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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자본
재무·자본 · 돈의 가격 · 5편 / 10편

사업자금과 여유자금은 같은 통장에 두면 안 된다

경기가 꺾이면 돈이 필요한 순간과 자산을 싸게 팔아야 하는 순간이 겹친다. 만기 3구간으로 벽을 세우는 법

홍정현·2026.08.29
14분 읽기

이 글은 《돈의 가격》 시리즈 5편이다. 1~2편이 금리의 원리와 전파를, 3~4편이 빚 관리를 다뤘다. 5편부터는 반대편, 사장이 굴리는 돈이다. 첫 질문은 무엇을 살까가 아니다. 어떤 돈부터 나눌까다.

잔고는 하나인데 돈은 세 종류다

사업하는 사람의 계좌 잔고는 숫자 하나로 찍히지만, 그 안에는 성격이 다른 돈 세 종류가 섞여 있다. 다음 달 부품 대금과 직원 급여로 나갈 돈. 공장 이전이나 설비 교체처럼 시점은 불확실하지만 언젠가 사업으로 들어갈 돈. 그리고 사업과 무관하게 오래 굴려도 되는 돈. 셋은 같은 원화이고 같은 잔고에 섞여 있어서, 나눠서 관리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잘 보이지 않는다.

글쓴이도 공장 이전을 준비하면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만났다. 여유자금을 어떻게 굴릴까부터 고민을 시작했는데, 상품을 고르기 전에 먼저 답해야 하는 질문이 있다는 걸 확인했다. 이 돈 중에 신공장으로 들어갈 수 있는 돈이 얼마인가. 그 답에 따라 같은 돈의 정답이 정기예금이 되기도 하고 글로벌 주식이 되기도 했다. 상품이 문제가 아니라 돈의 만기가 문제였다.

이 순서가 뒤집히면 사고가 난다. 수익률에서 출발하면 "연 7% 주는 상품"을 먼저 찾게 되고, 그 상품에 다음 달 급여로 나갈 돈과 2년 뒤 공장에 들어갈 돈까지 함께 들어간다. 평소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문제는 특정한 순간에만 드러나는데, 하필 그 순간이 사업하는 사람에게는 무작위로 오지 않는다는 것이 이번 편의 핵심이다.

미리 요약하면 이렇다. 경기가 꺾이면 사업 쪽에서 돈을 꺼내 써야 할 확률과 굴리던 자산의 가격이 내려가 있을 확률이 같이 올라간다. 두 사건은 독립이 아니라 같은 원인의 두 얼굴이다. 그래서 자영업자의 자금 운용은 수익률 최적화 문제이기 전에 만기 분리 문제이고, 분리의 벽을 먼저 세운 다음에야 6편에서 다룰 수익률 목표를 말할 자격이 생긴다.

왜 돈이 필요한 순간에 자산은 싸져 있는가

경기 하강기에는 사업자금 수요와 자산 가격 하락이 같이 온다. 금융에서는 이 동행을 경기순응성이라고 부른다. 호황에는 자산 가격이 오르고 은행이 대출을 늘려 경기를 더 밀어 올리고, 침체에는 자산 가격 하락과 대출 회수가 겹쳐 경기를 더 끌어내린다. 금융 시스템이 경기의 진폭을 증폭시키는 이 구조는 국제 은행 규제(바젤III)가 경기대응완충자본이라는 장치를 만들어 통제하려 들 만큼 확립된 현상이다.

사장의 눈높이로 번역하면 이렇게 된다. 경기가 꺾이는 국면에서는 세 가지가 한꺼번에 온다. 첫째, 매출이 줄어 운영자금 압박이 커진다. 둘째, 은행 여신 심사가 조여져 신규 대출이나 만기 연장이 어려워진다. 대출로 메울 수 없으면 굴리던 자산을 헐어야 한다. 셋째, 바로 그 시점에 주식·채권·부동산 같은 자산의 가격이 내려가 있다. 돈이 가장 필요한 순간과 자산을 가장 싸게 팔아야 하는 순간이 겹치는 것이다.

이 겹침은 이론에 그치지 않고 며칠 단위로 실측된 적이 있다. 2024년 8월 초,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을 계기로 전 세계에 퍼져 있던 저금리 엔화 차입 자금이 한꺼번에 청산되면서 8월 5일 하루에 닛케이지수가 12.4%, 코스피가 8.8% 빠졌고 코스피·코스닥 양 시장에 서킷브레이커가 걸렸다. 미국 S&P500도 며칠 새 6% 넘게 내렸다. 이런 급락은 예고 없이 오고, 며칠 안에 끝나며, "장기적으로는 회복된다"는 위로가 그 며칠 사이에 돈을 꺼내야 하는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

안전하다고 알려진 자산도 예외가 아니었다. 2022년 미국의 금리 급등기에 미국 장기국채 상품 TLT는 40% 넘게 빠졌고 2026년 8월에도 그 저점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뉴스핌, 2026-08-18). 국채는 떼일 위험이 없다는 의미에서 안전할 뿐, 급하게 팔아야 하는 사람에게 가격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심지어 예금을 받는 제도권 기관도 흔들렸다. 부동산 사업 대출에 물린 새마을금고는 2023년 상반기 1조 3,000억 원, 2024년 1조 7,000억 원의 적자를 냈고 연체율이 2019년 2.5%에서 2025년 상반기 8.37%까지 올랐다. 위기 국면에서는 평소에 서로 무관해 보이던 자산들이 같이 빠진다. 분산해 뒀으니 괜찮다는 계산은 정확히 돈이 필요해지는 국면에서 무너진다.

여기에 사업하는 사람 고유의 조건이 하나 얹힌다. 직장인의 목돈 수요는 대체로 경기와 무관한 시점에 온다. 자녀 학비, 이사, 결혼. 반면 사장의 목돈 수요는 경기와 상관되어 있다. 매출이 줄어 메워야 할 때, 거래처가 무너져 물린 돈을 대신 돌려야 할 때, 혹은 반대로 침체기에 싸게 나온 설비나 부지를 잡을 기회가 왔을 때. 전부 경기 하강기에 몰리는 수요다. 사장의 자금 운용이 직장인의 재테크와 같은 틀일 수 없는 구조적 이유가 여기 있다. 사장은 자기 자산의 매도 시점을 자기가 정하지 못할 확률이 구조적으로 높은 사람이다.

그래서 결론은 상품 선택이 아니라 벽이다. 경기가 무너져도 가격이 변하지 않는 돈의 구역을 먼저 확보하고, 가격이 흔들려도 꺼낼 일이 없는 돈만 흔들리는 자산에 보내는 것. 다음 절이 그 벽의 설계도다.

결제, 대기, 장기. 세 구간의 설계도

벽의 설계는 만기 3구간이다. 돈을 쓰일 시점 기준으로 세 칸에 나누고, 칸마다 허용되는 자산의 종류를 다르게 못 박는다.

사업자금과 여유자금을 결제·대기·장기 3구간으로 나누는 설계 도해

구간정의허용 자산2026년 8월 기준 기대수익(세전)금지
1구간 결제6개월 안에 나갈 돈: 급여, 부품 대금, 부가세·소득세 납부액수시 입출금, 증권사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발행어음 수시형2%대 후반~3%대 초반원금이 1원이라도 변동하는 모든 것
2구간 대기6개월~2년 안에 사업으로 들어갈 수 있는 돈: 공장 계약금, 설비 대금, 비상 예비비만기를 시점에 맞춘 정기예금, 발행어음 약정형(3.80~3.85%), 만기 1~2년 국고채·통안채3.5~4.0%만기가 쓰일 시점보다 긴 자산, 가격 변동 자산 전부
3구간 장기5년 이상 꺼낼 일이 없다고 확정할 수 있는 돈만기 보유 전제의 채권, 글로벌 주식, 금 등 (6편 이후에서 다룸)구성에 따라 다름확정 불가능한 돈의 편입

각 구간의 논리는 이렇다.

1구간은 수익률을 계산하지 않는 구간이다. 여기의 목적은 단 하나, 어떤 날 아침에도 액면 그대로 있는 것이다. 그래도 0%에 둘 이유는 없다. 하루만 맡겨도 이자가 붙는 증권사 계좌나 수시형 발행어음이면 연 3% 언저리를 받으면서 즉시 인출이 된다. 결제 자금 2억 원이면 그냥 두는 것과의 차이가 연 600만 원이다.

2구간이 이 설계의 심장이다. 신공장 계약금처럼 시점이 다가오는 돈은 그 시점에 만기가 도착하는 원금 확정 상품에만 둔다. 2026년 8월 기준으로 이 구간의 도구는 저축은행 정기예금 평균 3.80%(저축은행중앙회, 2026-08-05), 초대형 증권사 4곳의 1년 발행어음 3.80~3.85%(소비자가만드는신문, 2026-08), 만기 1~2년 국고채다. 예금은 기관당 5,000만 원의 예금자보호 한도에 맞춰 쪼개고, 발행어음은 예금자보호가 없는 대신 자기자본 4조 원 이상 증권사만 발행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쓴다. 이 구간의 수익률 상한이 4% 언저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설계의 대가다. 여기서 더 받으려는 순간 가격 변동이나 신용 위험이 벽 안으로 들어온다.

3구간에만 흔들리는 자산이 허용된다. 조건은 단 하나, "5년 이상 안 꺼낸다"를 희망이 아니라 확정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업하는 사람에게 이 확정은 생각보다 어렵다. 2절에서 본 대로 사장의 돈은 경기가 부르면 불려 나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3구간의 크기는 "남는 돈 전부"가 아니라 "최악의 침체에 사업이 2년을 버틴다고 가정해도 안 건드릴 돈"으로 잡는 것이 맞다. 보수적으로 잡으라는 말이 아니라, 그렇게 잡아야 3구간의 자산이 최악의 날에 강제 매도되지 않고 제 수익률을 완성한다는 뜻이다. 낙폭을 견디는 힘은 멘털이 아니라 만기 설계에서 나온다.

벽은 한 방향으로만 열린다

구간을 나누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 나눈 벽을 지키는 것이다. 규율은 세 줄이면 된다.

첫째, 돈은 3구간에서 1구간 방향으로만 흐른다. 장기 자산을 팔아 결제 자금을 채우는 일은 계획된 인출이면 정상이다. 반대 방향, 즉 결제나 대기 구간의 돈이 "지금 시장이 좋아 보여서" 장기 구간으로 넘어가는 것이 사고의 시작이다. 상승장은 정확히 이 역류를 유혹하는 국면이고, 2절의 실증들은 그 유혹의 청구서가 어떤 속도로 오는지 보여준다.

둘째, 구간 재조정은 시장을 보고 하지 않고 사업 일정을 보고 한다. 공장 계약 시점이 확정되면 2구간을 줄일 수 있고, 계약이 끝나 목돈 수요가 사라지면 2구간의 일부를 3구간으로 넘긴다. 전부 사업 달력의 사건이다. 코스피가 오르거나 내리는 것은 구간 이동의 사유가 되지 않는다. 이 원칙 하나가 "무릎에 사서 어깨에 판다"류의 판단 문제를 설계 문제로 바꿔 준다. 판단은 틀리지만 달력은 틀리지 않는다.

셋째, 법인과 개인의 돈은 구간 이전에 주체부터 다르다. 법인 계좌의 여유자금을 대표 개인의 투자로 돌리는 순간 세법상 가지급금이라는 별도의 문제가 생기고, 반대로 개인 돈을 법인에 넣는 것도 나중에 꺼낼 때의 세금 경로를 먼저 계산해야 한다. 같은 3구간 틀을 법인 자금과 개인 자금에 각각 따로 적용하는 것이 원칙이고, 어떤 소득을 어느 주체에 두는 게 유리한지는 9편 세금 편에서 다룬다.

이 규율까지 세우고 나면 비로소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갈 수 있다. 3구간에 들어간 돈, 오래 굴려도 되는 그 돈으로 얼마를 벌어야 하는가. 흔히 듣는 답이 "금리보다 2~4%포인트는 더 벌어야 한다"인데, 이 숫자의 근거는 무엇이고 그 초과수익은 어디서 나오는가. 다음 편의 질문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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