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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 사고 처리 밸류체인 · 4편 / 9편

담당자 뒤에 있는 네 기관 — 국토교통부·금감원·손보협회·보험개발원

"본사 지침이요"라는 말 뒤를 보는 최소한의 지도

홍정현·2024.01.22
7분 읽기

이 글은 《사고 처리 밸류체인》 시리즈 4편이다. 3편에서 손해율이라는 숫자가 본사에서 현장까지 내려오는 경로를 봤다. 이번 편은 그 본사 위에 뭐가 있는지 짚는다. 담당자가 "본사 지침이요"라고 말할 때, 그 지침을 쓰는 네 기관의 지도다.

"본사 지침이요"

공업사 사장이 담당자에게 "왜 공임이 또 깎였냐"고 물으면 돌아오는 말이 정해져 있다. "본사 지침이요." 이 문장이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건지 생각하지 않으면 담당자가 핑계만 대는 사람으로 보인다. 사실은 핑계가 아니다.

담당자 행동은 지점 KPI 안에서, 지점 KPI는 본사 전략 안에서, 본사 전략은 네 개의 외부 기관이 만든 지침 위에서 움직인다. 네 기관은 국토교통부, 금융감독원, 손해보험협회, 보험개발원이다.

이 네 기관은 공업사 사장이 직접 상대하는 주체가 아니다. 평생 민원 한 번 낼 일 없는 곳들이다. 그런데 이 네 기관의 움직임이 몇 달 뒤 내 견적서의 숫자를 바꾼다. 그 경로를 본다.

뉴스 한 줄이 견적서로 내려오는 길

경제지 한쪽 구석에 기사가 뜬다. "금감원, A 손해보험에 과징금 ○억 원 부과." 기사는 짧고, 일반 소비자는 두 번째 줄에서 관심이 꺾인다.

기사는 짧지만 공업사에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한 줄이 몇 달 뒤 내 견적서로 직접 내려오기 때문이다. 과징금 부과 사유가 해당 보험사의 현장 가이드로 번역된다. 금감원이 "보험금 지급 지연 관행"을 지적했으면, 분기 안에 해당 보험사의 대물 지급 일정이 빡빡해진다. "재생부품 관련 고지 미흡"을 지적했으면, 견적서에 부품 등급 표기 양식이 바뀐다.

네 기관이 현장에 닿는 길

기관공업사 현장에서 체감되는 경로
국토교통부정비업 등록 기준·공임 공표 → 업계 진입·가격 기준선
금융감독원제재·과징금 → 본사 내부 지침 교체 → 담당자 행동 변경
손해보험협회가이드 발행 → AOS 코드 반영 → 견적서 양식·인정 기준 변경
보험개발원AOS 표준작업시간·참조요율 → 견적 인정 금액 직접 변동

국토교통부 — 진입 기준과 공임 기준선

국토교통부는 자동차 애프터마켓 전반을 규율하는 법의 주무 부처다. 소관에는 성격이 다른 두 법이 있다.

자동차관리법은 정비업 등록 제도를 관장한다. 1급·2급·3급 구분, 면적·설비·기술 인력 기준이 여기서 나온다. 전기차 고전압 배터리 취급 같은 새 자격 기준도 이 라인을 타고 내려온다. 공업사 사장이 이 법을 체감하는 순간은 신규 등록, 확장, 시설 개보수 같은 분기점이다.

자배법(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은 결이 다르다. 모든 자동차 보유자에게 대인·대물 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무보험차 피해자 보장을 담당하는 법이다. 공업사 입장에서 이 법이 중요한 지점은 제15조의2, 자동차보험정비협의회를 규정하는 조항이다. 시간당 공임 협상의 법정 테이블이 여기서 나온다.

2019년 6월 자배법 개정으로 구 제16조(국토교통부장관 단독 조사·공표)는 폐지됐지만, 자배법 제15조의2 자동차보험정비협의회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보험업계 5명·정비업계 5명·공익대표 5명, 총 15인 협의체가 매년 6월 30일까지 시간당 공임을 협의하고, 합의 실패 시 국토부 장관이 의견 수렴 후 8월 1일까지 공표하는 구조다. 가장 최근 합의로는 2023년 말 협의회가 2024년도 공임을 전년 대비 3.5% 인상하기로 확정했다.

다만 공업사 카운터에서 실제로 마주치는 공임은 이 협의회 공표치만이 아니다. 자동차관리법 제58조에 따른 사업장 게시 공임, 보험사 AOS 심사 공임까지 포함해 세 가지 공임이 한 공장에 걸려 있다. 세 공임의 차이와 그 사이에서 실제 결제가 어떻게 결정되는지는 12편에서 표로 정리했다.

금감원 — 담당자가 갑자기 까다로워지는 진원지

법적 기반이 깔리면, 그 위에서 보험사 건전성과 영업행위를 감독하는 자리가 필요하다. 그게 금감원이다. 건전성(책임준비금·자본비율), 영업행위(보험금 지급 적시성·약관 해석 공정성), 분쟁조정, 상품 심사가 역할이다. 공업사 사장이 금감원을 체감하는 순간은 단 하나. 담당자가 갑자기 까다로워질 때.

금감원이 A 보험사에 "보험금 지급 지연 안내 부실"로 제재를 내렸다 치자. 제재 결과는 A사 본사 경영진이 먼저 받는다. 본사 컴플라이언스팀이 내부 지침을 고치고, 지점에 내려보낸다. 지점은 담당자 개인 KPI에 "지급 기일 안내 정확도"를 새로 박는다. 담당자는 이제 견적 협의 단계에서 기일을 엄격히 잡는다. 공업사 입장에서 보이는 건 "이 회사 담당자가 갑자기 깐깐해졌다"는 체감뿐이지만, 근원은 두세 분기 전 금감원 제재 한 건이다.

실제 사례 — 2019년 삼성화재·현대해상·DB손보 무더기 제재

금감원이 대형 손보사 3곳에 "보험금 지급 지연 안내 소홀"을 이유로 경영개선 조치를 내렸다. 삼성화재는 지연 사유를 모호하게 전달했고, 현대해상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추상적 문구만 안내했다. 이 조치 이후 3사 모두 지급 기일 안내 방식을 변경했다. 과징금 뉴스가 공업사 현장에 내려오는 경로의 전형적인 사례다.

금감원 보험금 늑장 지급한 손보사 무더기 제재 (보험매일, 2019.02.11) →

감독 한 건이 현장에 도착하는 데 보통 한 분기~반년. 3월에 나온 제재의 결과가 6~9월 현장에서 담당자 행동으로 올라온다. 지연 구조를 안다고 공업사가 당장 대응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담당자에게 매일 전화를 건다고 지급이 빨라지지 않고, 단가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도 움직일 여지가 완전히 없는 건 아니다. 담당자는 자기 KPI 안에서 여러 공업사를 동시에 관리한다. 손해율 부담이 떨어질 때 그 부담을 어느 공업사에 먼저 돌릴지엔 담당자의 재량이 있다. 협의 관계가 무난한 공업사는 먼저 깎일 자리에서 비껴난다. 꼭 불이익을 떠안을 공업사가 내가 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같은 흐름이 와도 내가 맞을 파도의 높이는 달라진다.

손보협회 — 업계 자율이 사실상 강제가 되는 자리

금감원이 보험사를 뒤에서 압박한다면, 손보협회는 보험사들이 스스로 맞추는 자리다. 손해보험사들의 자율 협회. 법적 강제력은 없지만 회원사 전체가 따르므로 사실상 구속력에 가깝다.

공업사 입장에서 협회의 존재는 보통 "가이드 한 장"으로 도착한다. 정부 방침이 나오면 협회가 현장 번역 가이드를 내고, 그에 따라 공업사 견적서 양식과 인정 기준이 바뀐다. 정부 방침에서 견적서 변화까지 보통 6~18개월. 협회가 움직이는 속도가 업계 현장 변화의 리듬을 정한다.

손보협회는 이름 그대로 보험사들의 협회이지 정비업계 협회가 아니다. 실무에서 쓸 만한 거의 유일한 창구는 자동차보험 종합포털이다. 표준약관 조문, 보험사별 상품 공시, 관련 고시·판례가 한곳에 모여 있어서 대물담당이 "규정 그렇다"고 할 때 조문을 직접 확인하거나 제휴 협상 전에 상대 보험사 공시 자료를 훑는 용도로 쓸 수 있다. 그 외 협회의 상설 기능들은 공업사 입장에서 이용 대상이 아니라 관찰 대상이다. 협회가 내린 기준이 현장에 도착하는 걸 받는 쪽이지, 내가 뭘 요청해서 움직이는 곳이 아니다.

보험개발원 — 내 견적 금액을 가장 직접 바꾸는 곳

보험개발원은 한국에 하나뿐인 보험 통계·요율 산출 기관이다. 1983년 설립, 보험업법에 근거해 전 보험사의 데이터를 모아 가공·산출한다. 민간이지만 사실상 준공공기관 성격이다.

앞의 손보협회와는 법적으로 별도 기관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같은 업계 자율 블록이다. 둘 다 보험사 분담금으로 움직이고, 손보협회가 정책·가이드를 맡으면 보험개발원이 통계·시스템을 맡는 역할 분담 구조다. 공업사 입장에서는 두 기관을 분리해서 볼 필요가 없다. 사실상 한 편이고, 공업사가 매일 마주치는 지점은 보험개발원이 운영하는 AOS다.

AOS — 자동차보험 정비요금 온라인 시스템

AOS(Auto-repair Online System)는 공업사가 매일 쓰는 견적·청구 전산이다. 견적 항목·표준작업시간·부품가·인정 기준 네 가지 데이터가 시스템 안에 숫자로 박혀 있고, 이 숫자 하나만 바뀌면 다음 날부터 전국 공업사의 견적 인정 금액이 달라진다. 손보협회 가이드 개정, 업계 관행 변화, 시스템 자체 업데이트, 이 모든 것이 결국 AOS 한 시스템으로 수렴해 견적서에 박힌다. 업계 결정이 공업사 카운터까지 내려오는 가장 짧고 직접적인 경로가 여기다.

한 가지만 짚고 간다. AOS는 두 층으로 돌아간다. 공통 인프라(플랫폼·표준시간·부품가)는 보험개발원이 깔아두고, 시간당 공임 단가·제휴별 계약가·심사 룰은 각 보험사가 얹는다. 내부 구조는 11편에서, 공임 전체 지도와 공업사 전략은 12편에서 본다.

네 기관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담당자를 움직인다

정리하면 네 기관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담당자 뒤에서 움직인다.

  • 국토교통부는 판을 짠다. 등록 기준과 공임 기준선을 재정의한다.
  • 금감원은 담당자 태도를 바꾼다. 뒤에서 본사를 압박해 지침을 갈아치운다.
  • 손보협회는 견적서 양식을 바꾼다. 가이드 한 장이 AOS 코드와 청구 서식으로 내려온다.
  • 보험개발원은 AOS를 운영하며 위 주체들의 결정을 현장에 반영한다.

공업사 사장이 이 네 기관에 직접 영향을 미칠 방법은 사실상 없다. 판을 짜는 건 이 네 기관이고, 그 판 자체는 개인이 바꾸지 못한다. 업계 단체를 통한 공동 의견 제출이 유일한 경로인데, 그마저도 수년 단위의 느린 움직임이다.

판은 못 바꾼다. 그렇다고 할 일이 없는 건 아니다. 판 안에서 내 자리는 움직일 수 있다. 그 방법들은 이 편의 주제가 아니다. 다음 편 이해관계자 지도 위에서 내 자리를 짚고 난 뒤, 각자 최선의 방향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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