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공장의 진짜 사장은 견적사다
운산자동차 사장이 직접 겪은 견적사 부재 — 한국 정비 애프터마켓의 구조적 위험
이 글은 자영업 8축 중 expertise(전문성·도구) 트랙의 첫 편이다. 정비업 시리즈와 인접하지만 다른 트랙이다. 정비업 시리즈가 사고 처리 밸류체인을 사장의 시점에서 본 것이라면, 이 트랙은 정비공업사의 핵심 직무인 견적사·판금기사·도장기사 같은 자리를 분해한다. 첫 자리가 견적사다.
한 명이 떠난 자리
운산자동차 견적사 한 명이 그만뒀다. 사이가 좋게 끝나지 못했다. 인수인계는 없었고, 그가 머릿속에 담아 둔 견적 노하우·부품상 거래선·손해사정사 응대 기억은 회사에 남지 않았다. 그가 자비로 가져 간 것은 카톡 대화, 손사 담당자 휴대폰 번호, 그리고 정비공장에서 견적사 한 명만 알고 있던 작업 단위별 단가 감각이다.
이 글은 그 빈 자리를 그대로 보면서 시작한다. 운산자동차는 광명에서 정비공업사와 자동차 검사장을 운영한다. 4·5층의 메인 라인은 월 매출 5천만에서 9천만 원 사이를 오간다(2022년 2월부터 2023년 12월까지의 자체 데이터). 견적사 한 명이 주로 그 두 라인을 끌고 갔다. 그가 떠나자, 어느 한 부분의 공백이 아니라 매출 중심 60% 이상이 즉시 흔들렸다.
이건 운산만의 일이 아니다. 한국 정비공장의 구조 자체가 그렇다. 정비기사·판금기사·도장기사가 실제로 차를 고친다. 그러나 차가 들어오기 전부터 들어와서 나가는 모든 시점의 돈과 정보는 견적사 한 명이 잡고 있다. 그 한 명이 빠지면 매출이 흔들린다. 같은 구조를 가진 공장이 한국에 수천 개다.
견적사가 실제로 무엇을 하는가
정비공업사 안에서 견적사라는 자리가 무엇을 하는지 풀어 보자. 표면적으로는 "얼마 들어요"에 답하는 사람이지만, 안에서 보면 네 단의 일을 동시에 처리한다.
첫째, 진단이다. 차량을 직접 보고 손상 부위를 잡는다. 외판인지 내판인지 구조 부재인지를 가른다. 판금으로 펴서 살릴 수 있는지, 부품을 통째로 갈아야 하는지를 결정한다. 이 결정 한 번에 견적의 30~70%가 갈린다.
둘째, 수가 산정이다. 작업 시간과 시간당 단가를 곱해 공임을 잡는다. 부품을 어디서 받느냐에 따라 부품대가 정해진다. 도장은 면 단위로 잡는다. 운산이 2024년 3월 G63 AMG 한 대 견적에서 잡은 작업 항목은 약 마흔 줄이다. 부품 838만 원, 공임 234만 원, 부가세 포함 총 1,180만 원. 이걸 작업 단위로 분리해 견적서를 짠 사람이 견적사다.
셋째, 이해관계 조정이다. 차주는 더 빨리·더 싸게를 원한다. 보험사는 더 적은 청구액을 원한다. 손해사정사는 표준 작업시간 안에서 자르려 한다. 부품상은 더 비싼 부품을 더 빨리 결제받기를 원한다. 견적사는 이 네 사람 사이에 끼어 협의한다. 가장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이고, 같은 사고도 사람마다 결과가 가장 다른 일이다.
넷째, 시스템 처리다. 보험사 청구는 AOS(Automobile repair cost On-line Service)라는 시스템으로 한다. 보험개발원이 2003년 개발한 자동차정비 견적·청구 시스템이다. 전국 4500여 곳의 1·2급 정비업체가 쓴다. 사진을 올리고 작업 항목을 입력하고 자동 산출 결과를 검토하고 손사 출장을 요청한다. 작업이 끝나면 청구를 누르고, 보험사 입금을 추적하고, 차주의 자기부담금을 받는다.
이 네 단을 한 명이 다 본다. 다른 업종에는 거의 없는 구조다. 영업 제조 서비스 어느 쪽이든, 진단·단가 협상·시스템 처리를 한 명이 모두 보는 자리는 흔하지 않다. 그런데 한국 정비공장은 이게 표준이다.
의존의 결과
견적사가 한 명이고 그 한 명이 네 단을 다 보면, 그 사람이 자리를 비울 때 매출의 모든 단이 동시에 흔들린다.
운산은 견적사가 떠난 직후 다음 일들을 한꺼번에 마주했다.
- 진행 중이던 사건의 손사 협의 기록이 머릿속과 카톡에 흩어져 있어서 다음 사람이 이어받기 어려웠다.
- 부품상 거래는 회사 명의 카톡이 아니라 견적사 개인 카톡으로 가 있는 채널이 일부 있었다.
- AOS 사고번호별 진행 단계는 시스템에는 남아 있지만, 어디서 깎였고 어디서 살아남았는지의 맥락은 견적사 머릿속에만 있었다.
- 신규 입고 응대가 늦어졌다. 카톡 응답 1시간 안 표준이 깨졌다.
이건 운산만의 일이 아니다. 한국 정비 애프터마켓의 구조적 위험이다. 중소기업중앙회의 2022년 조사에 따르면 응답한 중소기업의 57%가 인력 부족 상태였고, 채용 진행 시 가장 큰 문제는 "필요인력에 비해 입사지원자 부족"으로 응답률 47.2%였다. 응답 기업의 70.7%는 필요인원보다 적은 수의 인력으로 운영했고, 재직인원은 필요인원의 82.9% 수준이었다.
자동차 정비 채용 사이트(잡카·잡코리아·모터스잡)에는 견적사·판금사·도장사 모집 공고가 항상 떠 있다. 그러나 실제 채용은 잘 안 된다. 5년 이상 경력자를 요구하는 공고가 다수다. 신입은 거의 안 받는다.
왜 5년인가. 견적사 일을 단독으로 하려면 진단·수가·협의·시스템을 모두 일정 수준 이상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독 견적이 가능한 시점까지 보통 1~3년, 단가·협의·관계까지 안정화되려면 5년이 든다. 그 5년을 버틴 견적사는 어디 가나 모셔 가는 자리가 된다. 한 명이 떠날 때의 충격이 큰 이유다.
신입에게 정비공장은 들어갈 만한 자리인가
5년 경력자를 시장에서 못 구한다면 신입을 키우면 된다. 그런데 신입 진입 자체가 어렵다.
업계 인터넷 게시판(클리앙·블라인드·잡코리아 Q&A)에 올라온 신입 견적·판금 기사들의 하소연을 모아 보면 같은 패턴이 나온다. 직접 인용하지는 않고 골자만 옮기면 다음과 같다.
- 견습 3~5년 동안 임금이 최저임금 수준이다. 그 이후에도 경력 대비 보상이 다른 업종보다 낮다는 평이 다수다.
- 진동 공구를 하루 4시간 이상 잡는 게 신체적으로 매우 힘들다. 20대 이탈률이 높다.
- 미세 금속 분진 노출로 피부가 변색되거나, 진폐·익상편 같은 직업병 위험이 있다는 글이 자주 올라온다.
- 점심 시간이 따로 보장되지 않는 곳이 많다는 호소가 자주 나온다.
이 환경에서 5년을 버티는 사람만 단독 견적사로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사람이 귀하기 때문에 단가가 비싸지고, 단가가 비싸기 때문에 정비공장이 신입을 잘 받지 않는다. 신입을 잘 받지 않기 때문에 다음 세대 견적사가 안 길러진다. 다음 세대가 안 길러지기 때문에 5년 경력자 시장이 더 비좁아진다. 이게 한국 정비 애프터마켓이 견적사 한 명에 매달리는 구조의 회로다.
이 회로 위에 사이가 좋지 않게 끝나는 퇴사가 한 번 있으면 회사 자산의 큰 한 부분이 즉시 사라진다. 그가 머릿속에 가진 것을 회사가 시스템으로 보유하지 못한 결과다. 운산도 이걸 사이가 끝난 뒤에 다시 봤다.
보험사도 이 의존을 알고 있다
흥미로운 건 이 의존을 보험사도 알고 있다는 점이다. 보험개발원은 2021년부터 AOS의 후속 버전 AOS 알파를 개발해 왔다. 한화시스템과 협력해 만든 AI 기반 자동 견적 시스템이다. 사고 차량 사진을 입력하면 AI가 손상 부품과 손상 심도를 인식해 자동으로 추정 수리비를 산정한다.
보험사 입장에서 이 시스템은 두 가지 효과를 노린다. 첫째, 사고 접수 직후 현장에서 수십 초 안에 추정 견적이 나온다. 둘째, 정비공장 견적사의 임의 판단 폭이 줄어든다. 즉 견적사 한 명에게 의존하던 보험사도 견적사 의존을 줄이고 싶어 한다.
이건 정비공장 견적사 입장에서 위협으로 보이지만, 실제 본질은 다르다. AI가 표준 견적을 자동으로 잡는 시점부터 견적사의 일은 표준 견적 자체가 아니라 표준에서 벗어나는 케이스의 판단·협의가 된다. 차량이 고착됐을 때, 인접 부재 손상이 동반됐을 때, 색상 매칭이 까다로울 때, 손사가 깎으려 할 때, 부품이 단종됐을 때. 이 영역은 AI가 잡지 못한다.
문제는 한국 정비공장 대부분이 이 변화에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점이다. 견적사 한 명이 모든 일을 하던 구조에서, 견적사가 표준 외 판단·협의에 집중하고 그 외는 AI·시스템이 처리하는 구조로 가야 한다. 그러려면 정비공장 자체가 데이터를 누적하고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운산이 풀어가는 실험
운산자동차는 견적사 부재를 계기로 이 구조를 분해하기로 했다. 한 명에게 의존하던 자리를 다음 단으로 나눈다.
- 1차 진단·사진은 정비기사가 잡는다. 차를 매일 보는 사람이라 가장 빠르고 가장 자연스럽다.
- AOS 입력은 AI가 보조한다. 사진과 메모를 주면 입력 항목을 자동 추천하는 도구를 운산네트웍스에서 시범 중이다.
- 일반 견적서 자동 생성은 Custom GPT 또는 Claude Project 한 개로 1차 초안 작성. 사람이 검수한다.
- 부품상 견적은 사무 직원과 자동 메시지 도구의 조합으로 받는다. 모델·연식·옵션·VIN 단위로 표준 양식을 보내면 부품상 응답 시간이 줄어든다.
- 손사 협의는 사람이 직접 한다. 외주 손해사정사 출신을 풀로 두고 사건별로 매칭하는 방향으로 간다.
- 청구·미수 추적은 자동화된 표와 매주 점검 루틴으로 처리한다.
가장 무게가 실리는 게 마지막 한 가지다. 운산이 누적해 온 약 1000건의 사고 사진·견적서·청구서 매핑 데이터로 Visual RAG 시스템을 만든다. 신규 사진을 넣으면 유사 사례 N건이 견적·청구·협의 결과와 함께 나온다. 신입 견적사가 옆에 두고 펼쳐 볼 수 있는 사례 사전이고, 보험사 손사와 협의할 때 "이전 N건의 평균이 이렇다"는 근거가 된다.
이게 단순한 자동화 도입이 아니다. 운산의 견적 판단 기준 자체를 시스템에 박는 작업이다. 견적사 한 명이 떠나도 운산다움이 흔들리지 않는 구조로 가는 실험이다.
이 실험이 성공하면 운산자동차의 사내 도구로 끝나지 않는다. 운산네트웍스 SaaS의 모듈로, 운산 모빌리티 파트너 프로그램의 외부 공장 풀로 확장이 가능하다. 한국 정비 애프터마켓에서 견적사 한 명에 매달리는 공장은 운산만이 아니다. 같은 문제를 가진 공장이 운산의 시스템을 구독해서 쓸 수 있다면, 산업 전체의 구조적 위험이 한 단 내려간다.
다루지 않은 것
이 글은 견적사 한 명에 대한 헌사가 아니다. 한 명에 의존하는 구조가 위험하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견적사 본인의 가치를 깎지 않는다. 5년을 버틴 견적사는 한국 정비 애프터마켓의 핵심 자산이다. 그 자산을 어떻게 더 잘 쓸 것인가 — AI가 표준 견적을 잡고 견적사가 표준 외 판단에 집중하는 구조 — 가 본질이다.
견적사 한 명을 데려오기까지의 채용·교육·평가·보상 정책은 이 글에서 다루지 않는다. 같은 트랙의 다음 편에서 풀어낼 것이다. AOS 알파 같은 AI 도입이 정비공장의 일상에 어떤 변화를 만드는지도 별도 편으로 다룬다. 운산이 1000건 데이터로 Visual RAG를 만드는 과정 자체도 따로 기록할 가치가 있다.
특정 보험사·정비공장·부품상을 실명으로 비난하지 않는다. 사이가 좋지 않게 끝난 견적사 본인을 비난하지 않는다. 이 글은 한 사람이 떠난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에 매달리는 구조에 대한 글이다.
한 줄
정비공장의 진짜 사장은 견적사다.
운산자동차도 한 명이 떠나서야 이걸 분명히 봤다. 본질은 한 명에게 매달리는 구조 자체에 있다. 흐름은 흐르게 두되, 본질은 누적되게 — 이게 운산이 가는 길이다.
다음 편에서는 견적사가 실제 하루 동안 무엇을 하는지를 단계별로 따라간다. 입고 전 카톡 응대부터 출고 후 사후 관리까지, 한 명이 머릿속에 담고 있던 흐름을 글로 펼쳐 본다.
출처
AOS·정비 견적 시스템
- AOS 시스템 — 보험개발원 webaos.com
- 보험개발원 AOS 보완작업 ‘분주’ — 보험매일
- 한화시스템, AI 기반 자동차 수리비 자동견적 시스템 'AOS 알파' 본격 시행 — 자동화월드
- 보험개발원, AI 기반 AOS알파 시스템 고도화 작업 착수 — 전자신문
- "XX원입니다"…차량 사고, 사진 찍으면 견적 알려준다 — SBS 뉴스
중소기업·정비 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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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터스잡 — 자동차정비 구인구직
사고처리·견적 관행
- 수리 먼저 vs 견적 먼저, 자동차정비 이슈 재점화 — 한국공제보험신문
- 의심되는 자동차 수리비, 바가지 피하는 방법 6가지 — 헤이딜러
- 똑똑하게 자동차 수리비 견적 내는 방법 6가지 — 카바조 블로그
운산 자체 자료 (비공개)
- 운산자동차 자동차 점검·정비 명세서 (115어1600 G63 AMG, 2024-03-20)
- 운산자동차 판금부 매출·대수 데이터 (2022.02~2023.12)
- 운산자동차 판금부 정산프로그램 기획안
- 운산자동차 판금부 개선 회의 자료 (2024-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