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다리사장으로 가는 다리
경영경영공업사 사장이 본 자동차 보험 생태계 · 32편 / 34편

전기차가 이질적인 이유 — 고전압 배터리·진단 장비·인증 제도

내연기관 30년 공업사가 테슬라·아이오닉·EV6 앞에서 멈추는 5가지 장벽

홍정현·2024.08.05
11분 읽기

이 시리즈는 Part 8 "전기차가 만들어낸 공백"에 들어간다. 32편은 내연기관 중심으로 짜인 보험 생태계에서 전기차가 왜 이질적으로 작동하는지, 공업사 관점에서의 구조적 장벽을 정리한다.

오후 네 시, 견인차 뒤에 실려 온 테슬라

오후 네 시. 견인차가 평소와 다른 차를 끌고 들어온다. 정면 범퍼가 밀려 올라갔고, 프런트 트렁크(프렁크)가 반쯤 뜯긴 흰색 SUV. 보닛이라고 불러야 할지 프렁크라고 불러야 할지 잠시 헷갈린다. 테슬라 Model Y다. 보험사 견인 기사가 서류를 내민다. "접수번호는 이건데요, 여기서 받는다고 하시던데?"

30년 경력 공업사 사장은 본네트를 열기 전에 한 번 더 멈춘다. 내연기관 차는 눈 감고도 어디를 먼저 볼지 안다. 라디에이터, 인터쿨러, 에어컨 컨덴서, 헤드라이트 커넥터. 그런데 이 차에는 라디에이터가 없다. 엔진룸이라 부를 공간도 없다. 대신 오렌지색 굵은 케이블이 보인다. 고전압 케이블이다. 만지면 안 되는 케이블이다.

사장이 잠시 서 있는 사이 직원이 묻는다. "이거 우리가 해요?" 사장은 답을 못 한다. 범퍼 하나는 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프런트 구조물 안쪽, 센서 모듈, 카메라 어셈블리, 그리고 무엇보다 저 아래에 깔려 있는 배터리팩까지 영향이 갔다면 여기서 손댈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내연기관 공업사 앞에 전기차가 실려 들어오는 풍경은 점점 흔해진다. 그리고 그 풍경 앞에서 멈추는 공업사도 점점 흔해진다. 왜 30년 경력이 여기서는 통하지 않는가. 다섯 개의 구조적 장벽이 쌓여 있다.

장벽 1 — 고전압 배터리 시스템

내연기관 차의 전기 시스템은 12볼트다. 배터리에 손이 닿아도 따끔할 일은 있어도 생명에는 문제가 없다. 전기차는 다르다. 300볼트에서 800볼트까지, 제조사에 따라 다르지만 감전 한 번에 사람이 갈 수 있는 전압이다. 포르쉐 타이칸·현대 아이오닉 5·기아 EV6 같은 800V 플랫폼은 특히 높다.

이 전압이 장벽이 되는 경로는 세 갈래다.

작업자 자격. 고전압 배터리 시스템을 만지려면 고전압 작업 자격이 있는 기술자여야 한다. 제조사 교육을 받아야 하고, 사내 자격 관리도 따로 운영한다. 자격 없는 기술자가 고전압 부위에 손을 대면 사고 시 책임은 공업사 사장에게 전가된다.

전용 장비와 공간. 배터리팩 진단·탈착·수리에는 전용 리프트, 절연 공구, 고전압 격리 장비, 배터리 보관용 방폭 공간이 필요하다. 사고차 배터리는 언제 다시 발화할지 모르는 상태로 들어오기 때문에, 일반 주차 공간에 세워두는 게 금기다. 감시 카메라가 붙은 격리 구역에 두고, 외부 온도·전압을 관찰한 뒤에만 본작업에 들어간다.

사고차 배터리의 특수한 경로. 사고로 충격을 받은 배터리팩은 겉이 멀쩡해 보여도 내부 셀이 손상됐을 수 있다. 재사용·폐기·분석의 판단은 제조사 또는 인증된 진단 기관이 내린다. 공업사가 임의로 판단하지 못한다. 폐배터리는 별도 처리 업체가 수거하고, 이 수거 자체가 환경·운송 규정 아래에 있다.

내연기관 공업사 사장이 이 조건 앞에 서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이걸 내 공업사에 구축하려면 얼마가 드는가"다. 답은 명확하지 않지만 억 단위다. 그리고 구축했다고 끝나지 않는다. 운영 비용과 감시 책임이 매일 걸린다.

장벽 2 — 제조사별 진단 장비의 분절

내연기관 공업사가 익숙하게 쓰던 OBD 스캐너는 거의 범용이다. 현대·기아·르노·GM 어디든 코드 번호로 고장을 찾을 수 있었다. 제조사 전용 진단기가 있어도 범용 장비로 80% 이상 커버가 됐다.

전기차는 이 구조가 깨진다. 제조사별로 진단 장비가 완전히 분리돼 있다.

  • 테슬라는 Toolbox라는 자체 진단 플랫폼을 쓴다. 구독료가 붙는다.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배터리 상태 조회·모듈 초기화가 이 플랫폼을 통해야 가능하다.
  • 현대차·기아는 GDS(또는 차세대 KDS) 기반 진단기에 전기차 전용 모듈이 붙는다. 블루핸즈·오토큐 네트워크에 장비와 교육이 먼저 배포된다.
  • BMW·벤츠·폴스타·포르쉐는 각자 브랜드 진단 시스템이 있다. 수입차 공업사들조차 브랜드별로 장비를 별도 구비해야 한다.

이 분절이 만드는 문제는 소프트웨어 인증 코드다. 배터리 모듈을 교체했을 때, 도어의 센서 유닛을 교체했을 때, 시스템이 이 교체를 "정품·정상"으로 인식해야 기능이 복구된다. 이 인증은 제조사 서버와 연결된 정품 진단 장비에서만 가능하다. 무간판 공업사가 중고 부품을 달아 수리해도, 차량 시스템이 받아주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내연기관 시대에는 부품만 맞으면 차가 굴러갔다. 전기차 시대에는 부품이 맞아도 소프트웨어가 부품을 인정해야 차가 굴러간다. 이 차이가 공업사 선택지를 크게 좁힌다.

장벽 3 — 알루미늄·카본·접착 바디

내연기관 차의 차체 대부분은 강판이다. 판금 기술자라면 눈대중으로 두께·굽힘 각도·용접 포인트를 판단한다. 전기차는 차종에 따라 다르지만 알루미늄·카본·접착 구조 비중이 훨씬 높다.

배터리팩의 무게를 버티기 위해 하부 프레임을 알루미늄으로 짜거나, 강판과 알루미늄을 접착제·리벳으로 결합하는 구조가 늘었다. 테슬라의 기가프레스(giga press)로 찍어낸 대형 일체형 캐스팅 부품은 부분 수리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교체 단위가 크다. BMW i 시리즈나 폴스타는 카본 파이버 패널을 일부 사용한다.

판금·용접 기법이 완전히 다르다.

  • 알루미늄 용접은 스파크·온도 관리가 강판과 달라 전용 장비가 필요하다. 일반 스폿 용접기로 알루미늄에 손을 대면 강도가 깨진다.
  • 알루미늄 작업 공간은 철 가루가 섞이지 않도록 분리해야 한다. 같은 공간에서 강판을 갈면 알루미늄 표면이 오염돼 부식이 빨라진다. 대형 인증 공업사는 라인 자체를 따로 둔다.
  • 접착제·리벳 결합 구조는 용접보다 교체 단위가 훨씬 크다. 접착선 하나를 잘못 건드리면 패널 전체 교체로 넘어간다. 견적금액이 순식간에 몇 배가 된다.

30년 판금 장인이 쌓아온 감각이 이 지점에서 주춤한다. 손끝에 익숙한 철판이 아니다. 익히려면 새로 배워야 하고, 새로 배우려면 제조사 교육을 받아야 한다.

장벽 4 — ADAS·센서·카메라 재보정

이 장벽은 엄밀히 말해 전기차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내연기관 차도 ADAS가 기본 장착된다. 그러나 전기차는 ADAS 의존도가 높다. 자율주행 기능이 상품성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범퍼·윈드실드·도어·펜더 어느 하나를 교체하면, 그 뒤에 숨어 있던 센서·카메라·레이더가 미세하게 틀어진다. 그대로 두면 차선이탈경보가 엉뚱한 타이밍에 울리고, 긴급제동이 장애물을 놓치고, 크루즈 컨트롤이 앞차와의 거리를 잘못 잡는다. 자율주행 기능이 들어간 차일수록 이 오차는 치명적이다.

그래서 재보정(calibration)이 정규 공정으로 들어간다.

  • 전용 교정판(target board)이 필요하다. 차량 정면에 정확한 각도·거리로 세워놓고 카메라가 기준점을 다시 잡게 한다.
  • 재보정 전용 공간이 필요하다. 조명·바닥 평탄도·차량 정렬 위치가 규격에 맞아야 한다. 좁은 공업사 한구석에서는 불가능하다.
  • 재보정 결과는 진단 장비로 기록된다. 이 기록이 없으면 보험사·제조사에 "제대로 수리했다"를 입증하지 못한다.

재보정 장비와 공간에도 투자가 들어간다. 인증 공업사가 아닌 곳에서 센서를 건드리고 보정 없이 돌려보내면, 나중에 차주에게 사고가 났을 때 공업사가 책임을 물어야 한다. 30년 공업사 사장이 "내가 왜 여기까지 책임져야 하냐"고 반문하는 지점이 바로 이 장벽이다.

장벽 5 — 제조사 인증 공업사 제도

앞의 네 가지 장벽을 넘는다고 해도, 마지막으로 걸리는 관문이 제조사 인증 제도다. 제조사는 브랜드 품질 관리를 이유로 전기차 수리를 인증 공업사로 한정한다.

  • 테슬라는 직영 서비스센터 + Approved Body Shop 체계를 운영한다. 직영이 처리하지 않는 바디 작업은 인증 바디샵으로 보낸다. 인증 조건에는 면적·장비·인력·교육이 포함되고, 연 1회 이상 점검이 있다.
  • 현대차·기아는 기존 블루핸즈·오토큐 네트워크를 전기차용으로 재편하는 중이다. 전기차 전담 교육, 고전압 자격 기술자 배치, 전용 장비 구비가 조건이다. 모든 블루핸즈가 전기차를 받는 게 아니라, 지정된 곳만 받는다.
  • **수입 EV(벤츠·BMW·폴스타·아우디·포르쉐)**는 각자의 인증 체계를 따로 둔다. 한 공업사가 여러 브랜드 인증을 동시에 받는 것은 투자 규모상 쉽지 않다.

인증 없이 수리하면 어떻게 되는가. 배터리·구조 수리는 부품 공급 자체가 막힌다. 제조사가 정품 부품을 일반 유통망에 풀지 않기 때문이다. 범퍼나 도어 같은 외판 부품은 풀려 있지만, 그 안쪽의 센서·모듈·배선은 정품 공급이 인증 공업사로만 간다.

보험사도 여기에 맞춰 간다. 대물 보상을 인증 공업사 견적 중심으로 처리하는 흐름이 커진다. 차주가 원한다고 아무 공업사에나 맡기기 어려워진다. 내연기관 시대에는 "내 단골 공업사"가 통했지만 전기차 시대에는 "내가 산 차의 인증 공업사"로 자동 라우팅된다.

다섯 장벽이 만드는 공백

이 다섯 가지를 종합하면 그림이 나온다. 전국 수천 개 내연기관 공업사 중 전기차를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곳은 소수다. 인증 공업사는 지역당 많아야 몇 곳, 수입차 브랜드 인증까지 포함해도 전국 수백 개 수준으로 추정된다. 반면 내연기관 공업사는 수만 개 단위다.

이 비대칭이 "공백"을 만든다. 차주 입장에서 전기차가 사고 나면 갈 수 있는 공업사가 눈에 띄게 적다. 보험사 입장에서 대체 공업사를 찾기 어렵다. 공업사 사장 입장에서 내 앞으로 굴러온 전기차를 받아야 할지 돌려보내야 할지 매번 고민한다.

내연기관 공업사의 3가지 반응

현장에서 관찰되는 반응은 세 갈래다.

회피. 전기차가 들어오면 인증 공업사 또는 제조사 직영으로 송객한다. 도장·범퍼 교체 같은 외판 작업만 한정적으로 받거나, 아예 안 받는다. 60대 사장, 후계 없는 1인 공업사, 도심 외곽 소규모 공업사에서 흔하다. 본인 세대까지 내연기관으로 버티겠다는 판단이다.

부분 대응. 고전압 관련 작업은 피하고, 외판·도장·간단한 판금만 받는다. 보험사 대물 협의에서 "이 건은 여기서, 이 건은 인증 공업사로" 하는 분기가 자연스러워진다. 중형 공업사 중 장비는 조금씩 늘리지만 인증까지 가기는 주저하는 경우가 이 자리에 있다.

전환. 인증 공업사로 본격 진입한다. 장비·공간·교육에 수억 원을 투자하고, 특정 브랜드와 계약을 맺는다. 규모가 있고 후계가 있는 공업사, 또는 한 세대 더 가려는 공업사에서 나온다. 투자 회수에 5년 이상을 보고 들어가야 한다. 이 선택의 구체적 얼개는 34편에서 정리한다.

세 반응 중 어느 것이 맞다고 단정할 수 없다. 공업사 규모, 위치, 사장 연령, 후계 유무, 지역 전기차 보급률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

이 공백은 왜 공백으로 남아 있는가

공업사 수가 적어서만은 아니다. 투자의 시간 축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인증 공업사 투자는 전기차 보급률이 일정 수준을 넘어야 회수가 된다. 국내 전기차 등록 비중은 전체 차량의 한 자릿수대에서 서서히 오르고 있다. 공업사 사장 입장에서 "지금 투자하면 5~7년 뒤 회수 가능"의 도박이 된다.

제조사는 네트워크 확장을 서두르지 않는다. 기존 내연기관 공업사 네트워크를 통째로 전기차용으로 전환하는 것은 제조사 입장에서도 품질 관리 리스크가 크다. 차라리 천천히, 검증된 공업사만 받는 쪽이 안전하다고 본다.

보험사도 이 공백을 인지하지만 해소 속도는 느리다. 직접 네트워크 확장에 뛰어들려면 돈이 많이 든다. 제조사와의 협상에서도 보험사가 아쉬운 자리에 있다. (이 딜레마가 33편의 주제다.)

공업사 사장 개인은 이 전체 구조 안에서 자기 판단만 하면 된다. 다만 판단하기 전에 지도를 봐야 한다.

공업사 사장이 지금 확인할 3가지

  1. 우리 지역의 인증 공업사 수. 시·군 단위로 몇 개가 있는지. 현대차·기아·테슬라·수입차 인증을 어디서 받고 있는지. 보험개발원·제조사 공식 사이트·보험사 네트워크 공시로 확인 가능하다.
  2. 우리 공업사에 들어오는 전기차 입고 비중. 월간·연간 입고 대수 중 전기차가 몇 %인지. 작년 대비 얼마나 늘었는지. 이 숫자가 향후 5년간 어디로 갈지.
  3. 우리 지역의 전기차 등록 증가율. 시·도 단위 등록 통계는 공개돼 있다. 보급률이 10%를 넘는 지역과 2~3%에 머무는 지역의 공업사 판단이 다르다.

이 세 숫자를 매달 한 번씩만 업데이트해도 판단의 기초가 쌓인다. 판단은 다음 편들로 미뤄도 좋다. 숫자부터 손에 쥐는 게 먼저다.

시리즈 예고 — 33편: "보험사의 딜레마 — 수리비 폭등과 정비 가능 공업사의 희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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