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는 여행이 아니라 선수금으로 돈을 번다
고객 돈은 출발 전에 전부 들어오고 원가는 행사 뒤에야 나간다. 이 시차를 지키는 제도는 아직 없다
여행업 시리즈 3편. 정비공업사 사장이 다른 산업을 같은 눈으로 추적한 기록이다.
패키지 여행의 결제는 비행기가 뜨기 전에 끝난다. 예약할 때 예약금을 걸고, 출발 전에 잔금을 치른다. 고객은 상품을 받기 전에 대금 전액을 낸 상태가 된다. 반대편 끝에서 호텔과 차량과 식사 값을 실제로 치르는 현지 랜드사는 행사가 끝나고도 한참 뒤에야 정산을 받는다. 1편에서 해부한 안데르센 사건의 초조기예약은 이 시차를 1년에서 3년까지 늘린 극단이었을 뿐, 밸류체인 양 끝에서 돈이 움직이는 시점은 원래부터 어긋나 있다. 이 어긋남이 여행사라는 사업의 실체다. 여행사는 여행 서비스업이기 전에 선수금을 굴리는 금융업이다.
돈은 출발 전에 다 들어오고, 원가는 행사 뒤에 나간다
해외 패키지의 돈은 고객이 출발 전에 100% 선지급하고, 실제 서비스 원가는 행사가 끝난 뒤에야 아래 단계로 내려간다. 시간 순서로 놓으면 이렇다.
| 시점 | 돈의 이동 |
|---|---|
| 예약 | 고객이 판매 채널에 예약금 납부 |
| 출발 전 | 고객이 잔금 완납. 여행 대금 100%가 여행사로 |
| 출발 전후 | 여행사가 항공사에 발권 대금 정산 |
| 행사 진행 | 랜드사가 호텔·차량·식사·가이드 비용을 자기 돈으로 선집행 |
| 행사 후 수십 일 | 여행사가 랜드사에 지상비 후정산. 지연·차등 지급 빈발 |
고객 돈은 행사 전에 전부 여행사로 들어오는데, 원가를 실제로 치르는 랜드사는 행사가 끝난 뒤에야 돈을 받는다. 여행사는 이 시차 동안 이자 없는 운전자금을 쥔다. 들어온 고객 돈은 회계상 관광수탁금이라는 이름의 부채로 잡히지만, 예치나 신탁 의무가 없어서 회사 통장에 들어가는 순간 용도 제한이 사라진다.
하나투어 부채의 절반은 차입금이 아니라 맡아둔 돈이다
IB토마토의 2024년 분석에 따르면 하나투어의 2024년 상반기 말 매입채무와 관광수탁금 합계는 약 2,629억 원으로, 부채총계의 54.75%였다. 부채비율은 2023년 말 304.63%에서 2024년 상반기 408.70%로 뛰었는데, 이 급증은 돈을 빌려서 생긴 게 아니라 고객 선지급금과 공급자 미지급금이 쌓여서 생긴 결과다. 같은 회사의 매출은 2023년 4,116억 원, 2024년 6,166억 원이다(여행신문, 2025). 연 매출 6,000억 원대 회사가 상시 2,000억 원대의 남의 돈, 곧 고객이 미리 낸 돈과 공급자에게 아직 주지 않은 돈을 함께 굴리는 구조다.
여행업에서 선수금은 두 얼굴을 갖는다. 영업이 활발할수록 선수금 부채가 커지니 경기 선행지표이고, 동시에 이자 없는 조달원이다. 장사가 잘되는 여행사일수록 남의 돈을 더 많이 쥔다.
원가는 밸류체인 최말단에 외상으로 쌓인다
선수금이 위쪽에 머무는 동안 원가 부담은 가장 아래 단계인 랜드사에 신용으로 누적된다. 랜드사는 국내 여행사의 의뢰를 받아 현지에서 호텔·차량·식사·가이드를 수배하고 행사를 실행하는 업체다. 비즈한국의 2018년 보도에 따르면 대형 패키지사는 현지 순수 경비가 1인당 150달러인 행사에 투어피 100달러를 배정하고, 부족분은 쇼핑·옵션 수수료로 메우게 했다. 지상비 지급을 미뤄 분기 수익을 부풀리고, 홈쇼핑 방송 수수료의 50~70%를 랜드사에 부담시키는 관행도 같은 보도에 나온다.
이 구조의 끝을 보여준 사건이 2026년 시드니 한인 랜드사 부도다. 여행신문의 2026년 보도에 따르면 이 업체는 실제 운영 원가의 40~50%만 지상비로 받으면서 부족분을 고객 쇼핑 수수료로 장기간 보전했고, 호주달러가 2025년 880~900원대에서 2026년 1,070~1,090원대로 약 20% 오르자 한화 결제 관행 탓에 환차손까지 떠안고 무너졌다. 협력업체와 가이드에게 주지 못한 돈이 약 27억 원이었다.
랜드사는 이렇게 밸류체인의 최말단에서 신용 공여자 역할을 하는데, 관광진흥법상 업종조차 아니다. 관광진흥법 시행령 제2조의 여행업 분류는 종합·국내외·국내 3종뿐이고, 지상수배업이라는 업종은 법에 없다. 해외 소재 랜드사는 한국 법의 등록·감독 대상이 아니다. 원가를 실제로 치르는 주체가 제도 바깥에 있다.
여행사가 무너지면 선수금은 돌아오는가
실제 부도 사건에서 고객이 돌려받은 돈은 피해액의 10% 안팎에 그치거나 아예 없었다. 제도가 없어서가 아니다. 등록 자본금과 보증보험이라는 두 겹의 장치가 있는데, 둘 다 선수금 규모와 무관하게 설계되어 있다.
자본금부터 보면, 진입 문턱은 계속 내려왔다.
| 시점 | 종합(일반)여행업 등록 자본금 | 근거 |
|---|---|---|
| 2015년 이전 | 2억 원 | 관광진흥법 시행령 별표 1 |
| 2016년 | 1억 원, 한시 완화 후 유지 | KTV, 2016 |
| 2021년 9월 | 5,000만 원 | 시행령 별표 1 개정, 한국경제 2021 |
| 2024년 하반기 | 2,500만 원 (한시) | 문화체육관광부, 뉴스1 2024 |
10년 사이 종합여행업 자본금이 2억 원에서 2,500만 원까지 내려왔다. 자본금 2,500만 원짜리 회사가 방학 성수기 한 철에 수십억 원의 선수금을 모으는 데 법적 제약이 없다. 이 문턱 아래로 여행업 등록 건수는 2021년 말 기준 2만906건이다(한국관광협회중앙회 전국 관광사업체 현황, 여행신문 재인용). 휴면·중복 등록을 걷어낸 실제 운영 사업체 조사(문화체육관광부 관광사업체조사)로도 같은 해 1만7,433개다. 등록증은 흔하고, 등록 자체는 아무것도 보증하지 않는다.
보증보험 쪽의 공백은 더 근본적이다. 관광진흥법 시행규칙 별표 3에 따르면 보증보험·공제 가입 금액은 직전 사업연도 매출액 구간으로 정해진다. 한도가 매출의 후행 지표라서, 지금 이 순간 여행사가 쥐고 있는 선수금 총액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직전 매출 1억 원 미만인 종합여행업자의 기본 보증은 5,000만 원이다. 작년 매출이 1억 원이 안 되던 여행사가 올해 수십억 원의 선수금을 모아도 보증은 5,000만 원에 머문다. 급성장 국면이 곧 무보증 국면이 된다. 피해액이 한도를 넘으면 문화체육관광부 훈령에 따라 피해자별로 비례 배분한다. 전원이 같은 비율로 덜 받는다.
이 설계가 실제 사건에서 어떻게 작동했는지는 숫자가 보여준다.
| 사건 | 연도 | 피해 규모 | 보증·공제 | 결과 | 출처 |
|---|---|---|---|---|---|
| 대전 여행사 파산 (적립식 상품) | 2023 | 1,280명, 25억 2천만 원 | 공제 2억 5천만 원 | 회수율 약 10% | 트래블아이, 2023 |
| 탑항공 폐업 | 2018 | 피해 신고 약 1,000명 | 보증보험 10억 원 가입 | 폐업 1년 뒤까지 지급 0건 | 여행신문, 2019 |
| 티메프 사태 여행상품 | 2024 | 여행상품이 대표 피해 품목 | 해당 없음 | 플랫폼 판매분은 여행사 보증보험 체계 밖 | 헤럴드경제, 2025 |
대전 사건이 전형이다. 수년간 선수금을 쌓는 적립식 상품이었는데 보증은 매출 구간 기준 2억 5천만 원이었고, 피해자 1,280명은 피해액의 10분의 1 수준을 놓고 비례 배분을 기다렸다. 탑항공은 보증보험 10억 원에 가입한 등록 업체였지만 폐업 1년이 지나도록 보험금 지급이 한 건도 없었다. 한도만 문제가 아니라 지급 속도 자체가 구제 수단으로 기능하지 못했다. 티메프 사태는 여행 선수금이 여행사가 아닌 판매 플랫폼 단계에서도 깨질 수 있고, 그 채널은 보증 체계 바깥이라는 사실을 드러냈다.
"법을 지켰다"와 "고객 돈이 안전하다"는 다른 문장이다
여행업의 소비자 보호 장치는 등록 여부를 걸러주는 신호로는 작동하지만, 선수금 전액을 지키는 장치로는 작동하지 않는다. 파열은 예외적 사건이 아니다. 한국소비자원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20~2024) 여행 관련 피해구제 신청은 3,922건이고, 그중 국외여행이 85.6%, 취소·환급 거부 같은 계약 관련이 66.0%다(뉴스웍스 2025 재인용). 그리고 위 사건의 여행사들은 무등록 유령업체가 아니었다. 탑항공은 1982년 설립된 항공권 전문 여행사였고, 보증보험에 가입한 상태로 폐업했다. 등록과 보험 가입이라는 사실이 소비자에게 신뢰 신호로 소비되고, 그 신호가 피해를 오히려 키운다. 등록 여행사인지 확인하라는 표준 예방 수칙은 무등록 사기를 거를 뿐, 등록 업체의 붕괴 앞에서는 무력하다.
구조를 요약하면 이렇다. 고객 돈은 출발 전에 전부 들어오고, 예치 의무가 없어 회사 운전자금과 섞이고, 원가는 제도 바깥의 최말단 업체에 외상으로 쌓이고, 보증 한도는 그 선수금의 크기를 모른다. 부도 규모가 작으면 제도가 작동하고, 피해가 클수록 작동하지 않는다. 보호가 가장 필요한 순간에 가장 약해지는 역진 구조다. 2편에서 분해한 원가 이하의 표시 가격이 손님을 모으고, 그렇게 들어온 선수금의 파열이 수십 년째 같은 모양으로 반복되는 이유는 사업자 개인의 도덕이 아니라 이 돈 흐름에 있다. 법을 지킨 여행사와 돈이 안전한 여행사 사이의 간극, 그 간극이 이 산업의 구조적 구멍이다.
시리즈의 다음 편은 뉴스레터로 받아볼 수 있다. 여행업 안에서 이 구조를 직접 겪었거나 다르게 보는 분의 연락을 환영한다. 문의로 보내면 된다.
출처
본문에 인용한 재무·제도 수치의 근거는 아래와 같다. 공시 기반 분석 보도와 법령, 협회 집계가 섞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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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재무 분석
구조·부도·피해 보도
- '여행사 갑질? 랜드사 제살깎기?' 저가 패키지여행 피해 원인 논란 — 비즈한국, 2018
- 시드니 한인 랜드사 27억원 부도, 초저가 패키지 시장 기형적 유통 구조 — 여행신문, 2026
- 대전 중소 여행사 파산선고, 피해자 1280명 25억 피해 — 트래블아이, 2023
- 탑항공 마저 폐업, 국내 여행사 연이어 문닫은 이유 — 전자신문, 2018
- [탑항공 폐업 1년, 가시지 않은 여파 — 여행신문, 2019]
- [여행박사, 다음 달 사이트 종료…티메프發 줄도산 현실화할까 — 헤럴드경제, 2025]
- [경영난에 여행상품 대금 '먹튀' 잇따라…피해 예방 첫걸음은 '꼼꼼한 확인' — 뉴스웍스, 2025]
- 여행사 수 2만906개 — 여행신문(한국관광협회중앙회 집계), 2022
법령·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