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다리사장으로 가는 다리
디지털·시스템
디지털·시스템 · 알뜰폰의 손익계산서 · 10편 / 12편

광고로 통신을 공짜로 주겠다는 계획은 두 번 실패했다

2007년 영국 블릭이 2년 만에 접었고, 십 년 뒤 버라이즌과 AT&T가 같은 발상에 조 단위를 태웠다

홍정현·2026.08.28
9분 읽기

이 글은 《알뜰폰의 손익계산서》 시리즈 10편이다. 9편에서 해외에서 이긴 사업자들이 원가표의 어느 줄을 지웠는지를 봤다. 이번 편은 그 반대편이다. 원가를 지우지 못한 채 수익원만 바꾸려 한 시도들이 어디서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본다.

블릭이 판 것은 통신이 아니라 열여섯 살의 주의력이었다

광고로 통신비를 대신 내겠다는 사업 모델은 2007년 영국에서 실제로 운영됐고 2년 만에 문을 닫았다. 회사 이름은 블릭이다.

블릭은 2007년 10월 오렌지 망을 임차해 서비스를 시작했다. 대상은 16세에서 24세로 못 박았다. 가입자가 광고 문자 수신에 동의하면 월 무제한 착신 통화와 500분 발신 통화, 500건의 문자를 무료로 줬다. 요금은 0원이고, 회사의 수입은 광고주가 내는 돈이었다. 가입자는 통신 서비스를 받는 고객이면서 동시에 광고주에게 팔리는 상품이었다.

초기 성장은 나쁘지 않았다. 2008년 4월 가입자 10만명을 넘겼고 같은 해 9월 20만명을 돌파했다. 1년이 안 되는 기간에 두 배로 늘었으니 수요는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2009년 7월 블릭은 영국 서비스를 종료했다.

무료로 주는 서비스에 사람이 안 모여서가 아니었다. 무료로 준 서비스의 원가를 광고가 감당하지 못했다. 업계 평가와 회사 측 설명을 종합하면 원인은 세 갈래로 정리된다.

실패 지점내용
광고 수익이 원가 미달광고주들이 브랜드 캠페인 예산이 아니라 시장조사 목적으로만 접근
도달 규모 미달가입자가 수십만명대에 머물러 광고주가 요구하는 도달 수준에 못 미침
광고 시장 위축2008년에서 2009년 사이 경기침체로 광고 예산 자체가 축소

세 갈래 중 두 번째가 이 모델의 구조를 드러낸다. 광고 사업은 도달 규모가 임계를 넘어야 단가가 붙는다. 가입자 20만명은 통신 사업으로는 의미 있는 숫자지만 영국 전국 광고 캠페인의 매체로는 작다. 그런데 가입자를 100만명으로 늘리려면 통신 원가도 다섯 배로 늘어난다. 광고 단가가 붙기 전까지 그 원가를 계속 대야 하고, 그 사이 광고 시장이 한 번 꺾이면 버틸 수 없다. 블릭은 그 구간에서 경기침체를 만났다.

블릭이 스스로 내린 진단

가장 분명한 증거는 블릭이 그다음에 한 일이다. 영국에서 문을 닫은 뒤 블릭은 네덜란드에서 보다폰과 제휴하면서 독립 알뜰폰 사업을 접고, 통신사에 광고 솔루션을 파는 회사로 위치를 바꿨다.

이 전환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손익계산서로 옮겨 보면 명확해진다. 독립 알뜰폰일 때 블릭의 장부에는 도매대가와 문자 처리 비용과 고객 관리 비용이 원가로 잡히고, 광고 수입이 매출로 잡혔다. 원가는 통신 사업의 것이고 매출은 광고 사업의 것이다. 두 사업의 규모가 서로 맞아야 성립하는 구조인데, 광고 쪽이 훨씬 작았다.

B2B로 바꾸고 나면 통신 원가가 통째로 사라진다. 망을 빌리지 않고, 회선을 갖지 않으며, 고객 문의를 받지 않는다. 이미 가입자를 수천만명 갖고 있는 통신사에 광고 도달 규모를 만들어 주는 소프트웨어를 팔면 된다. 도달 규모 문제는 통신사가 해결하고, 블릭은 자기가 잘하는 것만 남긴다.

이 회사가 스스로 내린 진단은 그래서 이렇게 읽힌다. 광고 기반 무료 통신은 원가를 지우는 모델이 아니라 수익원을 광고로 바꾸는 모델이었다. 원가표의 줄은 하나도 지워지지 않은 채 매출을 만드는 상대만 소비자에서 광고주로 옮겨 갔고, 그 상대의 지갑이 통신 원가보다 작았다.

새 자리를 먼저 만들어 놓고 옮기지 않으면 무너진다는 것은 통신 밖에서도 반복된다. 고객관리라는 범주를 스스로 만들고도 그 범주를 지키지 못한 회사의 사례가 같은 계열의 이야기다. 다만 그쪽은 시장을 먼저 만들었고 나중에 자리를 뺏겼다. 블릭은 자리를 만들기 전에 옮겼다. 블릭은 옮겨 갈 자리를 먼저 만들지 않고 옮겼다. 이동할 곳에 원가를 덮을 만한 돈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이 구조의 유일한 검산이고, 블릭은 그 검산을 가입자 20만명 시점에 했다가 답을 받았다.

공짜로 모은 가입자는 유료로 넘어오지 않는다

무료 구간을 미끼로 쓰는 모델은 광고 없이도 시도됐고 같은 곳에서 걸렸다. 미국의 프리덤팝은 2012년 창업해 월 500MB 데이터와 500건의 문자, 200분 통화를 무료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출발했다. 무료 구간에서 가입자를 모으고 그중 일부가 유료 요금제로 넘어오게 한다는 설계였다.

넘어오는 비율이 설계만큼 나오지 않으면 회사는 두 갈래 중 하나를 택하게 된다. 무료 가입자를 줄이거나, 남은 가입자에게서 어떻게든 돈을 받아 내거나. 프리덤팝에는 자동 충전 방식의 결제와 관련한 소비자 불만이 누적됐고, 브랜드는 2019년 레드포켓모바일에 인수됐다. 무료 구간이 만든 가입자 수는 회사를 살리지 못했고, 그 수를 매출로 바꾸려는 과정이 신뢰를 깎았다.

스프린트가 2017년에 시도한 1년 무료 서비스도 같은 자리에서 끝났다. 대다수 고객이 무료 기간이 끝난 뒤 원래 쓰던 통신사로 돌아갔다. 여기서 남는 것은 1년치 통신 원가와 아무것도 아닌 가입자 명부다.

8편에서 본 국내 0원 요금제와 겹쳐 읽으면 같은 질문이 나온다. 프로모션 종료 이후 잔존율이 얼마인가. 국내 알뜰폰의 해지율은 사업자별로도 산업 전체로도 공개되지 않아 확인되지 않는다. 미국 사례에서는 그 답이 공개적으로 나왔고, 답은 대부분 돌아갔다는 것이었다.

무료 구간을 설계할 때 실제로 정해야 하는 값은 무료 기간의 길이나 제공량이 아니다. 무료 기간 동안 회사가 부담할 원가의 총액과, 그 원가를 회수하는 데 필요한 유료 전환율이다. 두 값을 곱해 보면 필요한 전환율이 나오고, 그 전환율이 업계 통상치보다 높으면 그 설계는 처음부터 성립하지 않는다. 프리덤팝과 스프린트가 이 계산을 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결과는 계산이 틀렸을 때 나오는 모양과 같았다.

브랜드는 원가표의 어느 줄도 지우지 못한다

버진모바일은 세 나라에서 차례로 정리됐다. 브랜드 라이선스만으로 세운 알뜰폰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가장 넓은 표본으로 보여 준 사례다.

미국 법인은 2001년 스프린트와 버진그룹의 합작으로 출발해 2009년 스프린트가 버진그룹 지분을 인수했고, 2020년 1월 신규 가입을 중단하면서 기존 고객을 부스트모바일로 넘겼다. T모바일과의 합병을 앞두고 브랜드를 정리한 것이다. 호주에서는 옵투스가 2018년 6월부터 오프라인 매장과 신규 후불 가입을 단계적으로 줄였고 브랜드 라이선스는 2020년 만료 예정이었다. 남아공에서는 셀씨와의 합작으로 2006년 출범한 법인이 15년 만에 서비스를 종료했다. 버진그룹은 이미 2011년에 남아공 지분을 정리한 상태였다.

세 사례의 공통점은 문 닫은 이유가 브랜드 인지도 부족이 아니라는 데 있다. 버진은 항공과 음반과 철도에서 이름값이 있는 브랜드다. 그런데 그 이름은 도매대가를 낮추지 못했고 유통 경로를 새로 만들지도 못했다. 원가와 유통이 그대로인 상태에서 브랜드만 얹은 사업은, 망을 가진 모회사가 합병이나 구조조정을 결정하는 순간 가장 먼저 정리되는 대상이 된다.

9편에서 정리한 일곱 유형 중 브랜드형이 유일하게 "지운 줄" 칸에 원가 항목을 적지 못한 유형이었다. 그 칸이 비어 있다는 것이 이 세 나라의 결말을 미리 설명한다. 국내에서도 금융사나 유통사가 이름을 걸고 알뜰폰에 들어온 사례들이 있고, 그중 어떤 것이 원가표의 줄을 지웠고 어떤 것이 이름만 얹었는지는 5편에서 펼친 재무제표로 이미 갈라져 보였다.

두 번째 실패, 통신사가 직접 광고를 하려던 것

블릭이 부딪힌 도달 규모의 벽은 가입자 수천만명을 가진 회사라면 없을 것처럼 보인다. 미국 최대 통신사 두 곳이 그 가설을 십 년 뒤에 직접 검증했고, 둘 다 손실을 안고 나왔다.

버라이즌은 2017년 야후를 40억 달러에 인수해 미디어와 광고 사업을 키우려 했다. 원달러 1,400원으로 환산하면 약 5조 6,000억원이고 계산식은 40억 곱하기 1,400이다. 환율 가정이 들어간 이 글의 유도 수치다. 개인정보 보호 규제가 강해지고 회사 스스로도 가입자 데이터 활용에 제한을 걸면서 광고 사업의 전제가 무너졌고, 애드테크 자산과 이용자 식별 제품까지 매각 수순을 밟았다.

AT&T는 2018년 프로그래매틱 광고기술 회사 앱넥서스를 약 16억 달러에 인수했다. 같은 환율로 환산하면 약 2조 2,400억원이다. 자사가 가진 가입자 데이터와 프리미엄 영상 콘텐츠를 결합해 광고 사업을 만든다는 계획이었고, 수년 뒤 손실을 안고 매각한 사례로 분류된다.

회사인수 대상인수 시점인수 금액원화 환산(유도)결말
버라이즌야후2017년40억 달러약 5조 6,000억원애드테크 자산 매각
AT&T앱넥서스2018년약 16억 달러약 2조 2,400억원손실 매각

원화 환산 열은 환율 1,400원을 가정해 이 글에서 계산했다. 인수 시점의 실제 환율과는 다르므로 규모 감각을 위한 값이다.

두 회사는 블릭에게 없던 것을 전부 갖고 있었다. 수천만 가입자, 위치와 통화 패턴 데이터, 자체 콘텐츠, 그리고 인수 자금이다. 그런데도 광고 사업이 서지 않았다. 가입자 데이터를 광고에 쓰는 것 자체가 규제 리스크를 만들고, 규제를 피하려고 데이터 활용을 스스로 제한하면 광고 상품의 경쟁력이 사라진다. 통신사가 가진 데이터의 가치는 그 데이터를 광고에 쓰지 못하게 하는 규제와 한 몸으로 존재한다.

여기서 나오는 판정은 블릭 때보다 강하다. 광고로 통신 원가를 대는 계획은 도달 규모가 작아서 실패한 것이 아니었다. 도달 규모를 최대치로 갖춘 회사들이 조 단위를 태우고도 같은 자리에서 나왔다. 통신 원가와 광고 수익은 애초에 크기가 맞는 두 항목이 아니다.

지금 나오는 AI 결합은 검증된 모델인가

아직 아니다. 요금제에 인공지능을 얹어 새 수익원을 만든다는 흐름은 2025년부터 실제 상품으로 나오고 있지만, 그것이 매출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공개한 통신사는 확인되지 않는다.

도이치텔레콤은 2025년 3월 모바일월드콩그레스에서 퍼플렉시티 인공지능을 기본 탑재한 단말을 공개했고, 2025년 8월 유럽 9개국에서 149유로부터 판매를 시작했다. 마젠타 AI라는 브랜드로 구글 클라우드의 인공지능과 일레븐랩스, 픽스아트 같은 파트너 서비스를 요금제에 묶는 방향이다. 컨설팅사와 클라우드 사업자들이 내는 전망 자료는 이것을 통신사가 인공지능 이용권을 요금제에 결합해 신규 수익원을 만드는 흐름으로 읽는다.

읽는 것과 벌리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 상품군이 통신 매출에 얼마를 더했는지, 단말 판매를 제외한 인공지능 결합 자체의 매출이 얼마인지는 공개된 재무 수치가 없다. 판단 근거가 없으니 성공도 실패도 아니고, 이 편의 목록에 올릴 수 없는 상태다.

다만 구조는 앞의 실패 사례와 같은 자리에서 검산해 볼 수 있다. 인공지능 결합이 통신 원가표의 어느 줄을 지우는가. 상담 인력을 지운다면 9편의 커뮤니티형과 같은 계열이고 검산 가능한 모델이다. 지우는 줄이 없고 요금제에 얹는 부가 상품이라면, 그 부가 상품의 매출이 그것을 제공하는 데 드는 추론 비용과 라이선스 비용을 넘는지가 전부다. 그 비교가 성립하지 않으면 블릭이 광고에서 했던 계산을 인공지능으로 다시 하는 셈이 된다.

이 편이 확정한 것은 좁다. 통신 서비스를 무료나 초저가로 주고 그 원가를 다른 수익원으로 메우는 모델은, 그 다른 수익원의 크기가 통신 원가를 넘는다는 것이 먼저 확인되어야 성립한다. 광고는 알뜰폰 쪽에서 한 번, 통신사 쪽에서 한 번, 두 국면 모두에서 그 조건을 만족하지 못했다. 인공지능은 아직 그 조건을 재 볼 숫자가 나오지 않았다.

자영업의 자리에서 같은 검산이 필요한 경우는 흔하다. 시술이나 시공을 원가 이하로 걸어 두고 다른 품목에서 회수하겠다는 설계가 그렇다. 세차를 무료로 하고 정비에서 받겠다거나, 첫 회를 무료로 주고 재방문에서 받겠다는 구조다. 이 설계는 회수 품목의 객단가와 전환율을 곱한 값이 무료 품목의 원가를 넘을 때만 성립하고, 넘지 못하면 손님이 많이 올수록 손실이 커진다. 블릭의 장부가 가입자 20만명에서 무너진 것도 같은 계산이었다.

출처

블릭의 가입자 추이와 종료 시점, 실패 원인은 영국 IT 매체와 통신 업계 매체 보도를 교차 확인했다. 버라이즌과 AT&T의 애드테크 인수 결말은 광고 업계 매체의 사후 평가이며, 각 인수의 최종 매각가와 손실 규모는 공개된 수치를 찾지 못했다. 도이치텔레콤 인공지능 결합 상품의 매출 기여 규모는 국내외 모두 공개된 재무 수치가 확인되지 않는다. 원화 환산은 환율 1,400원을 가정한 이 글의 유도 수치이며 인수 시점의 실제 환율과는 다르다.

출처 전체(10건) 펼치기

블릭

프리덤팝과 무료 모델

버진모바일

통신사 애드테크

통신과 인공지능 결합

이어 읽기

사장다리는 로그인 회원에게 글 전체를 공개합니다.
카카오로 1초 로그인하고 이어 읽어 보세요.

카카오로 1초 로그인

가입 절차 없이 카카오 인증으로 바로 시작됩니다.

같은 축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