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는 물건을 바꾸면 답이 바뀐다
세계에서 가장 큰 한국어 브랜드의 매출이 세종학당 예산의 7분의 1이다
이 글은 《전화 한국어를 팔 수 있는가》 시리즈 16편이다. 1부에서 인공지능을 빼고 낸 진단을 이제 다시 연다.
1차 진단을 다시 연다
11편에서 낸 진단은 이랬다. 전화나 화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쳐 파는 사업은 사람이 1대1로 붙는 형태로는 성립하지 않는다. 원가에서 지거나 모객에서 진다.
그리고 그 판정에 조건을 달았다. 인공지능을 빼고 계산한 결과라는 것이었다.
이제 조건을 풀었으니 답이 달라지는지 봐야 한다. 4부에 걸쳐 확인한 것을 먼저 정리한다.
| 편 | 확인한 것 |
|---|---|
| 12 | AI 대화 한 시간 원가가 951원에서 38,050원. 잘 만들면 사람의 20분의 1, 못 만들면 사람보다 비쌈 |
| 13 | AI 때문에 접은 어학 회사는 1차 자료로 0건. 실적이 좋아진 곳은 AI를 옵션이나 붙잡는 장치로 씀 |
| 14 | AI가 못 가져간 것은 강제력·보증·소속 셋. 사업자가 만들 수 있는 것은 소속 하나 |
| 15 | 도구형은 사용량에서 지고 서비스형은 원가에서 진다. AI가 편이 되는 것은 자리형 하나 |
15편의 계산으로는 자리형이 남는다. 월 9만 9천원에 팔면 광고비를 넣고도 28.6%에서 57.7%가 남았다.
그런데 이 시리즈는 11편에서 열려 있다고 적어 둔 문이 셋 있었다. 검증을 파는 길, 커뮤니티를 파는 길, 해외 기관에 파는 길이었다. 그때는 존재만 확인하고 계산은 미뤘다.
셋을 하나씩 연다. 그리고 셋 다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온다.
첫째 문: 검증을 팔려던 회사가 이미 있었다
14편에서 보증이 AI가 가져가지 못한 자리라고 했다. 그러면 그 자리를 상품으로 만들면 된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실제로 그렇게 만든 회사가 있었다.
| 항목 | 내용 |
|---|---|
| 서비스 | 외국인 채용 플랫폼 |
| 운영사 | 국내 최대 채용 플랫폼의 계열사 |
| 기능 | 약 30초 음성 녹음을 AI가 분석해 발음 정확도와 억양, 유창성을 5단계로 평가하고 피드백 리포트 제공 |
| 판매 문구 | 기업이 별도 테스트 없이 지원자의 한국어 수준을 비교하고 판단할 수 있다 |
| 결과 | 2026년 6월 8일 서비스 전면 종료 |
기능 설명을 다시 읽어 보면 이 시리즈가 세워 둔 가설과 거의 같다. 고용주가 원하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 이 사람이 한국어를 하는지 확인하는 일이고, 그걸 AI로 자동화해 팔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 회사가 유료 가격을 공개하기도 전에 서비스가 접혔다. 회사 설명은 비핵심 사업 정리와 인력 구조조정이었다. 명함 서비스와 재능거래 플랫폼도 같은 시기에 함께 종료됐으므로 이 기능 하나의 실패인지 플랫폼 전체의 실패인지는 구분되지 않는다.
그래도 정황으로는 충분하다. 외국인 채용 시장에서 언어 검증이 플랫폼을 지탱할 만한 매출을 못 냈다. 8편에서 확인한 사실과 이어진다. 사업주가 한국어 교육에 돈을 쓴 사례가 고용허가제 인원의 0.4%에 못 미쳤다.
주변 조건도 나쁘다. 어학 시험업 자체가 저마진이다. 토익을 국내에서 시행하는 회사의 2024년 매출이 583.2억원, 영업이익이 28.9억원으로 이익률이 약 5%였고 매출과 이익 모두 전년보다 줄었다. 국내 어학 시험 중 하나는 응시자가 2010년 50만 명에서 최근 10만 명 아래로 무너졌다. 승자독식이라 2위 이하는 원가를 못 견딘다.
민간 한국어 인증도 있기는 하다. 국내 응시료 4만원짜리 시험이 확인되는데, 연간 응시자 수와 운영 기관 재무가 전부 비공개다. 통계를 낼 만큼 크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둘째 문: 커뮤니티는 회비만으로 서지 않는다
두 번째 문은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를 만들어 회비를 받는 길이었다. 언어 학습에서 이 형태로 돌아가는 회사가 둘 있다.
| 회사 | 규모 | 매출이 나오는 곳 |
|---|---|---|
| HelloTalk | 사용자 2천만 명, 유료 100만 명 이상 | 멤버십과 온라인 강의, 앱 내 광고 |
| Tandem | 회원 1천만 명 이상, 2024년 매출 1,040만 달러, 직원 49명 | 프리미엄 구독과 튜터 매칭 수수료 20% |
둘 다 무료로 언어 교환을 열어 사람을 모으고, 돈은 다른 데서 받는다. 커뮤니티는 유입 통로이고 매출은 별도 상품에서 나온다. 회비만으로 서는 구조가 아니다.
유료 커뮤니티 자체의 시세는 확인된다. 커뮤니티 플랫폼 한 곳의 공개 커뮤니티 1,000개를 표본으로 보면 77.7%가 유료이고 중간값이 월 27달러, 평균이 월 42.91달러다. 우리 돈으로 월 3만 7천원에서 5만 9천원이다.
문제는 원가다. 회원 몇 명당 운영자 몇 명이 필요한지에 대한 신뢰할 만한 자료가 없다. 1,000명에서 5,000명당 한 명이라는 서술이 있지만 커뮤니티 성격에 따라 편차가 크다는 단서가 붙어 있고, 조사자는 이를 "표준화된 벤치마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정리했다.
무료 회원이 유료로 넘어오는 비율은 업계 표준이 2%에서 5%다. 구조화된 체험 과정을 거치면 11%까지 오른 사례가 하나 있는데 단일 사례라 일반화하기 어렵다.
즉 커뮤니티 형태는 매출 모델이 아니라 유입 모델이고, 원가를 계산할 자료가 없다. 15편에서 계산한 자리형이 커뮤니티와 다른 지점이 여기다. 자리형은 회비를 받는 것이 아니라 학습 상품의 값을 받고, 그 안에 AI 사용량과 사람의 관리 시간이 설계로 정해져 있어 원가가 예측된다.
셋째 문: 유일한 선례의 생사를 모른다
세 번째 문은 개인이 아니라 기관에 파는 길이었다. 11편에서 국내 한 업체가 중국 오프라인 한국어 학원의 온라인 전환을 전담하는 계약을 따내 연 120억원 규모를 예상한다는 보도를 인용했다. 개인에게 팔지 않으니 고객 획득 비용이 발생하지 않고, 학생 모으는 일은 상대 기관이 이미 해 놓았다는 점에서 구조가 좋아 보였다.
확인해 보니 이 선례 자체가 불확실하다.
| 항목 | 상태 |
|---|---|
| 계약 시점 | 한 매체는 2017년, 다른 매체는 2021년으로 보도. 5년 차이 |
| 예상 매출 120억원의 실현 여부 | 확인 안 됨 |
| 2026년 현재 회사 존속 여부 | 확인 안 됨 |
| 서비스 지속 여부 | 확인 안 됨 |
비상장 소규모 법인이라 공시가 없고, 기업 정보 서비스는 접근이 막혔다.
그리고 이 회사 외에 한국어 교육 콘텐츠나 시스템을 해외 기관에 판 사례를 찾지 못했다. 세종학당은 정부가 전 세계에 무료로 직접 공급하는 사업이라 이 범주가 아니다.
선례가 하나뿐인데 그 하나의 생사를 모른다. 이 상태로 "기관에 파는 길이 열려 있다"고 쓸 수 없다. 이 문은 열려 있다고도 닫혔다고도 말할 수 없는 상태로 남긴다.
세 문이 각각 닫힌 것이 아니다
문 셋이 전부 막히거나 흐려졌다. 여기서 각각의 이유를 따로 적으면 진단이 얕아진다. 셋이 같은 이유로 막혔을 가능성을 봐야 한다.
한국어를 팔아 온 회사들의 규모를 나란히 놓는다.
| 사업자 | 무엇을 파나 | 매출 |
|---|---|---|
| 세계에서 가장 알려진 한국어 브랜드 | 콘텐츠 구독 | 33억원(2023년) |
| 언어 교환 플랫폼 Tandem | 전 세계 모든 언어 | 143억원(2024년, 1,040만 달러) |
| 일본 온라인 영어회화 원조 | 영어 | 826억원(96억엔) |
| 토익 국내 시행사 | 영어 시험 | 583억원(2024년) |
| 국내 AI 영어회화 서비스 | 한국인에게 영어 | 60억원(2023년 국내) |
세계에서 가장 알려진 한국어 교육 브랜드의 매출이 영어 사업자의 25분의 1이다(계산: 826 ÷ 33). 유튜브 구독자 108만 명에 190여 개국 80만 회원을 가진 15년차 회사인데 직원이 24명에서 26명이다.
여기에 한 줄을 더 놓으면 이유가 보인다.
세종학당재단의 2019년 예산이 235.77억원이었다.
같은 시장에서 국가가 쓰는 돈이 최대 민간 사업자 매출의 일곱 배다(계산: 235.77 ÷ 33 ≒ 7.1). 그것도 7년 전 수치이고, 그사이 학당은 180개소에서 273개소로 늘었다.
이것이 세 문이 함께 막힌 이유다. 한국어 교육은 개인이 사는 상품이 아니라 국가가 공급하는 정책이다.
영어와 비교하면 차이가 분명하다.
| 영어 교육 | 한국어 교육 | |
|---|---|---|
| 왜 배우나 | 개인의 필요 | 체류 자격과 문화적 관심 |
| 누가 공급하나 | 민간 | 국가가 상당 부분 |
| 값을 누가 정하나 | 시장 | 정책 |
| 시장 크기 | 수천억원대 | 최대 사업자가 33억원 |
수요가 없는 것이 아니다. 한국어능력시험 응시자는 2020년 21만 8천 명에서 2023년 42만 명을 넘겼고 계속 는다. 세종학당 수강생도 2025년 23만 9천 명이다. 수요가 느는 자리를 국가 예산이 채우고 있어서 민간 시장으로 넘어오지 않는다.
그러니 검증이든 커뮤니티든 기관 판매든, 어느 형태로 바꿔도 같은 천장을 만난다. 형태의 문제가 아니라 이 시장이 놓인 자리의 문제다.
재진단
1차 진단의 질문은 "이 사업 모델로 돈이 되는가"였고 답은 안 된다였다. 재진단의 질문은 다르다. 무엇을 파는 사업으로 바꿔야 되는가.
답을 세 줄로 정리한다.
첫째, 가르치는 것을 팔면 안 된다. 가르치는 일은 국가가 시간당 1,000원에, 세종학당은 무료로 공급한다. AI는 하루 15분을 공짜로 준다. 이 자리에서 값을 받을 근거가 없다.
둘째, 끝까지 가게 하는 것을 팔아야 한다. 교육 앱은 가입 30일 뒤에 2%가 남는다. 일본 한국어 학습자의 60.7%가 혼자 하고, 한글능력검정 최상급 응시자는 전체의 1.2%다. 시작은 넘치고 완주는 없다. 그리고 이 자리는 국가도 비워 두었다. 법무부가 유료화 사유로 "무료로 주니 동기와 성취도가 떨어진다"고 스스로 밝혔다.
셋째, 형태는 자리형이다. AI가 무제한으로 가르치고 사람은 여럿을 관리한다. 15편에서 계산한 대로 월 9만 9천원에 팔면 광고비를 넣고도 28.6%에서 57.7%가 남는다. 사람이 1대1로 붙는 형태가 시간당 1,925원 적자였던 것과 반대다.
세 문에 대한 판정도 여기서 정리된다.
| 문 | 판정 |
|---|---|
| 검증을 판다 | 고용주에게 파는 것은 실패 사례가 있다. 학습자에게 파는 완주 증명은 다른 물건이며, 자리형 상품의 일부로만 성립 |
| 커뮤니티를 판다 | 회비로는 안 선다. 사람을 모으는 장치로만 쓰고 값은 학습 상품에서 받는다 |
| 기관에 판다 | 선례 하나의 생사를 모른다. 판단 보류 |
셋 다 단독으로는 서지 않고, 검증과 커뮤니티는 자리형 안의 부품으로 들어갈 때만 값을 갖는다.
그리고 이 결론에는 천장이 있다. 앞에서 본 대로 이 시장의 최대 민간 사업자가 33억원이다. 자리형으로 잘 만들어도 그 규모를 크게 넘기 어렵다고 보는 편이 정직하다. 수십억원대 사업을 만드는 설계이지 수백억원대 사업을 만드는 설계가 아니다.
확신도와 이게 나오면 뒤집힌다
이 재진단의 확신도는 중이다. 1차 진단보다 낮다.
낮은 이유가 분명하다. 재진단의 핵심 가정을 확인할 자료가 세상에 없다.
자리형이 성립하는 근거는 "사람이 붙으면 완주율이 오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14편에서 확인한 대로 한국어 학습자의 지속률 자료가 없고, 범위를 전 세계 언어 학습 앱으로 넓혀도 없다. 언어 학습 업계 전체가 자사의 지속률을 공개하지 않는다.
1차 자료로 확인된 것은 하나다. 듀오링고가 스트릭 내기 기능을 실험해 7일차 잔존율을 14% 올렸다는 것. 표본과 기간은 공개되지 않았다.
즉 이 시리즈는 남의 숫자로 여기까지 왔고, 마지막 한 칸을 못 채운 채 판정했다.
뒤집히는 조건을 적는다.
| 이게 나오면 | 무엇이 달라지나 |
|---|---|
| 사람이 관리해도 완주율이 안 오른다는 실측 | 자리형의 근거가 사라지고 재진단이 1차 진단으로 되돌아간다 |
| 월 9만 9천원에 사는 사람이 충분치 않다는 확인 | 판매가를 낮춰야 하고 계산이 다시 적자로 간다 |
| 고객 한 명을 데려오는 데 매출의 30%보다 훨씬 많이 든다는 실측 | 자리형도 적자가 된다 |
| 국가가 생성형 AI 한국어 교사를 본격 가동 | 시간당 1,000원짜리 벽이 0원이 되고 전제가 무너진다 |
| 해외 거주 한국어 인력을 시간당 1만원 아래로 확보 | 사람 원가가 절반 이하로 내려가 1대1도 다시 계산해야 한다 |
네 번째는 남은 시간의 문제이기도 하다. 12편에서 확인한 대로 문화체육관광부가 2024년에 생성형 AI 한국어 교사 계획을 발표했고 입찰까지 나갔지만 가동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계획과 집행 사이의 간격이 지금 민간에 남은 시간이다.
앞의 셋은 조사가 아니라 실행으로만 확인된다. 학생 몇십 명을 받아 몇 달을 세어 보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그 숫자를 가진 회사들은 공개하지 않고, 공개할 이유도 없다.
두 진단의 차이
열여섯 편을 지나 두 개의 답이 나왔다.
1차 진단: 전화나 화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쳐 파는 사업은 사람이 1대1로 붙는 형태로는 성립하지 않는다. 원가에서 지거나 모객에서 진다.
재진단: 가르치는 것을 팔면 안 되고 끝까지 가게 하는 것을 팔아야 한다. AI가 가르치고 사람이 관리하는 형태라면 계산상 성립한다. 다만 그 계산의 마지막 칸을 채울 자료가 세상에 없고, 성립하더라도 이 시장의 천장은 수십억원대다.
두 답의 차이는 인공지능이 만든 것이 아니다. 파는 물건을 바꾼 것이 만들었다. 인공지능은 그 변경을 가능하게 한 조건일 뿐이다. 가르치는 일의 원가가 시간당 25,000원에서 몇천 원으로 내려가지 않았다면 사람을 관리자 자리로 옮길 수 없었다.
여기까지가 전화 한국어에 대한 답이다.
그런데 이 시리즈를 여기서 끝내면 아까운 것이 하나 있다. 열여섯 편에 걸쳐 확인한 구조가 한국어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값을 국가나 큰 공급자가 정해 놓은 시장, 원가가 사람 시간에 묶인 사업, 고객을 데려오는 값이 이익을 다 먹는 구조, 그리고 AI가 그중 한 항목만 건드리는 상황. 이 조합은 다른 업종에도 있다.
마지막 편은 이 계산을 다른 업으로 옮긴다. 자영업 여러 업종에 같은 질문을 대입하면 어디가 이 구조에 걸려 있고 어디가 아닌지가 나온다.
출처
매출 배수와 예산 대비 비율은 이 글에서 계산했고 계산식을 본문에 밝혔다. 엔화는 100엔당 861.11원, 달러는 1,378원으로 환산했다. 한국어 콘텐츠 사업자의 매출 33억원은 두 자료가 33억원대와 333억원대로 갈렸는데 직원 규모를 근거로 앞쪽을 채택했고 1차 공시로 확정하지는 못했다. 세종학당 예산은 2018~2019년 자료만 1차로 확인됐고 최신 총예산은 찾지 못했으므로, 본문의 일곱 배 비교는 2019년 예산과 2023년 매출을 나눈 값이라 시점이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검증 서비스의 종료는 종료일까지 확인됐으나 그 기능 하나의 실패인지 플랫폼 전체의 실패인지는 구분되지 않는다. 기관 판매 선례는 계약 시점이 두 매체에서 5년 차이로 보도됐고 현재 상태를 확인하지 못했다. 완주율에 대한 자료는 어느 조사에서도 확보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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