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이 없어야 그 건물에 들어간다
파크원 임차인들의 재무제표에는 공장이 없다. 로펌·증권사·지주회사가 버는 구조
이 글은 《자본의 구조》 시리즈 6편이다. 1편부터 5편까지는 건물을 따라왔다. 어떤 돈으로 짓고, 리스크를 누가 나눠 지고, 건물값이 어떻게 매겨지고, 회사들이 왜 비싼 도심에 몰리는지까지. 6편은 방향을 돌려 그 건물에 세 들어 사는 회사들의 재무제표를 연다.
타워 두 동의 임차인 명단
여의도 파크원 타워1의 57층부터 64층까지 여덟 개 층은 LG에너지솔루션이 쓴다. 그 아래로 HMM이 아홉 개 층을 쓰고, 시공사 포스코건설이 책임임차로 떠안은 면적이 따로 있다. 타워2는 NH투자증권이 완공 전에 약 9,500억 원에 통째로 사들여 사옥으로 쓰면서, 49~50층 등 일부 층에는 한영회계법인 같은 회사가 들어와 있다.
이 건물이 어떤 돈과 계약으로 세워졌는지는 1편 파크원의 계약 구조에서 해부했다. 땅은 지상권으로 확보됐고, 공사비 2조 1,000억 원은 미래의 현금흐름을 보고 움직였다. 그 미래의 현금흐름이란 결국 임대료이고, 그 임대료를 만들어내는 것은 임차인의 장사다. 대주단 34곳이 담보로 잡은 것을 끝까지 따라가면 이 회사들의 손익계산서가 나온다. 6편은 그래서 임대료를 내는 쪽으로 건너간다. 이 회사들은 무슨 돈으로 서울에서 가장 비싼 축에 드는 사무실 값을 치르는가. 타워2를 아예 사버린 NH투자증권이라면, 그 약 9,500억 원은 어떤 계산에서 나왔는가.
명단을 다시 보면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배터리 회사, 해운사, 증권사, 회계법인. 업종은 제각각인데 이 중 여의도에서 무언가를 만드는 회사는 없다. LG에너지솔루션의 공장은 오창과 폴란드와 미국에 있고, HMM의 배는 바다 위에 있다. 여의도 57층에 있는 것은 책상과 회의실과 사람이다.
그리고 이 회사들의 재무제표를 열면 업종의 차이를 뚫고 공통 구조가 드러난다. 자산 목록에 유형자산이 거의 없고, 비용 목록의 중심이 인건비다. 건물을 소유하는 쪽의 재무와 정확히 반대되는 생김새다. 이번 편은 그 구조를 세 단계로 연다. 먼저 자산과 비용의 생김새, 다음으로 사람 단위의 마진, 마지막으로 사람조차 별로 필요 없는 극단의 형태까지.
이 회사들은 무엇으로 돈을 버는가
이 회사들의 생산 설비는 사람이고, 재무제표가 그것을 증명한다. NH투자증권의 총자산은 2024년 말 기준 62조 4,000억 원인데, 이 가운데 부동산은 사옥인 타워2를 포함해도 약 1.6% 수준에 그친다. 타워2 매입가 약 9,500억~1조 원을 토지·건물로 놓고 총자산으로 나눈 어림값이다. 여의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 하나를 통째로 소유한 회사인데도, 그 건물이 회사 자산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백분의 이가 안 된다. 나머지 98% 이상은 채권과 주식 같은 금융자산이다. 굴뚝도 라인도 창고도 없다.
자산이 가벼운 대신 비용이 사람으로 쏠린다. 녹색경제신문 집계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의 판매관리비는 2024년 11조 7,770억 원으로 전년보다 13.2% 늘었고, 증가분을 이끈 것은 임금과 성과보수였다. 실적이 좋아지면 설비 투자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 값이 늘어난다. 증권업의 비용 구조는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
타워2에 세 들어 있는 한영회계법인은 이 구조의 더 순수한 표본이다. 조세일보와 한국세정신문 보도에 따르면 한영회계법인의 2024 회계연도(2024년 7월~2025년 6월) 매출은 4,645억 원, 영업이익은 91억 원이다. 영업이익률로 환산하면 2% 수준이다. 4,645억 원을 벌어 4,500억 원 이상을 비용으로 쓰는 회사이고, 회계법인에서 그 비용의 중심은 회계사와 파트너의 보수다. 매출이 거의 그대로 사람을 통과해서 나가는 구조다.
여기서 재무상태표의 역설이 하나 나온다. 이 회사들이 실제로 돈을 버는 수단, 즉 사람과 면허와 평판은 회계 기준상 자산으로 잡히지 않는다. 회계사 수천 명의 전문성은 재무상태표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이 회사들의 재무상태표는 가볍고, 대신 손익계산서가 무겁다. 건물을 소유한 쪽의 재무가 자산의 크기로 읽히는 것과 반대로, 이 회사들의 재무는 사람 하나가 얼마를 버는가로 읽어야 한다. 그 숫자가 다음 절이다.
마진의 단위는 평당이 아니라 인당이다
건물의 수익이 평당 임대료로 계산되듯, 이 회사들의 수익은 인당 매출과 인당 순이익으로 계산된다. 그 단위로 보면 왜 이들이 비싼 사무실 값을 치를 수 있는지가 바로 보인다.
가장 극단의 사례가 로펌이다. 법률신문 보도에 따르면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2024년 매출은 약 1조 5,000억 원, 소속 변호사는 1,420명이다. 리걸타임즈가 2023년 말 기준으로 집계한 김앤장의 변호사 인당 매출은 약 12억 7,600만 원이다. 같은 집계에서 국내 대형 로펌들의 기준선처럼 읽히는 숫자가 변호사 1인당 매출 6억 원 선인데, 김앤장은 그 두 배를 넘는다. 변호사 한 사람이 앉은 자리 하나가 연 13억 원 가까운 매출을 만든다. 그 자리의 임대료가 얼마든 이 계산 앞에서는 잔돈이 된다.
증권사도 같은 단위로 읽힌다. 한국경제 보도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의 2024년 순이익은 1조 1,123억 원으로 국내 증권사 1위였고, 삼성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이 9,000억 원 안팎으로 뒤를 이었다. 이를 임직원 수로 나누면 대형 증권사의 인당 순이익은 약 2~4억 원 수준이 나온다. 순이익은 2024년 연간 수치인데 직원 수는 집계 시점이 제각각이라 정확한 값이 아니라 어림값이다. 그래도 자릿수는 분명하다. 매출이 아니라 순이익이 사람당 수억 원이다.
| 회사 | 인당 수치 | 기준 |
|---|---|---|
| 김앤장 법률사무소 | 변호사 인당 매출 약 12억 7,600만 원 | 2023년 말, 리걸타임즈 집계 |
| 한국투자증권 | 인당 순이익 약 4억 원 수준 | 2024년 순이익 1조 1,123억 원 기준 어림 계산 |
| 대형 증권사 전반 | 인당 순이익 약 2~4억 원 수준 | 2024년 순이익 기준 어림 계산 |
이 마진의 일부는 급여로 되돌아간다. 데이터뉴스 집계에 따르면 NH투자증권의 2024년 직원 평균 보수는 1억 6,000만 원이다. 앞 절에서 본 판매관리비 증가를 이끈 것이 임금과 성과보수였다는 사실과 같은 그림이다. 사람이 벌고, 번 돈의 큰 몫이 사람에게 다시 배분된다. 회사에 남는 것은 그 차액이고, 그 차액이 사옥 매입과 임대료를 치른다.
정비공업사 사장의 눈으로 보면 이 숫자들은 공임의 극한값이다. 정비도 사람의 시간을 파는 업이다. 다른 것은 시간당 단가와,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의 부피다. 이 차이가 어디서 오고 자영업 쪽에서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마지막 절에서 돌아온다. 그 전에 이 구조의 끝까지 가본다. 사람조차 별로 필요 없는 회사가 있다.
극단에는 지주회사가 있다
자산 없이 버는 구조의 끝은 지주회사다. ㈜LG의 2024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별도 기준 영업수익 9,316억 원의 구성은 세 줄로 끝난다.
| 수익원 | 비중 |
|---|---|
| 계열사 배당금 | 46.4% |
| 상표권 사용료 | 38.2% |
| 임대 수익 | 15.4% |
물건을 만들어 판 매출이 한 줄도 없다. 자회사 지분에서 배당을 받고, LG라는 상표를 계열사가 쓰는 값을 받고, 가진 부동산을 빌려준다. 로펌과 증권사가 사람으로 버는 회사라면, 지주회사는 지분과 계약으로 버는 회사다. 본사라는 곳의 실체가 여기서 드러난다. 본사는 물건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자본을 배분하고 계약을 관리하는 기계다.
세 줄 중 가운데 줄이 특히 눈에 띈다. 한국세정신문 집계에 따르면 대기업집단이 계열사로부터 받는 상표권 사용료는 2023년 약 2조 원대에 이른다. 간판 두어 글자가 해마다 2조 원의 현금흐름을 만든다. 그런데 회사가 스스로 키운 브랜드는 회계 기준상 재무상태표에 자산으로 잡히지 않는다. 앞 절에서 본 로펌의 사람과 같은 처지다. 실제로 돈을 버는 것들은 장부 밖에 있고, 장부에는 그것들이 만들어낸 현금만 찍힌다.
1편에서 파크원의 시행사를 회사가 아니라 계약을 모아두는 그릇이라고 불렀다. 지주회사는 그 그릇의 완성형이다. 지분, 상표권 계약, 임대차 계약을 한 법인에 모아두고, 운영은 전부 계열사라는 바깥에 맡긴다. 개발 사업의 그릇은 준공과 함께 비워지지만 지주회사라는 그릇은 배당과 사용료를 해마다 다시 받는다. 서울의 비싼 타워 상층부에 이런 법인들의 본사가 모여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계약을 관리하는 기계에 필요한 것은 공장 부지가 아니라 회의실과 사람 몇백 명이기 때문이다.
임대료가 오차 범위인 회사, 목줄인 가게
이 회사들에게 서울에서 가장 비싼 임대료는 오차 범위 안의 비용이다. 뉴스핌 보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이 파크원 여덟 개 층을 5년간 쓰는 계약 금액은 530억 원, 연 106억 원이다. 2021년 계약 당시 기준이다. 회사의 연 매출과 견주면 0.03~0.06% 수준이 나온다. 기준 연도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어림 계산이지만, 어느 해를 잡아도 매출의 0.1%를 넘지 않는다. 연 106억 원은 절대액으로는 큰돈인데, 이 회사의 손익계산서 안에서는 반올림하면 사라지는 숫자다.
반대편 극단을 놓고 보면 이 숫자의 의미가 선명해진다. 비즈한국 분석에 따르면 스타벅스코리아의 임차료는 2020년 기준 매출의 약 14%였다. 같은 임차인데 한쪽은 매출의 0.05% 안팎이고 한쪽은 14%다. 좋은 자리 자체가 매출을 만드는 업에서 임대료는 원가의 기둥이고, 사람과 면허가 매출을 만드는 업에서 공간은 마진을 거의 건드리지 못한다. 5편에서 본 대로 그런 회사들이 그럼에도 도심에 몰리는 이유는 임대료 절감이 아니라 사람을 뽑고 거래처를 만나는 비용이었다. 임대료가 오차 범위이기 때문에 그 선택이 가능하다.
정비공업사는 이 스펙트럼의 정반대 끝에 있다. 유형자산이 무겁다. 리프트, 도장 부스, 검사 라인, 그리고 그것을 올려둘 땅과 건물이 사업 밑천의 대부분이다. 인당 마진의 상한도 낮다. 사람 손이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차량 대수가 물리적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김앤장의 변호사처럼 자리 하나가 연 13억 원을 만드는 구조가 이 업에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래서 결론이 갈린다. 임대료가 매출의 0.05%인 회사는 좋은 건물을 빌려 쓰는 것이 맞다. 반대로 설비와 공간 자체가 생산수단인 업이 그 자산을 남의 소유 위에 얹어두면, 임대료 인상과 계약 만료가 그대로 생산수단의 리스크가 된다. 글쓴이가 공장을 빌리지 않고 지어서 소유하는 쪽으로 가는 이유가 이것이다. 오피스를 빌리는 회사들의 논리와 공장을 소유하려는 자영업의 논리는 반대 방향인데, 둘 다 같은 원리에서 나온다. 자산의 무게가 소유와 임차를 가른다.
이 구분은 회사 단위에서 끝나지 않는다. 한 사업 안에도 자산이 가벼운 조각과 무거운 조각이 섞여 있다. 정비업이라면 수리 데이터와 견적 노하우, 보험사·제조사와 맺는 계약, 고객 소개망은 자산 없이 사람과 계약으로 도는 조각이고, 도장 부스와 검사 라인은 무거운 조각이다. 가벼운 조각의 마진 구조는 김앤장 쪽에 가깝고, 무거운 조각의 재무는 건물 쪽에 가깝다. 이 둘을 구분해서 보면 다음 투자가 어느 쪽에 쌓여야 하는지, 어느 쪽이 빌려도 되는 것이고 어느 쪽이 소유해야 하는 것인지가 갈라져 보인다. 재무제표에서 자산이 없는 회사들을 읽는 연습은 결국 자기 사업의 두 조각을 갈라 보는 연습이다.
다음 편은 회사가 커지는 돈의 순서다. 이익을 쌓아서 크는 회사와 자본을 조달해서 크는 회사는 다른 시간표로 움직인다. 상장 전까지 적자를 누적하고도 수조 원을 조달한 쿠팡에서 시작한다.
출처
본문의 재무 수치는 각 사 사업보고서와 경제지·법조 전문지 보도에 기대고 있다. 인당 매출·인당 순이익과 부동산 비중은 공시·보도 수치를 단순 나눗셈한 어림값이며, 분자와 분모의 집계 시점이 어긋날 수 있어 본문에 그 한계를 명시했다. 파크원 임차인 구성은 당사자 공시가 아니라 언론 보도를 종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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