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업사의 선택 — 전기차 인증으로 갈 것인가, 내연기관에 남을 것인가
시리즈를 마치며 — 34편의 지도 끝에서 마주하는 하나의 실전 분기
이 글은 《공업사 사장이 본 자동차 보험 생태계》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다. 1편에서 열어둔 질문 — 왜 공업사 사장이 이 시장을 공부해야 하는가 — 을 다시 마주하며 닫는다.
2030년, 우리 동네 거리의 풍경
2030년 어느 가을 아침. 공업사 간판 앞 사거리를 상상한다. 신호가 바뀌자 차들이 움직인다. 소리가 다르다. 엔진 소리와 무음이 섞여 지나간다. 택시 중 상당수는 전기차다. 아파트 단지에서 나온 출근차도 절반 가까이 전기차다. 택배 트럭과 오래된 경상용차가 그 사이를 내연기관 소리로 채운다.
공업사 안에서 이 풍경을 보는 사장은 지금과 다른 판단을 매일 해야 한다. 내 공업사에 굴러 들어오는 차의 구성이 바뀌었다. 대물 협의의 상대가 바뀌었다. 부품상도, 견적서도, 직원에게 물려줄 기술도 바뀌었다. 그런데 사장은 하루 아침에 공업사를 바꿀 수 없다. 지금부터 쌓아 올려야 2030년이 된다.
그래서 지금이 선택의 시점이다. 선택지는 세 개다.
길 1 — 전기차 인증공업사 전환
가장 공격적인 선택이다. 제조사 인증 체계로 본격 진입해서 전기차 수리를 주력으로 삼는다.
진입 조건.
- 면적: 제조사별로 다르지만 최소 몇백 평 단위가 요구되는 경우가 많다. 알루미늄 전용 라인, 고전압 작업 공간, 재보정 공간을 따로 둬야 하기 때문이다.
- 장비: 제조사 전용 진단기, 고전압 절연 공구 세트, 알루미늄 전용 용접기·판금 장비, ADAS 재보정 장비, 배터리팩 리프트와 격리 공간.
- 자격자: 고전압 작업 자격 기술자 최소 몇 명 이상. 제조사 교육 이수 인원 별도.
- 교육: 제조사 본사 교육장 파견, 연간 재교육 이수.
투자 규모. 업계에서 관찰되는 범위는 장비 수억 원, 공간 확장·리모델링 수천만수억 원. 합치면 515억 원 수준의 총 투자가 거론된다. 브랜드·지역·기존 공업사 상태에 따라 편차가 크다.
회수 기간. 안정 운영까지 57년 보는 게 업계 체감이다. 초기 23년은 전기차 입고가 기대만큼 차지 않을 수 있다. 지역 보급률이 천천히 오르기 때문이다. 후반 4~7년에 인증 공업사의 희소성 덕분에 단가가 유지되면서 회수가 시작된다.
브랜드 선택. 한 공업사가 여러 브랜드 인증을 다 받기는 어렵다. 전국 대형 인증 공업사 중에도 보통 1~2개 브랜드에 집중한다. 선택지는 대략 세 갈래다.
- 현대차·기아 계열: 국내 전기차 보급의 주력. 블루핸즈·오토큐 기존 네트워크가 있는 공업사가 전환하기 상대적으로 유리.
- 테슬라: Approved Body Shop. 진입 기준이 까다롭지만 일단 들어가면 송객 물량이 안정적.
- 수입차 브랜드(벤츠·BMW·폴스타·아우디·포르쉐): 수입차 공업사 경험이 있는 곳이 유리. 단가는 높지만 보급량이 제한적.
리스크.
- 제조사 의존. 인증 조건, 공임표, 부품 단가가 제조사 손에 있다. 인증이 박탈되면 투자가 무너진다.
- 전환 비용의 고정비화. 투자 대부분이 매몰 비용으로 전환된다. 장비·공간은 다른 용도로 돌리기 어렵다.
- 기술 변화 속도. 배터리 기술·소프트웨어 체계가 3~5년마다 세대교체된다. 한 번 투자한 장비가 오래 쓰이지 않을 수 있다.
- 브랜드 정책 변동. 직영 확대, 인증 기준 상향, 타 공업사로 물량 분산 등 제조사 판단에 휘둘린다.
길 2 — 내연기관 잔류 + 특화
내연기관에 남되, 오래 버틸 수 있는 세그먼트에 집중한다.
대상 세그먼트.
- 고령차·클래식. 차량 연식이 오래된 승용차. 전기차로의 교체가 늦고, 수리 수요가 꾸준하다. 부품상과의 오랜 관계가 자산이다.
- 화물·중장비. 1톤 트럭부터 대형 화물차·건설중장비까지. 전기화가 상용차에서는 훨씬 느리다. 디젤 엔진 정비 기술이 여전히 주력이다.
- 특수 용도 차량. 택배·배송·렌터카·상용 밴. 사업자 고객 중심. 단가보다 회전과 신속성이 중요한 영역.
- 지역 기반 단골. 지역 밀착 공업사가 오래 쌓아온 신뢰 관계. 보험사 협력을 축으로 하되 일반 수리 고객도 일정 비중 유지.
장점.
- 기존 장비·기술·직원 구성을 그대로 쓴다. 추가 투자가 적다.
- 세대 축적된 판금·도장·엔진 정비 감각이 그대로 값이 된다.
- 경쟁 공업사가 전기차로 전환하는 만큼 내연기관 영역의 경쟁이 일시적으로 완화될 수 있다.
리스크.
- 시장 규모의 점진적 축소. 전체 차량 대수는 일정해도 내연기관 비중은 줄어든다. 10~15년 후 시장은 지금의 절반 이하로 쪼그라들 가능성이 있다.
- 부품 공급 축소. 내연기관 부품 제조가 점점 축소되면 부품상 네트워크도 얇아진다. 구하기 어려운 부품이 늘어난다.
- 후계 공백. 젊은 세대 기술자가 내연기관에 남으려 하지 않을 수 있다. 기술 승계가 어려워진다.
- 세대 전환의 한계. 본인 세대까지는 버티지만 아들·딸 세대로 넘기기 어렵다.
이 길은 "나 한 세대 동안 잘 마무리한다"를 목표로 하는 공업사에 맞다. 60대 사장, 후계 없는 공업사, 자본 여력이 제한적인 곳에서 합리적 선택이 된다.
길 3 — 혼합 (대형 공업사 한정)
내연기관 주력에 전기차 부분 대응을 얹는다. 현재 가장 많은 중대형 공업사가 이 중간 지점을 탐색하고 있다.
구성.
- 내연기관은 기존대로 처리. 매출의 주력.
- 전기차는 외판·도장·간단한 판금까지만 받는다. 고전압 배터리·모듈·소프트웨어 인증 작업은 받지 않거나 외부로 송객.
- 제조사 인증은 1~2개 브랜드만. 가장 입고 빈도가 높은 브랜드로 좁힌다.
투자 규모. 완전 인증보다는 적다. 대신 ADAS 재보정 장비, 일부 전용 진단기, 고전압 기초 교육 정도가 들어간다. 수천만~수억 원 범위.
장점.
- 기존 내연기관 고객 기반을 유지하면서 전기차 입고를 부분적으로 받을 수 있다.
- 브랜드 1~2개의 인증에서 시작해 필요시 확장 가능.
- 리스크를 분산한다. 한쪽이 쪼그라들어도 다른 쪽이 버텨준다.
리스크.
- 어중간한 포지션. 인증 공업사만큼의 전기차 수리 역량은 없고, 내연기관 전용 공업사만큼의 특화도 아니다.
- 자본·인력 부담. 두 체계를 동시에 운영하려면 규모가 커야 한다. 중소 공업사에는 부담이 크다.
- 고정비 상승. 장비·공간·직원·교육 비용이 양쪽에서 함께 쌓인다. 매출이 분산되면 수익률이 떨어진다.
- 보험사 협력의 분기. 대물 담당 입장에서 "이 공업사는 어떤 건까지 받는 공업사"의 분류가 헷갈려진다. 송객 판단에서 밀릴 수 있다.
대형 공업사, 복수 거점 체인, 후계자가 있는 공업사에서 선택 가능한 길이다. 중소·소형 공업사에게는 과도한 부담이 된다.
세 경로의 비교
투자·회수·리스크를 한 표로 정리한다.
| 항목 | 길 1. 인증 전환 | 길 2. 내연기관 잔류 | 길 3. 혼합 |
|---|---|---|---|
| 초기 투자 | 5~15억 원 | 최소 | 수천만~수억 원 |
| 회수 기간 | 5~7년 | 해당 없음(기존 운영) | 3~5년 |
| 요구 규모 | 대형 | 무관 | 중대형 |
| 후계 필요성 | 강함 | 약함 | 중간 |
| 시장 전망 | 장기 상승 | 장기 축소 | 완만 |
| 주 리스크 | 제조사 의존·기술 변동 | 시장 축소·승계 공백 | 어중간 포지션·고정비 |
이 표에 정답이 없다. 공업사의 현재 위치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
선택의 기준 — 공업사 사장이 스스로에게 물어볼 6가지
- 우리 지역의 전기차 보급률. 현재와 향후 5년 예상치. 보급률 15% 이상 권역이면 인증 전환이 유리, 5% 이하이면 혼합 또는 잔류가 합리적.
- 자본 여력. 여유 자금 + 차입 가능 규모. 회수 기간 동안 운영이 버틸 현금흐름이 있는지.
- 승계·세대 전환 계획. 후계자가 있는가. 있다면 후계자 세대가 전기차 쪽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가.
- 제조사와의 기존 관계. 이미 블루핸즈·오토큐·수입차 네트워크에 들어가 있는가. 관계가 있는 브랜드부터 시작하는 게 진입 비용이 낮다.
- 규모·인력. 현재 공간·직원·매출이 어느 정도인가. 인증 진입 조건을 맞출 수 있는 규모인가.
- 사장 본인의 시간 축. 앞으로 5년, 10년, 15년을 어떻게 설계하는가. 본인 세대에서 마무리할지, 다음 세대까지 이어갈지.
이 여섯 질문에 솔직하게 답한 뒤, 답이 서로 일관된 쪽을 선택하면 큰 실수가 없다. 답이 충돌하면 (예: 자본은 있지만 후계가 없다, 보급률은 낮지만 자본은 있다) 충돌의 이유를 살피는 게 먼저다.
전국 공업사 시장의 5년 후 구조 — 시나리오
현장에서 얘기되는 5년 후 구조를 정리하면 대략 이렇게 된다.
상위 20%. 인증 공업사·대형 네트워크·복수 브랜드 체인. 전기차 수리 시장의 70% 가까이를 커버한다. 보험사·제조사와의 계약도 이 층에 집중된다. 투자가 들어간 만큼 진입 장벽이 두터워지고, 한 번 안정되면 교체가 어렵다.
중간 60%. 중소형 공업사·일반 공업사. 이 층이 가장 크게 흔들린다. 내연기관 잔류로 갈 것인지, 혼합으로 갈 것인지, 소규모 인증(1개 브랜드)에 도전할 것인지. 각자의 답이 다르다. 이 층 내부에서도 상·하 분리가 진행된다.
하위 20%. 폐업·승계 실패·1인 공업사 은퇴. 인력 고령화와 시장 축소가 겹치면서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이 공백을 누가 흡수할 것인지가 각 지역의 작은 기회가 된다.
이 시나리오는 확정된 미래가 아니다. 제도·기술·경제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다만 방향성은 이미 대부분의 업계 관찰자가 공유한다.
사다리 다른 글로 가지치기
전기차 시장의 변화는 공업사 경영의 다른 축과도 이어진다. 이 시리즈 안에서 직접 다루지 않았지만 사다리 안에서 이어서 읽을 만한 주제들.
- 재무·자금. 수억 단위 인증 투자를 설계할 때의 차입 구조, 리스와 자산 관리, 세무 처리. 사다리의 재무·자본 축 참고.
- 승계·세대 전환. 후계자 세대가 내연기관 공업사를 물려받을 때의 구조조정, 가업승계의 법적·세무적 준비. 경영 축 참고.
- 조직·인력. 전기차 기술자 채용과 유지, 기존 판금·도장 기술자의 재교육, 다세대 팀의 운영. 사람 축 참고.
- 디지털·시스템. 진단 장비·재보정 장비가 연결되는 데이터 체계, ERP와의 통합, 고객 관리. 디지털 축 참고.
하나의 공업사가 살아남는 데 필요한 축은 대물 협상만이 아니다. 재무·승계·조직·디지털이 함께 움직인다. 이 시리즈는 그중 대물·보험 생태계에 초점을 맞췄을 뿐이다. 나머지 축은 사다리의 다른 카테고리에서 이어갈 수 있다.
시리즈 전체의 마무리 — 34편을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
1편에서 던진 질문을 다시 꺼낸다.
- 돈은 어디로 흐르는가. 보험료가 공업사·부품상·렉카·렌트카·병원으로 쪼개지는 경로. 2~5편에서 폈다.
- 보험사들은 어디로 가려 하는가. 대형 4사·중견·중소의 전략 분기, 채널과 네트워크. 6~10편에서 다뤘다.
- 공업사는 보험사와 어떤 관계인가. 청구·공임·지정·KPI. 11~14편.
- 공업사는 옆 이해관계자와 어떤 질서에 놓여 있는가. 간판·부품상·렉카·렌트카·병원·손사·변호사. 15~21편.
- 제휴와 영업의 진짜 풍경. 조직 해부·교집합·빛과 회색·구조적 원인. 22~27편.
- 정공법으로 오래 버틴 공업사의 지렛대. 데이터·사진·전산·품질 인증·복수 거래. 28~30편.
- 앞으로 5년 생존과 도태의 분기점. 31편.
- 전기차가 만든 공백과 공업사의 선택. 32~34편.
이 지도를 다 깔고 나면 한 문장이 남는다.
"이 업계는 관찰하는 자가 오래 버틴다."
뇌물이 오래 버티는 게 아니다. 운이 오래 버티는 게 아니다. 한 건의 대물 협의, 한 건의 부품 주문, 한 번의 제휴 재계약을 기록하고, 다시 보고, 다음 번에 다르게 움직이는 사람이 오래 버틴다. 이 체계적 관찰·기록·정공법·분산이 공업사의 진짜 자산이다. 장비도 아니고 인맥도 아니다. 사장의 머릿속에 쌓인 패턴, 그리고 그 패턴을 글·파일·데이터로 바깥에 꺼내 놓은 축적이다.
시리즈를 덮어도 변수는 계속 바뀐다. AI 기반 손해사정의 확산, 재생부품의 제도화, 배터리 재사용 산업의 성장, 자율주행과 책임 분배의 재편, 세대 교체에 따른 공업사 지형의 변화. 이 변수들을 따라가는 지도는 독자 각자의 몫이다. 34편의 지도는 그 시작점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1편에서 쓴 문장을 다시 옮긴다. "전국 수천 개의 공업사 사장들이 1960~70년대생이다. 이 분들이 수십 년에 걸쳐 축적한 대물 협상·부품상 관리·제휴 구축의 감각은 글로 남아 있지 않다." 이 시리즈가 그 감각의 극히 일부라도 글로 남기는 역할을 했기를 바란다. 다음 세대의 공업사 사장이 처음 대물 협의에 앉을 때, 이 34편이 옆에 한 권의 지도로 있으면 족하다.
34편의 지도를 여기서 마친다. 하나의 공업사가 평생을 걸고 버티는 이유는 결국 시장을 오래 들여다보는 일이다. 다음 주부터는 이 지도 밖의 다른 주제로 넘어간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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