기준. 업계에서 5년 이상 거래해본 사장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지표.
첫째, 5년 이상 한 자리에서 영업해왔는가. 몇 번 상호를 바꾼 부품상, 이전을 잦게 한 부품상은 그 자체로 신호다.
둘째, 재고 회전이 빠른가. 창고에 쌓인 박스 먼지 쌓인 상태를 보면 안다. 회전이 느린 부품상은 특정 품목에서 수급이 불안정하다.
셋째, AS 대응이 되는가. 부품 불량이 확인되면 교체를 해주는가, 환불을 해주는가, 아니면 "너네가 잘못 끼웠다"부터 시작하는가. 첫 3건의 불량에서 이 성향이 나온다.
넷째, 긴급 조달 네트워크가 있는가. 자체 재고에 없는 부품을 다른 부품상에서 끌어와 당일·익일 조달할 수 있는가. 이 네트워크의 깊이가 부품상의 실력이다.
다섯째, 재생부품·인증부품에 대한 이해가 있는가. 재생 시장의 흐름을 읽고 있는가, 단순히 "전통적인 OEM 위주"만 고수하는가. 앞으로 5년은 재생부품의 비중이 커진다. 이 흐름을 안 따라가는 부품상과만 거래하는 공업사는 경쟁력을 잃는다.
공업사 관점의 실무 팁
마지막으로, 부품 조달의 수익성을 지키는 실무 팁 몇 가지.
현금 결제 할인을 적극 활용한다. 월말 일정 금액을 의도적으로 현금으로 결제해서 부품상과의 관계를 위쪽으로 끌어올린다. 이 비용은 단기로는 현금이 나가지만 장기로는 단가와 조달 우선순위에서 돌려받는다.
부품상은 2~3곳 병행한다. 단일 부품상 의존은 위험하다. 23곳과 거래하되 주거래는 한 곳으로 두어 관계의 깊이를 유지한다. 긴급 시 나머지 12곳이 백업 역할을 한다.
월말 정산은 반드시 약속대로. 한 번이라도 약속을 어기면 관계의 톤이 바뀐다. 자금이 부족하면 미리 부품상에 전화해 협의한다. 말 없이 넘기지 않는다.
분기 1회는 부품상 사무실을 직접 방문한다. 전화·메신저로만 주고받지 말고 얼굴을 본다. 창고 상태, 재고 회전, 직원 분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 정보가 부품상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재생부품 흐름을 학습한다. 환경부 재생부품 인증, 보험사별 인정 비율, 시장 유통가를 분기별로 체크한다. 부품상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공업사 사장이 직접 파악해서 부품상과 같은 수준의 언어로 대화하는 것이 관계의 주도권을 지키는 방법이다.
부품 피라미드와 결제 구조는 공업사 경영의 절반이다. 공임이 보험사와의 싸움이라면, 부품은 부품상과의 싸움이다. 두 무대에서 동시에 진 공업사는 수익이 안 나오고, 두 무대를 모두 관리하는 공업사가 오래 버틴다.
시리즈 예고 — 18편: "렉카 — 사고 현장의 최초 접촉자, 수수료와 과잉 유치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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