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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 돌봄의 값 · 6편 / 15편

최저임금을 다 주면 수요가 사라지고, 시장가로 내리면 공급이 남지 않는다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15개월의 기록. 운영 미숙이 아니라 가격 구조가 사업을 끝냈다

홍정현·2026.08.15
8분 읽기

지난 1년 반 동안 돌봄 공급을 늘리는 방법으로 가장 많이 인용되던 실험 하나가 끝났다. 서울시와 고용노동부가 2024년 8월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을 입국시켜 9월부터 가정에 배치한 시범사업이다. 2025년 12월 22일 폐지가 발표됐다(한국경제 2025년 12월 22일 보도).

폐지 기사들은 원인을 운영 문제로 정리했다. 초기 임금 체불, 무단이탈 2명, 근무 외 시간 통제 논란, 내국인 일자리 침해 시비. 전부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이 사업은 그 문제가 하나도 없었어도 같은 자리에 도착했을 가능성이 높다. 사람보다 가격이 먼저 무너졌기 때문이다.

시간당 16,800원. 2025년 2월 최저임금 인상분이 반영된 뒤의 이용료다. 주 52시간을 쓰면 월 약 280만 원이 된다. 이 요금표를 본 이용 가정의 반응이 기사에 그대로 실렸다. "부담돼서 민간업체 알아봐요"(서울신문 2025년 2월). 저렴한 외국인 인력을 기대하고 신청한 사람이, 최저임금을 지킨 외국인 인력의 가격표 앞에서 다시 민간 시장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래서 이 사업의 값어치는 실패한 정책 목록에 있지 않다. 한국 돌봄 시장에서 저가 공급 경로가 실제로 열리는지를 공적 예산으로 한 번 눌러본 실증에 있다. 결과는 닫혀 있다는 쪽이었다. 최저임금을 다 주면 수요가 사라지고, 시장가로 내리면 공급이 남지 않는다. 15개월은 이 두 문장을 숫자로 확인하는 데 쓰였다.

15개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시범사업의 수요는 도입 첫 달부터 빠지기 시작했고, 임금이 오른 2025년 2월에 결정적으로 꺾였다. 사업이 무너진 순서를 사건이 아니라 시점으로 늘어놓으면 그 흐름이 그대로 보인다.

시점내용
2024년 8월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 입국. 4주 교육 시작(서울시·고용노동부)
2024년 9월가정 배치 근무 개시. 초기 임금 체불 논란, 2명 무단이탈
2024년 9월첫 달 이용 142가정 중 24가정 중도 취소
2024년 하반기이용 신청 43%가 강남 3구에 집중, 대기 795명
2025년 2월최저임금 반영으로 시급 13,940원에서 16,800원으로 20.5% 인상. 주 52시간 기준 월 약 280만 원
2025년 2월98명이 185가정에서 근무 중으로 집계
2025년 12월 22일공식 폐지 발표. 기존 인력은 체류 기간 연장으로 잔류 허용

첫 달의 24가정이 이 사업의 첫 신호였다. 142가정 중 17%가 시작하자마자 이탈했다. 이 시점의 시급은 아직 13,940원이었다. 가격이 오르기 전인데도 여섯 가정 중 한 곳이 손을 뗐다는 것은, 애초에 이 가격대가 "저렴한 외국인 도우미"라는 기대와 맞지 않았다는 뜻이다.

투입 비용도 이 사업의 계산을 어렵게 만들었다. 100명의 4주 교육 과정에 총 41억 원, 1인당 약 4,100만 원이 들었다는 보도가 있다(한국경제 2025년 12월). 다만 같은 사업의 교육 예산을 4억 원대로 적은 보도도 있어, 이 수치는 원출처 재검증이 끝나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100명을 4주 굴리는 데 든 준비 비용이 1인당 월 임금을 크게 웃돈다는 방향은 바뀌지 않는다.

강남 3구 43%라는 편중은 사업 설계의 실패로 자주 인용됐다. 지역 편중이라기보다 지불 능력의 분포가 그대로 찍힌 것에 가깝다. 월 280만 원짜리 돌봄을 상시로 감당할 수 있는 가구는 어느 도시에서든 소수이고, 서울에서 그 소수가 사는 자리는 통계에 이미 나와 있다. 정책이 저가 인력이라는 이름으로 모집했는데 결과적으로 고가 서비스가 되면, 남는 이용자는 원래도 그 가격을 낼 수 있던 사람들이다.

홍콩과 싱가포르의 입주 가사노동은 왜 싼가

홍콩과 싱가포르의 입주 가사노동이 싼 이유는 그 나라 물가가 낮아서가 아니라,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 일반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별도의 임금 트랙이 법으로 따로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시범사업이 참고 사례로 자주 불려 나왔지만, 정작 복제되지 않은 것이 이 전제였다.

구분홍콩싱가포르한국 시범사업
임금 기준외국인 가사노동자 전용 최저허용임금 월 HK$5,100 (2025년 9월 인상)별도 허가제. 고용주가 정부에 월 S$300 부담금 납부국내 최저임금 전면 적용. 시간당 16,800원 (2025년 2월)
근무 형태고용주 자택 입주 의무허가 조건에 따른 고용출퇴근. 주 52시간 기준 월 약 280만 원
결과저가 입주 돌봄 시장 유지저가 입주 돌봄 시장 유지15개월 만에 폐지

홍콩의 최저허용임금은 2025년 9월 30일부로 월 HK$5,100으로 올랐다(홍콩 정부 발표). 이 금액은 홍콩의 일반 최저임금과 별개로 운영된다. 입주가 의무라서 주거와 식사가 고용주 부담으로 넘어가고, 그만큼 현금 임금이 낮게 유지되는 구조다. 싱가포르는 고용주에게 월 S$300의 부담금을 물리는 허가제로 유입을 관리한다(싱가포르 인력부). 두 도시 모두 값싼 돌봄이 시장에서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별도 임금 트랙과 거주 규정으로 제도가 만들어낸 결과다.

그 대가는 노동자 쪽이 치른다. 홍콩 노동단체는 2025년 9월 인상안을 두고 생활임금에 한참 못 미친다고 비판했다(홍콩프리프레스 2025년 9월). 입주 의무는 근무 시간과 사생활의 경계를 지우는 조건이기도 하다. 값싼 돌봄의 가격표에는 이 항목이 적혀 있지 않다.

한국은 이 트랙을 만들지 않았다.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을 외국인 가사관리사에게 그대로 적용했고, 그 순간 가격은 국내 인력과 같은 층으로 올라온다. 나는 이것을 정책 실수라고 보지 않는다. 국적으로 최저임금을 나누는 제도를 새로 여는 일은 시범사업 100명으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다만 그 전제를 복제하지 않기로 한 이상, "외국인 인력으로 돌봄 단가를 낮춘다"는 문장은 처음부터 성립할 수 없었다. 시범사업이 증명한 것은 운영 역량의 한계가 아니라 이 산술이다.

이 실험이 남긴 것

이 사업이 남긴 가장 쓸모 있는 데이터는 폐지 사유 목록이 아니라, 시간당 16,800원에도 795명이 줄을 섰다는 사실이다. 가격 저항으로 첫 달에 24가정이 빠져나간 것과 대기자 795명이 남은 것은 같은 시기에 함께 관측됐다. 두 숫자를 나란히 놓으면 시장이 어디서 갈라지는지가 보인다.

빠져나간 쪽은 저가 도우미를 기대했던 수요다. 이 수요는 가격이 20.5% 오르자 민간업체로 이동했다. 줄을 선 795명은 값이 아니라 자리를 기다린 수요다. 정부가 4주 교육을 시키고 신원을 확인한 인력이라는 조건에 월 280만 원을 낼 의사가 있는 가구가, 100명짜리 시범사업 하나에 여덟 배로 몰렸다.

돌봄 시장의 신규 진입로를 찾는 관점에서 이 두 숫자의 의미는 갈린다. 가격을 내리는 경로는 제도가 막고 있다. 최저임금이 하한이고, 그 하한 아래를 만들려면 별도 임금 트랙이라는 법을 새로 깔아야 하며, 한국은 그 문을 열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는 경로는 같은 가격에서 신뢰를 더 파는 쪽이다. 검증된 인력에 대한 초과 수요가 여덟 배로 확인된 시장에서, 부족한 것은 싼 사람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폐지 이후 기존 인력은 체류 기간 연장으로 남았다. 100명 중 일부는 이 시장에 계속 있다. 정부가 41억 원대로 보도된 예산을 들여 4주간 교육하고 신원을 확인한 인력이, 사업 종료와 함께 관리 주체 없이 시장에 흩어진 셈이다. 검증에 든 비용이 어디에도 축적되지 않았다.

시범사업 15개월이 알려준 구조는 단순하다. 한국에서 돌봄의 값은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다. 다음 편들에서 볼 것은 그 값이 위로 어떻게 붙는가다.

참고 자료

교육 예산 총액(41억 원, 1인당 약 4,100만 원)은 보도 간 수치 차이가 있어 원출처 재검증이 완료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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