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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시스템 · 알뜰폰의 손익계산서 · 11편 / 12편

정부가 2026년에 문 하나를 열어 두었다

알뜰폰 2.0, 저가 경쟁을 밀어주던 정책이 설비 보유 사업자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홍정현·2026.08.29
9분 읽기

이 글은 《알뜰폰의 손익계산서》 시리즈 11편이다. 9편과 10편에서 해외 사례가 무엇을 지웠고 무엇을 지우지 못해 실패했는지를 봤다. 이번 편은 국내로 돌아와, 2026년에 정부가 이 시장의 규칙을 어떻게 바꿨는지를 읽는다.

제4이동통신이 무산된 자리에 다른 계획이 들어왔다

정부의 통신 경쟁 정책은 2025년 1월에 방향을 틀었다. 그 전까지 정부가 붙잡고 있던 계획은 제4이동통신이었다. 이동통신 3사 과점을 깨려면 망을 직접 깔고 요금 경쟁을 걸어 줄 네 번째 사업자가 필요하다는 논리였고, 십 년 넘게 여러 차례 시도됐다.

마지막 시도가 스테이지엑스였다. 전자신문 2024년 7월 보도에 따르면 스테이지엑스는 2024년 1월 28GHz 주파수 경매에서 4,301억 원에 낙찰받고 4월에 법인을 설립해 할당대가 1차분 430억 원까지 냈지만, 같은 해 7월 31일 자본금 요건 미충족과 주주 구성 문제로 주파수 할당대상법인 지정이 취소됐다. 경매를 이기고도 자격을 잃은 것이다.

그 뒤 정부가 꺼낸 대안이 알뜰폰이었다. ZDNet Korea 2025년 1월 15일 보도에 따르면 과기정통부는 제4이동통신에 앞서 풀MVNO를 먼저 키우겠다는 방향을 공식화하고, 자체 설비를 갖춘 독립형 알뜰폰 사업자 3곳 이상을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같은 발표에 도매대가 데이터 요율을 1MB당 1.29원에서 0.82원으로 36% 내리는 안과 전산 대행 사업자 허용, 이동통신 3사 전체를 도매제공의무사업자로 지정하는 방향이 함께 들어갔다.

무엇이 달라진 것인지를 정확히 짚을 필요가 있다. 제4이동통신은 망을 새로 까는 계획이고, 풀MVNO는 망은 빌리되 그 위의 설비를 자기가 갖는 계획이다. 투입 자본의 자릿수가 다르다. 주파수 경매에만 4천억 원대가 드는 사업과, 교환설비와 과금 전산을 갖추는 사업은 같은 정책 서랍에 들어갈 성격이 아니다. 정부는 후자로 목표를 낮춘 셈이고, 그만큼 진입할 수 있는 사업자의 폭은 넓어졌다.

여기서 이 시리즈가 지금까지 본 손익 구조와 연결된다. 3편에서 본 대로 알뜰폰 원가의 절반 안팎은 도매대가이고, 6편에서 본 대로 나머지 원가의 상당 부분은 전산과 고객 응대다. 풀MVNO는 그중 전산과 일부 교환 기능을 자기 것으로 가져와 도매대가에서 그만큼을 깎는 구조다. 요금을 더 깎으라고 압박하는 대신 원가를 직접 내릴 수 있는 사업자를 만들겠다는 것이 정책 전환의 내용이다.

정부가 협상 테이블에서 물러난 뒤 무슨 일이 있었나

도매대가를 정부가 대신 받아 주던 구조가 2024년에 끝났고, 그 뒤 중소 사업자의 협상력 문제가 드러났다.

제도의 흐름을 먼저 정리하면 이렇다. 알뜰폰 망 도매제공 의무는 2010년에 3년 일몰제로 도입돼 세 차례 연장을 거친 뒤 2022년 9월에 한 번 종료됐다. 다시 살려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졌고, 개정안이 2023년 12월 국회를 통과하면서 이 의무가 상설화됐다. 같은 개정에 도매대가 산정 방식을 다양화할 근거도 함께 들어갔다.

핵심은 그다음이다. 개정법은 1년의 유예를 두고, 2024년 4월부터 정부가 직접 요율을 정하던 방식을 사업자 간 개별 협상으로 바꿨다. 정부는 협상 결과를 사후에 심사해 경쟁제한적이라고 판단되면 15일 이내에 반려할 수 있는 위치로 물러났다. 사전에 가격을 정해 주던 규제에서 사후에 결과를 보는 규제로 옮긴 것이다.

시장이 성숙했으니 가격은 시장에서 정하라는 취지였는데, 협상 테이블의 양쪽 체급이 문제였다. 한쪽은 2편에서 본 대로 연 매출이 조 단위인 회사이고, 다른 쪽은 5편에서 본 대로 연 매출 수백억 원에 영업이익이 억 단위인 회사들이다. 정부가 매년 대신 받아내 주던 인하 폭이 사라진 자리에서 개별 사업자가 얻어낼 수 있는 조건에는 한계가 있다. 전자신문이 2025년 8월 알뜰폰 가입자 1천만 돌파를 다루면서 붙인 제목이 도매대가 수익성 확보 난항이었다는 것이 그 시점의 분위기를 보여 준다.

이 문제를 되돌리려는 시도도 있었다. 2024년 12월 정부가 사전 규제를 일부 부활시키는 도매제공제도 개선 방안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제시했고, 같은 취지의 의원 발의안도 나왔다. 그러나 그 안은 과방위 소위에서 보류됐고 자회사 점유율 제한안만 병합돼 넘어갔다. 결과적으로 2026년 알뜰폰 2.0이 나오기까지 2년 가까이 도매 조건은 각자 협상하는 상태로 유지됐다.

납품 단가를 원청과 개별 협상하라고 하면 규모가 작은 쪽이 불리해지는 구조는 통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시장에서는 협상 상대가 소매에서 경쟁하는 상대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도매 조건을 정하는 회사의 자회사가 같은 시장에서 요금제를 팔고 있다.

알뜰폰 2.0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가

2026년 7월 31일 발표된 알뜰폰 2.0 활성화 방안의 핵심은 정책의 지원 대상을 요금에서 설비로 옮긴 것이다. 디지털데일리 2026년 8월 2일 보도가 전한 내용을 항목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항목내용
정책 기조저가 경쟁에서 혁신 경쟁으로
MVNE전산과 유심 발급 등을 여러 알뜰폰에 대행하는 사업 유형을 제도로 도입
설비 우대설비를 구축한 사업자에게 도매대가와 이용료를 우대
망 연동망 연동 의무를 이동통신 3사 전체로 확대
전파사용료중소·중견 사업자 감면

과기정통부 추산으로 이 조치들의 비용 절감 효과는 업계 전체 연간 약 250억 원이다. 6편에서 본 전파사용료 전액 부과 시 업계 부담이 약 200억 원이었으니, 감면이 유지되면 그 부담 상당 부분을 상쇄하는 규모다. 다만 250억 원은 정부 추산치이고 독립적으로 검증된 실측은 아니다.

이 중 성격이 다른 항목이 망 연동 의무 확대다. 지금까지 국내 도매제공 구조는 SK텔레콤만 법으로 의무를 지고 KT와 LG유플러스는 자율 계약으로 망을 빌려주는 형태였다. 시장지배적사업자에게만 의무를 지우는 설계다. 3사 전체로 의무를 넓히면 알뜰폰 사업자가 망을 고를 협상 여지가 생긴다. 9편에서 본 US Mobile이 미국 3대 망을 동시에 도매 계약해 한 사업자에게 종속되지 않은 구조가, 제도상으로는 국내에서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여기서 확인하지 못한 것이 있어 그대로 밝힌다. 이 3사 확대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을 수반하는 것인지, 아니면 행정지도나 자율 협약 수준인지가 발표 보도만으로는 확정되지 않는다. 법 개정이라면 국회를 거쳐야 하고 그 자체가 몇 년짜리 변수다. 정부 보도자료 원문을 직접 대조하지 못했으므로 이 글은 "발표에 포함됐다"까지만 사실로 쓴다.

같은 이유로 이 정책이 실제로 몇 개 사업자에게 적용됐는지도 확인되지 않는다. MVNE로 지정된 사업자가 있는지, 풀MVNO 인가를 받은 곳이 있는지에 대한 2026년 8월 시점의 공개 기록을 찾지 못했다. 정책이 문을 열었다는 것과 그 문으로 누가 들어갔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풀MVNO와 MVNE는 무엇이 다른가

둘은 방향이 반대다. 풀MVNO는 남의 것을 빌려 쓰던 기능을 자기가 갖는 쪽이고, MVNE는 그 기능을 갖춰서 남에게 빌려주는 쪽이다.

지금 국내 알뜰폰의 실질은 망 임차라기보다 이동통신사의 전산 임차에 가깝다. 가입자 관리와 과금과 유심 발급을 망 주인의 시스템에 얹어 쓰고, 그 값이 도매대가 안에 섞여 있다. 그래서 알뜰폰 사업자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요금제 설계와 마케팅뿐이고, 원가 차별화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사업자 50곳의 요금제가 몇백 원 단위로 붙어 있는 풍경은 그 결과다.

풀MVNO는 그중 과금과 가입자 관리를, 나아가 일부 교환 기능까지 자기 설비로 가져온다. 버스회사의 진짜 자산이 노선이 아니라 차고지인 것과 같은 이치로, 사업의 무게중심을 영업권에서 설비로 옮기는 선택이다. 그러면 도매대가에서 그 몫이 빠지고, 요금제를 자기 마음대로 설계할 수 있게 된다. 데이터를 이월시키거나 회선끼리 나눠 쓰게 하거나 사용량에 따라 사후 정산하는 상품은 남의 과금 시스템 위에서는 만들기 어렵다.

MVNE는 그 설비를 갖춰 놓고 여러 알뜰폰에 대행으로 파는 사업이다. 유럽의 Transatel이 대표적인데, 자체 코어망 위에 120개 이상의 MVNO를 수용하고 있고 지금까지 170건 이상의 MVNO 출시를 지원했다고 회사 자료에 밝히고 있다. 통신사를 차리려는 회사가 전산을 직접 짓는 대신 이곳에 붙어서 몇 달 만에 서비스를 여는 구조다.

국내에 이런 사업자가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자체 전산을 갖춘 곳은 있다. 한국케이블텔레콤의 티플러스가 자체 전산을 보유한 덕분에 eSIM을 이동통신 3사보다 먼저 도입했다는 2차 보도가 있고, 스테이지파이브의 핀다이렉트도 3사 망과 제휴하고 자체 과금 시스템을 갖춘 완전MVNO를 표방한다는 2023년 12월 뉴스핌 보도가 있다. 다만 이들은 자기가 쓰려고 지은 것이지 제3자에게 전산을 도매로 파는 사업자가 아니다. 남의 통신사를 대신 굴려 주는 회사가 국내에 있는지는 이번 조사로 특정하지 못했다.

이 공백이 왜 중요한지는 6편의 숫자 하나가 말해 준다. KB국민은행이 리브엠에 투입한 누적 577억 원 가운데 통신시스템 구축비가 189억 원이었다. 은행이 직접 지어야 했기 때문에 그만큼 들었다는 뜻이고, 대행해 줄 곳이 있었다면 그 항목은 월 단위 이용료로 바뀌었을 것이다. MVNE 제도가 실제로 작동하기 시작하면 통신업 진입의 초기 자본 구조 자체가 달라진다. 수백억 원짜리 자산 투자가 매달 나가는 비용으로 바뀌는 것이다.

열린 문은 얼마나 큰가

문은 열렸지만 좁고, 문턱의 높이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진입을 검토한다면 아래 네 가지를 각각 따로 계산해야 한다.

첫째는 자본금이다. 도매제공의무서비스 재판매사업, 즉 우리가 아는 이동통신 알뜰폰의 등록 요건은 납입자본금 30억 원이다. 반면 설비를 갖추지 않은 일반 재판매사업은 3억 원이다. 070 인터넷전화 재판매가 여기 들어간다. 자릿수가 열 배 차이 나고, 이 차이가 12편에서 다룰 진입 경로 선택의 첫 갈림길이 된다.

둘째는 규모의 문턱이다. 풀MVNO가 재무적으로 자립하려면 약 100만 가입자가 필요하다는 관측이 업계에서 나온다. 다만 이 수치는 2차 출처이고 정부나 사업자의 공식 발표 원문을 확인하지 못했다. 참고치로만 다뤄야 하는 숫자인데, 그 참고치가 맞다 하더라도 방향은 분명하다. 100만 회선은 2026년 4월 기준 알뜰폰 전체 1,047만 회선의 약 9.5%다. 계산식은 100만을 1,047만으로 나눈 값이고 이 글에서 계산한 값이다. 지금 시장에서 그 규모를 가진 곳은 이동통신 자회사와 상위 몇 곳뿐이다.

셋째는 시장의 방향이다. 1편에서 본 대로 알뜰폰은 2026년 4월부터 번호이동 순유출로 돌아섰다. 정책이 문을 여는 것과 시장이 커지는 것은 다른 사건이고, 지금은 두 개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정책 지원을 받아 들어가더라도 줄어드는 파이 안에서 시작한다는 뜻이다.

넷째는 규제의 미결 상태다. 이동통신 3사 자회사의 알뜰폰 점유율을 60%로 제한하는 법안은 2024년 12월 26일 국회 과방위 소위를 통과한 뒤 2025년 1월 7일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계속 심사로 보류됐고, 그 이후의 처리 소식은 확인되지 않는다. 22대 국회 임기가 2028년 5월까지이므로 임기만료 폐기는 아니고, 무기한 계류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이 법이 통과되는지 여부에 따라 독립계 사업자가 상대할 경쟁 구도가 달라지는데, 그 변수가 몇 년째 문턱에 멈춰 있다.

정리하면 이렇다. 정부는 요금을 깎으라고 밀던 손을 거두고 설비를 갖추라고 방향을 바꿨다. 그 방향은 이 시리즈가 3편부터 8편까지 확인한 손익 구조와 정확히 맞는다. 매출에 비례해 붙는 도매대가를 줄이려면 그 안에 섞인 기능을 자기 것으로 가져오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길이 100만 가입자와 수백억 원의 초기 투자를 요구하는 길이라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 규모를 감당할 수 없는 쪽에는 다른 문이 필요하다. 마지막 편이 그 이야기다.

출처

알뜰폰 2.0의 내용은 2026년 8월 언론 보도를 근거로 정리했고, 과기정통부 보도자료 원문은 대조하지 못했다. 그래서 망 연동 의무 3사 확대가 법 개정 사항인지 행정조치인지, MVNE와 풀MVNO로 실제 지정된 사업자가 있는지는 본문에서 확인되지 않는다고 표시했다. 풀MVNO 자립선 100만 가입자는 2차 출처의 업계 관측이며 공식 자료로 확인하지 못했다. 자회사 점유율 제한법의 2025년 1월 이후 처리 상태 역시 후속 보도를 찾지 못해 계류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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