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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경영공업사 사장이 본 자동차 보험 생태계 · 33편 / 34편

보험사의 딜레마 — 수리비 폭등과 정비 가능 공업사의 희소성

전기차 손해율이 내연기관의 몇 배가 되는 구조, 그리고 보험사가 움직이는 방향

홍정현·2024.08.12
11분 읽기

이 글은 32편 "전기차가 이질적인 이유"의 후속이다. 공업사 쪽에서 본 장벽을 반대편, 즉 보험사 쪽에서 다시 본다. 보험사가 지금 어디서 고민하고 있으며, 이 고민이 공업사 시장에 어떤 압력과 기회를 만드는지를 정리한다.

임원 회의실의 빨간 슬라이드

오후 두 시. 대형 손보사 본사 18층 임원 회의실. 대물담당 상무가 4분기 손해율 분석을 띄운다. 화면 중간쯤에 한 슬라이드가 지나간다. 표 상단은 내연기관 차종별 손해율. 대부분 익숙한 범위 안에 있다. 그 아래, 별도 블록으로 처리된 줄이 있다. 전기차 전용 손해율. 숫자가 빨갛게 표시돼 있다. 같은 차급 내연기관의 두 배에 가깝다.

회의실이 잠시 조용해진다. 이 숫자가 낯선 게 아니다. 분기마다 봐온 숫자다. 다만 분기마다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전기차 비중이 커질수록 이 숫자가 회사 전체 손해율을 끌어올린다. 임원 중 한 명이 말한다. "보험료를 올리든가, 수리비를 잡든가, 둘 중 하나는 해야 합니다." 상무가 답한다. "양쪽 다 쉬운 길이 아닙니다."

이 회의실의 긴장이 곧 공업사 현장의 긴장이 된다. 보험사가 수리비를 잡으려 할 때 가장 먼저 손이 가는 곳은 공업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기차 시장에서는 보험사의 손이 마음대로 뻗지 못한다. 이유 세 가지다.

왜 전기차 수리비가 내연기관의 몇 배인가

업계에서 수치를 구체적으로 공개하기는 민감하지만, 국내외 보험사 IR 자료와 해외 공시에서 읽히는 공통된 방향은 분명하다. 전기차 1건당 평균 수리비는 동급 내연기관의 1.5~3배 수준이라는 범위가 반복적으로 언급된다. 이 차이는 몇 가지 구조적 원인에서 온다.

첫째, 배터리팩이라는 고가 부품. 배터리팩은 전기차 원가의 30~40%를 차지하는 핵심 부품이다. 사고로 배터리가 손상되면 제조사 판단에 따라 팩 전체 교체로 가는 경우가 많다. 수백만 원부터 수천만 원까지, 차종에 따라 소형 승용차 한 대 값에 가까운 견적이 나온다. 하체 쪽 접촉 사고가 내연기관에서는 범퍼·머플러 수준으로 끝나지만, 전기차에서는 배터리팩 진단·교체까지 갈 수 있다.

둘째, 인증 공업사의 가격 결정권. 32편에서 정리했듯 전기차 수리는 제조사 인증 공업사로 집중된다. 내연기관 시장에서 보험사는 수만 개 공업사 중 협상력이 낮은 쪽을 골라 협력업체로 넣고 단가를 조정할 수 있었다. 전기차 시장에서는 대체재가 없다. 인증 공업사가 지역에 한두 곳뿐이라면 보험사가 "싸게 안 하면 다른 데로 보낸다"는 카드를 쓸 수 없다. 제조사·인증 공업사가 단가를 거의 그대로 유지한다.

셋째, 부품 조달 기간. 전기차 부품, 특히 배터리 모듈·센서 어셈블리·전용 외판은 제조사 공급망을 통해야 한다. 재고가 국내에 없으면 주문 후 공급까지 수 주에서 수개월이 걸린다. 이 기간 동안 대차료가 계속 누적된다. 대차가 3~4주 이어지면 대차료만 수백만 원이 된다.

넷째, ADAS 재보정·정렬·소프트웨어 인증. 범퍼 하나를 교체해도 카메라·레이더 재보정이 들어가고, 배터리 모듈을 바꾸면 소프트웨어 인증 비용이 추가된다. 이 항목들이 내연기관 견적서에는 없던 줄이다.

다섯째, 알루미늄·접착 바디 수리 시간. 같은 크기의 펜더·도어를 복원할 때 강판보다 알루미늄이 시간과 공임이 더 든다. 판금 시간이 길어지고, 도장 공정도 한 단계 더 복잡해진다. 공임 시간이 늘어나면 그만큼 대차 기간도 늘어난다.

이 다섯 가지가 한 건의 견적에 함께 쌓인다. 내연기관 소형차 범퍼 교체가 100만 원으로 끝날 때, 같은 크기 전기차 정면 접촉은 배터리 진단 + 범퍼 + 센서 재보정 + 대차로 400~600만 원이 쉽게 나간다. 이 차이가 손해율에 누적된다.

보험사 현장에서 체감되는 3가지 변화

현장 담당자들이 체감하는 변화는 숫자 이상이다.

대물 1건의 평균 금액 상승. 같은 사고 심각도라도 대물 지급 평균이 올라간다. 담당자 1인당 월 처리 건수는 비슷한데 처리 금액 총액이 커진다. KPI 기준선이 흔들린다.

대차 기간 장기화. 부품 조달에서 시간이 잡히면 대차가 길어진다. 고객 민원도 같이 늘어난다. "왜 한 달이 걸립니까"의 전화가 많아지고, 담당자는 "부품이 국내에 없어서요"를 반복 설명한다.

보험사 협상력 약화. 협력 공업사에 "단가 좀 협의합시다"가 내연기관에선 통했다. 전기차 인증 공업사에는 통하지 않는다. 대물담당자가 견적서를 받아도 깎을 항목이 거의 없다. 공임표·부품 단가가 제조사 표준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담당자 입장에서 "협상할 게 없는 견적"이 늘어난다.

이 세 변화가 누적되면서 본사 기획 부서가 받는 보고서의 그림이 달라진다. "전기차 비중이 X%를 넘으면 손해율이 Y까지 간다"의 시뮬레이션이 매 분기 다시 돌아간다.

보험사의 대응 카드 — 현재 관찰되는 움직임

보험사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공개된 상품·조직 변화에서 다섯 가지 방향이 읽힌다.

1. 전기차 전용 보험료 산출. 기존에는 차종별 요율에 전기차가 섞여 있었다. 최근 대형사 몇 곳에서 전기차 전용 요율 구간을 따로 두거나, 전기차 전용 상품을 출시하는 움직임이 있다. 고위험 전기차에는 할증, 저위험에는 일부 할인. 이 구분이 점점 세분화된다.

2. 제조사와의 협약 네트워크. 현대차·기아의 블루핸즈·오토큐 네트워크와 보험사 협력 구조가 재조정되고 있다. 테슬라의 Approved Body Shop 네트워크에 보험사 선호 채널을 끼워 넣는 방식도 협의된다. 보험사가 인증 공업사 쪽에 수리 물량을 안정적으로 보내주고, 인증 공업사는 단가 일부를 조정해주는 거래다.

3. 자체 인증 공업사 네트워크 구축. 몇몇 대형 보험사는 자체 인증 체계로 전기차 수리 공업사를 선별·지원하고 있다. 제조사 인증과 별개로 보험사 자체 기준을 만족하는 곳에 공임·송객 혜택을 주는 구조다. 다만 이 네트워크가 기존 제조사 인증과 충돌하기도 해서 속도는 제한적이다.

4. 경미손상 기준의 전기차 버전 개정 논의. 내연기관 범퍼에 적용되는 경미손상 기준을 전기차에는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전기차 범퍼 뒤에는 센서·카메라가 빽빽하게 붙어 있어 "경미한 긁힘"이 실제로는 센서 교체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기준의 개정이 업계 논의 테이블에 올라 있다.

5. 배터리 진단·재사용 산업과의 연계. 사고 배터리를 무조건 폐기하는 대신, 상태 진단 후 재사용·2차 활용(에너지저장장치 등)으로 돌리는 산업이 커지고 있다. 이 산업과 보험사가 연계되면 사고차 배터리 잔가를 회수할 수 있어 대물 지급액을 낮출 여지가 생긴다. 아직 초기 단계지만 방향성은 뚜렷하다.

해외 참고 — Tesla와 유럽

레퍼런스로 자주 인용되는 두 사례가 있다.

Tesla의 Approved Body Shop 모델. 테슬라는 바디 수리 네트워크를 철저히 직영 + 승인 체계로 관리한다. 보험사는 이 네트워크에 맞춰 움직여야 하고, 보험사 단독으로 단가를 좌우하기 어렵다. 미국에서 테슬라 전용 보험(Tesla Insurance) 출범 이후 보험사가 테슬라 차량의 손해율을 통제하기 점점 어려워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럽의 EV 보험 할증. 영국·독일 등에서 전기차 전용 보험료가 동급 내연기관보다 평균 20~50% 높게 책정되는 사례가 보고된다. 수리비 인플레이션이 주요 원인이다. 특히 테슬라·폴스타·BMW i 시리즈 같은 고가 전기차는 할증률이 더 크다.

한국 시장은 전기차 보급률이 아직 낮지만, 보급률이 10%를 넘어서는 구간부터 유럽과 비슷한 곡선을 밟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보험사 기획 부서가 해외 사례를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업사 입장에서 이 딜레마가 만드는 기회와 위협

보험사의 딜레마는 공업사 시장에도 양방향의 압력을 만든다.

기회. 인증 공업사는 희소하다. 한번 인증망에 들어가면 당분간 경쟁이 많지 않다. 보험사 물량이 안정적으로 들어오고, 단가 협상도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자동차 시장 전체가 전기차 쪽으로 옮겨가는 장기 추세를 타고 가면, 초기 투자 회수 이후의 운영은 내연기관 공업사보다 안정적일 수 있다.

위협. 내연기관에만 남아 있는 공업사는 입고량이 서서히 줄어든다. 사고 건수 자체가 점진적으로 전기차 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10년 뒤 동네 차량 절반이 전기차라면, 내연기관 공업사의 시장은 절반으로 줄어 있는 셈이다. 축소된 시장 안에서 공업사 수는 천천히 줄어들지만 속도가 맞지 않아 치열한 경쟁이 이어진다.

이 기회·위협은 공업사 규모·위치·자본에 따라 전혀 다르게 작동한다. 어떤 선택이 누구에게 맞는지는 34편에서 정리한다.

향후 5년 보험사 네트워크 전략 — 관찰 가능한 방향

지금 드러난 단서를 종합하면 향후 5년간 보험사 네트워크 전략의 방향이 보인다.

  • 전기차 비중 10~15% 구간의 임계점. 이 구간을 넘어서면 전용 상품·전용 단가표·전용 네트워크가 본격적으로 분리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과도기다.
  • 인증 공업사 투자 인센티브. 보험사가 인증 공업사 신규 진입을 유도하기 위해 단가 지원·송객 우선권·교육 비용 보조 같은 인센티브를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 자체 네트워크를 빨리 두터이 만들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 보험사-제조사 협상의 재조정. 지금은 제조사가 우위다. 보험사가 여러 인증 공업사와의 분산 거래·자체 네트워크 구축으로 레버리지를 만들어 가면, 몇 년 내 협상 구도가 조금 바뀔 수 있다.
  • 경미손상·대차·재사용 배터리 관련 규정 정비. 업계·정부·보험사가 함께 테이블에 앉아 정리해야 할 이슈들이다. 이 정비가 빨리 될지 늦게 될지가 공업사 실무에 그대로 반영된다.

공업사 사장이 읽을 3가지 신호

이 전체 흐름을 매일 쫓을 필요는 없다. 다만 세 가지 신호는 주기적으로 확인할 가치가 있다.

1. 보험사의 전기차 전용 단가표 발표. 대형 손보사가 전기차 전용 공임·부품 단가표를 별도로 공시하기 시작하면 그 시점이 임계점이다. 단가 구조가 분리되면 인증 공업사와 일반 공업사의 경제성 차이도 선명해진다.

2. 경미손상 전기차 버전 개정. 경미손상 기준이 전기차용으로 별도 개정되면, 전기차 범퍼·외판 교체가 내연기관처럼 축소되던 흐름이 달라진다. 공업사 쪽에 견적이 복구되는 방향이 될 수도 있고, 오히려 더 엄격하게 축소될 수도 있다. 방향을 봐야 한다.

3. 지역별 인증 네트워크 공시. 금감원·보험개발원·제조사의 공식 자료에서 지역별 인증 공업사 수가 어떻게 늘어나는지 추적 가능하다. 우리 지역이 아직 공백이라면 기회, 이미 포화 상태라면 다른 판단이 필요하다.

이 세 신호가 공업사 사장의 의사결정 달력에 들어가 있으면 충분하다. 34편에서는 이 신호들을 놓고 공업사가 어떤 선택지 중 어디로 갈 수 있는지, 시리즈 전체를 덮는 마지막 분기를 정리한다.

시리즈 예고 — 34편(마지막 편): "공업사의 선택 — 전기차 인증으로 갈 것인가, 내연기관에 남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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