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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 사고 처리 밸류체인 · 24편 / 34편

빛의 제휴법: 품질 데이터·재작업률·민원 기록으로 쌓는 신뢰

20년 거래한 공업사 사장 파일함에 들어 있는 여섯 가지 자산

홍정현·2024.06.10
11분 읽기

이 글은 《사고 처리 밸류체인》 시리즈 24편이다. Part 5 앞쪽의 마지막 편으로, 정공법(빛의 제휴) 관점에서 본 현장의 실무 자산을 정리한다. 이어지는 25~27편은 같은 구조를 회색·흑색·구조적 원인의 시각에서 해부한다.

낡은 파일함, 20년치 기록

경기 남부의 어느 공업사. 사장은 1960년대 후반생이다. 사무실 벽 한쪽에 철제 파일함이 서 있다. 칠이 벗겨진 오래된 것이다. 사장이 서랍을 하나씩 열어 보여준다.

첫 번째 서랍은 보험사별 월간 재작업률 기록. 3사 × 월별 × 10년치. 엑셀로 정리되어 출력물로 묶여 있다. 두 번째 서랍은 공임 인상 협상 때 쓴 자료. 연도별 평균 작업 시간, 인건비 상승률, 부품 단가 추이. 세 번째 서랍은 민원 기록철. 연도별로 얇은 파일. 대부분 비어 있다. 정말 드문 한두 건의 민원과 그 해결 과정이 A4 한 장씩 담겨 있다. 네 번째 서랍은 입고부터 출고까지 4단계 표준 사진이 백업된 외장 하드 12개. 2010년부터의 기록이다.

"이게 내 재산이에요." 사장이 말한다. "땅도 아니고 건물도 아니고, 이 서류들이 재산이지." 뒤이어 한 마디를 덧붙인다. "보험사에 뇌물 한 번도 준 적 없고 밥도 가끔 먹는 정도였어요. 그런데 20년 넘게 버텼어요. 이 파일함이 버텨준 거예요."

공업사 사장이 정공법으로 보험사 네트워크 상위에 올라간 경우를 보면, 이 파일함의 모양이 놀랄 만큼 비슷하다. 이 편은 그 여섯 가지 자산을 꺼내 본다.

여섯 가지 자산의 목록

첫째, 품질 데이터(재작업률). 보험사의 재작업 요청 비율을 월·분기·연 단위로 기록한다. 전체 건수 중 재작업이 발생한 비율, 재작업 사유(도장 불량, 부품 재조정, 사고 부위 외 손상 발견 등), 재작업까지 걸린 기간. 업계 평균과 자기 공업사의 수치를 비교한다. 낮게 유지되면 평가 시즌에 상위로 올라간다.

둘째, 작업 시간 데이터. 표준 공임 시간과 실제 작업 시간을 부위별·작업별로 비교한다. 예를 들어 범퍼 교환에 표준 2.0시간이 인정되는데, 이 공업사의 실제 평균이 2.4시간이라면 그 0.4시간은 근거 있는 공임 인상 협상의 재료가 된다. 이 데이터가 없으면 주장은 주관이고, 있으면 주장은 자료다.

셋째, 민원 기록 0 유지. 차주의 보험사 민원, 공업사 직접 민원, 소비자원 민원의 건수를 연 단위로 추적한다. 발생 건의 사유·해결 과정·재발 방지책을 한 장씩 정리한다. 매년 말 이 자료를 묶으면 감사·재계약 시즌에 제출할 수 있는 자산이 된다.

넷째, 4단계 표준 사진. 입고 직후, 분해 완료, 작업 중간, 출고 완료. 각 단계마다 차량 전체와 파손 부위 근접. 사고 부위 이외의 기존 상흔도 입고 사진에 기록해둔다. 보험사 청구 시 자동으로 첨부되는 표준 포맷을 갖춘다. 이 사진이 쌓이면 나중 분쟁에서 공업사를 지켜주는 증거가 된다.

다섯째, 디지털 견적 시스템 연동. AOS(보험개발원 자동차수리비 온라인 서비스)와 각 보험사 견적 시스템을 공업사 내부 ERP와 연동한다. 견적 입력 시간이 단축되고 오기 입력이 줄고 데이터가 자동으로 누적된다. 사진·견적·청구가 한 흐름으로 연결되면 행정 부담이 반으로 준다.

여섯째, 컴플라이언스(4대보험·세무·환경·외국인 고용). 위반 없이 유지한다. 4대보험 가입 상태, 세무 신고, 폐기물·도장 배기 관리, 외국인 노동자 체류·근로 자격. 모든 영역에서 자료가 최신 상태로 준비돼 있으면 보험사 감사 시 즉시 제출 가능하다. 감사 공업사 리스트에 '우량'으로 남는다.

재작업률·민원 기록은 보험사 평가에 어떻게 반영되는가

재작업률은 네트워크 평가의 계량 지표로, 민원 기록은 담당자·과장 KPI로 직접 들어간다. 이 자산들은 단지 '잘 관리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실제 평가·협의에 반영되는 경로가 있다.

재작업률은 보험사 내부 정비 네트워크 평가 항목에 직접 들어간다. 네트워크 편입·등급 조정·재계약 시 계량 지표로 쓰인다. 어느 보험사는 연 2회, 어느 보험사는 분기별로 집계한다. 낮으면 우량 등급으로, 높으면 경고로 남는다.

작업 시간 데이터는 공임 협상 테이블에서 힘을 발휘한다. "저희 연평균 작업 시간은 표준보다 0.3시간 길고, 근거는 이것입니다." 과장이 본사에 올릴 때 이 데이터가 있는 공업사와 없는 공업사의 이야기가 다르다.

민원 기록은 지점·지역본부가 공업사를 평가할 때 핵심 변수다. 담당자·과장 KPI에 민원이 직접 반영되기 때문에, 민원을 만들지 않는 공업사는 담당자 입장에서 같이 일하기 편한 상대다. 편한 상대는 장기 거래로 이어진다.

표준 사진은 개별 건 협의에서 공업사의 무기가 된다. "이 부위, 입고 사진에 이렇게 찍혀 있습니다." 이 한 문장으로 10분짜리 언쟁이 끝난다. 사진이 없는 공업사는 같은 주장을 해도 논리가 서지 않는다.

디지털 연동은 보험사의 행정 비용을 줄여준다. 보험사가 특정 공업사를 네트워크에 유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 공업사와 일하면 서류 왕복이 없다"는 실무적 편의다. 담당자가 매일 상대하는 수십 개의 공업사 중 연동이 되는 쪽이 먼저 손이 간다.

컴플라이언스는 보험사 감사 시즌에 직접적 가치가 된다. 금감원 감사, 본사 내부 감사, 세무 조사. 공업사 네트워크가 한꺼번에 들여다보이는 순간 이 자산이 있는 공업사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지나간다. 없는 공업사는 그 시점부터 네트워크에서 이름이 빠진다.

누적의 힘, 1년이 아니라 10년

이 여섯 가지 자산의 진짜 힘은 한두 해 관리로는 나오지 않는다. 5년, 10년, 20년이 쌓일 때 구조적 힘이 된다.

담당자가 바뀌어도 공업사 이름이 남는다. 1~3년 주기의 로테이션에서 새 담당자는 전임자의 입소문이 아니라 시스템의 데이터를 본다. 10년치 재작업률, 민원 0 기록, 사진 백업, 세무 이슈 없음. 이 기록이 담당자 교체를 넘어 공업사의 신뢰 자산으로 남는다.

본사 네트워크 재편 때 상위로 편입된다. 보험사는 2~5년 주기로 정비 네트워크를 재편한다. 우량 공업사는 제조사 인증 공업사 수준의 혜택을 받는 '파트너' 등급으로 올라가고, 하위는 거래 중단이나 조건 악화로 재조정된다. 이 재편의 기초 자료가 바로 위 여섯 가지다.

쟁점 건에서 '이 공업사는 신뢰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같은 견적 120만 원이라도, 어느 공업사가 올리면 담당자가 바로 승인하고 어느 공업사가 올리면 사진 재요청부터 시작한다. 이 차이가 한 건당 30분씩 쌓이면 공업사의 실제 수익성이 갈린다.

승계할 수 있는 자산이 된다. 2대·3대 승계가 현실인 업계에서, 이 파일함의 데이터는 다음 세대에게 넘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산이다. 사장 개인의 인맥은 후대에 넘어가지 않는다. 시스템 기록은 넘어간다.

정공법의 함정

정공법이 무조건 이익인 건 아니다. 현장에서 이 길이 왜 모두에게 열려 있지 않은지, 솔직하게 짚어야 한다.

첫째, 단기 마진이 낮다. 견적서의 각 라인을 정확히 쓰고, 사진을 4단계로 찍고, 재작업을 감수하면 한 건 이윤이 회색 영역에서 챙기는 공업사보다 낮다. 매달 현금이 부족한 사장에게는 정공법이 사치로 보일 수 있다.

둘째, 투자 회수가 오래 걸린다. 전산 시스템 도입, 사진 장비, 직원 교육, 세무·노무 전문가 자문. 초기 비용이 들고 그 효과는 5~10년 뒤에 나온다. 단기 자금 여유가 없는 공업사는 진입 자체가 어렵다.

셋째, 동업계 평균과 비교할 때 답답하다. 옆 공업사가 회색 관행으로 몇 천만 원씩 더 벌어가는 것을 보면서 정공법으로 버티는 건 심리적으로 쉽지 않다. 20년 뒤에 결과가 갈린다는 걸 머리로는 알아도 3년차 사장에게는 긴 시간이다.

넷째, 외적 불운에 약하다. 사고가 줄어드는 지역, 전기차 비중이 급증하는 지역, 고령 운전자가 감소하는 동네. 정공법으로 잘 관리해도 외적 시장이 축소되면 데이터는 남아도 사업이 줄어든다. 데이터 자산이 만능은 아니다.

그럼에도 왜 정공법이 유일한 지속 가능 경로인가

함정이 있음에도 정공법이 장기적으로는 유일한 길인 이유가 있다.

회색·흑색 관행은 10년 이상 지속 불가. 단속 주기, 내부 고발, 담당자 교체 뒤 시스템 감사, 보험사기 조사팀의 기획 조사. 어느 하나에 걸리면 그 공업사는 전 보험사 네트워크에서 이름이 빠진다. 10년 가까이 문제 없이 버틴 회색 공업사를 현장에서 거의 본 적이 없다.

컴플라이언스가 규제 강화에 따라 점점 중요해진다. 중대재해처벌법(상시근로자 기준에 따라 단계적 적용), 외국인 고용 제도 강화, 폐기물 관리 의무, 대기환경 배출 규제. 공업사에 직접 걸리는 법령이 해마다 늘고 있다. 현 시점 기준 잘 관리되던 공업사도 5년 뒤 기준에서는 위반 공업사가 될 수 있다. 선제적으로 쌓은 컴플라이언스가 뒤에 가서 방어막이 된다.

세대 교체 후 승계 가능. 회색 관행은 후대에 넘어가지 않는다. 다음 사장은 선대의 인간관계를 물려받지 못하고, 인간관계를 기반으로 한 회색 거래는 교체 시점에 사라진다. 시스템과 데이터로 쌓은 자산만이 승계된다. 60~70대 사장들이 자녀에게 업을 넘기는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이 차이가 눈에 보이게 된다.

정공법 공업사의 실제 성과 패턴

수치를 특정 업체에 연결해 쓸 수 없지만, 업계에서 일반적으로 관찰되는 패턴이 있다.

같은 규모의 두 공업사가 같은 지역에서 영업한다고 가정했을 때, 5년쯤 지나면 월 매출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현금흐름 안정성이 갈리기 시작한다. 10년 시점에는 한쪽은 보험사 네트워크에서 파트너 등급으로 올라가 있고, 다른 쪽은 3~4년 주기로 조건이 재협상되는 자리에 남는다. 15년 시점에는 한쪽이 제조사 인증까지 추가로 받아 간판을 하나 더 달고, 다른 쪽은 네트워크 축소로 매출이 흔들린다. 20년 시점에는 한쪽이 자녀에게 업을 넘기기 시작하고, 다른 쪽은 은퇴 후 폐업을 고민한다.

이 패턴은 보장이 아니라 경향이다. 외적 변수가 강하게 흔들면 방향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정공법 쪽이 평균적으로 20년 뒤 결과가 낫다'는 관찰은 업계에서 반복적으로 나온다.

오늘부터 시작할 수 있는 세 가지

위의 여섯 가지 자산 전체를 한꺼번에 쌓기는 어렵다. 그러나 오늘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세 가지가 있다.

하나, 사진 표준화. 입고 직후·분해·중간·완료의 4단계 사진 원칙을 정하고, 직원 전원에게 공유한다. 파일명 규칙을 통일한다(예: 차량번호_단계_부위). 한 달이면 체계가 잡힌다.

둘, 재작업률 월간 기록. 매달 말 한 시간을 들여 그 달의 총 건수, 재작업 건수, 사유를 엑셀 한 장에 정리한다. 1년 뒤 돌아보면 트렌드가 보인다. 3년 뒤면 협상 자리에서 꺼낼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셋, 월간 민원 리뷰. 매달 마지막 금요일에 30분, 그 달 민원을 정리한다. 건수는 대개 0이거나 1~2건이다. 발생했다면 원인과 해결 방법을 한 장으로 남긴다. 발생하지 않았다면 '없음'을 기록한다. '없음'이 쌓인 기록도 자산이다.

이 세 가지가 1년 쌓이면 나머지 세 자산(작업 시간 데이터, 디지털 연동, 컴플라이언스 관리)으로 자연스럽게 확장할 발판이 생긴다. 멀리 가려는 사장이 아니라, 10년 뒤에도 이 자리에 있을 사장이 오늘 시작한다.

다음 편에서는 같은 생태계의 반대편, 정공법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회색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구조가 어떻게 회색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하는지, 그 안에 들어간 공업사들이 왜 쉽게 나오지 못하는지. 쓰지 않을 것과 쓸 것의 선은 이미 1편에서 그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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