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들이 몰리는 건 임대료가 싸서가 아니다
공실률 3.5%의 서울, 물가 두 배 속도로 오르는 임대료. 그 값을 내고 회사들이 사는 것은 면적이 아니라 반경이다
이 글은 《자본의 구조》 시리즈 5편이다. 1편부터 4편까지는 건물을 짓는 돈과 건물값이 매겨지는 산식을 따라갔다. 공급자의 이야기였다. 이번 편부터는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물가보다 두 배 빠르게 오르는 임대료를 내면서도 회사들이 서울 도심을 떠나지 않는 이유, 그 수요의 구조가 이번 편의 주제다.
비어 있는 사무실이 없다
세빌스 조사에 따르면 2024년 4분기 서울 A급 오피스 공실률은 3.5%다. 권역별로 도심권(CBD) 4.3%, 강남권(GBD) 3.3%, 여의도권(YBD) 2.3%. 임대차 업계는 이사와 인테리어 공사 사이에 생기는 마찰적 공백, 즉 자연공실을 감안해 공실률 5% 미만을 사실상 만실로 본다. 2024년 더이코노미 보도가 전한 업계 기준이다. 세 권역이 전부 그 밑에 있다. 서울에서 좋은 사무실은 지금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다.
값이 싸서 이런 것이 아니다. 세빌스에 따르면 2025년 3분기 서울 프라임 오피스 임대료는 1년 전보다 4.6% 올랐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 2.1%의 두 배가 넘는 속도다. 공급이 달리면 값이 오르고, 값이 오르면 수요가 빠져나가는 것이 교과서의 순서인데, 서울 오피스 시장에서는 값이 물가의 두 배로 올라도 수요가 빠지지 않는다. 만실인 채로 값이 오르고, 값이 올라도 만실이다.
임대료는 명백히 비용이고, 비용을 줄이는 것은 경영의 기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가장 계산이 빠른 조직들, 증권사와 로펌과 정보기술 기업들이 가장 비싼 자리를 두고 경쟁한다. 서울 어디에나 더 싼 사무실은 있다. 도심에서 지하철 몇 정거장만 벗어나도 같은 면적을 훨씬 싸게 빌릴 수 있고, 그 사실을 이 회사들의 재무 부서가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이전 검토는 번번이 같은 결론으로 돌아온다. 남는다.
이 회사들이 차액을 치르며 사는 것이 무엇인가. 4편에서 임대료가 건물값을 만드는 산식을 봤다면, 이번 편은 그 임대료를 만드는 수요의 정체다. 그리고 이 질문은 자영업자에게도 남의 것이 아니다. 목 좋은 자리의 임대료와 권리금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같은 뿌리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답은 130년 전에 이미 정리되어 있다.
무엇이 임대료 차이를 정당화하는가
경제학의 답은 집적의 경제다. 같은 업종과 연관 업종이 한 곳에 모이면 혼자서는 얻을 수 없는 생산성 이득이 생기고, 그 이득의 크기만큼 임대료 차이가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마셜은 1890년 『경제학 원리』에서 산업지구가 유지되는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했다. 숙련 노동자가 모여 있어 기업과 사람이 서로를 쉽게 찾는 노동시장, 그 업에 특화된 재료와 서비스를 대는 전문 공급자, 그리고 같은 업의 지식이 지역 안에서 흘러 다니는 파급이다. 마셜은 세 번째를 두고 업의 비결이 공기 중에 떠다닌다고 썼다. 한 업종이 한 동네에 모이면 그 동네 전체가 그 업을 배우는 장치가 된다는 관찰이다.
뒤랑통(Duranton)과 푸가(Puga)는 2004년 전미경제연구소(NBER) 논문에서 이 관찰을 세 가지 미시 기제로 다시 세웠다. 공유, 매칭, 학습이다. 공유는 혼자서는 감당하지 못할 설비와 서비스와 공급자 기반을 여럿이 나눠 쓰는 것이다. 금융사 백 곳이 모인 곳에는 금융 전문 법무·회계·전산 서비스가 상주할 수 있지만, 한 곳뿐인 동네에는 그 시장이 서지 않는다. 매칭은 기업과 인재, 기업과 거래처가 서로 맞는 상대를 만날 확률과 그 짝의 질이 밀도에 비례해 올라가는 것이다. 구인 기업 열 곳과 구직자 백 명이 한 반경에 있으면 양쪽 모두 더 좋은 짝을 찾는다. 학습은 지식이 대면 접촉을 타고 전달되고 쌓이는 것이다. 글레이저가 『도시의 승리』에서 도시의 본질로 꼽은 것도 이 마지막 항목, 가까이 있는 사람들 사이의 학습이다.
세 기제의 공통점은 전부 거리의 함수라는 점이다. 공유도 매칭도 학습도 반경이 좁을수록 강해지고, 반경이 벌어지면 급격히 약해진다. 그래서 이 이론이 임대료에 대해 말해주는 결론은 하나다. 도심의 비싼 임대료는 바닥 면적의 값이 아니라 반경의 값이다. 그 반경 안에 나의 인재 시장, 나의 거래처, 나의 정보가 있다면 임대료는 접근권의 가격이 된다. 서울의 권역들은 이 추상적인 이론을 각자 눈에 보이는 형태로 실연하고 있다.
여의도, 판교, 광화문이 각자 증명하는 것
서울 오피스 시장에서 권역과 업종의 짝은 통계가 아니라 관행으로 굳어 있다. 임대차 시장은 관행상 도심권을 대기업 본사와 로펌의 권역으로, 여의도권을 금융의 권역으로, 강남권과 판교를 정보기술의 권역으로 구분해 부른다. 권역별 업종 비중을 집계한 정량 통계는 확인하지 못했다. 대신 개별 사례들이 이 구분을 유지하는 힘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여의도의 힘은 기관과의 거리다.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한국예탁결제원, 금융투자협회가 전부 도보권 안에 있다. 2024년 메트로서울 보도에 따르면 여의도로 돌아오는 금융사들은 이 기관 근접성을 복귀 이유로 직접 꼽는다. 유안타증권은 2024년 4월 20년 만에 여의도로 복귀했다. 감독기관에 서류를 내고, 거래소와 협회 일정에 사람을 보내고, 동종 업계와 점심을 먹는 일이 전부 걸어서 해결되는 반경. 금융업의 매칭과 학습은 이 반경 안에서 돈다. 사무실을 옮긴다는 것은 이 회로에서 빠진다는 뜻이고, 그 비용이 임대료 차액보다 크다고 회사들이 판단한 것이다.
판교의 힘은 노동시장의 공유다. 경기도 조사에 따르면 판교테크노밸리 입주기업은 2024년 기준 1,803개이고 그중 65%가 정보기술 업종이다. 총매출은 2022년 실적 기준 167조 7,000억 원, 근무자는 2023년 조사 기준 약 7만 8,000명이다. 개발자에게 판교 안의 이직은 통근이 바뀌지 않는 이직이고, 기업에게는 걸어서 닿는 반경 안에 국내 최대급 개발 인력 시장이 있다는 뜻이다. 이 매칭의 값은 임대료에 그대로 나타났다. 2026년 7월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판교 초대형 빌딩의 환산임대료(NOC)는 3.3㎡당 30만 8,000원으로 강남 중대형 빌딩의 28만 9,000원을 넘어섰다. 환산임대료는 산정 기준이 기관마다 달라 절대 수준의 비교에는 주의가 필요하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서울 바깥의 업무지구가 강남 수준의 값을 받는다. 회사들은 판교라는 반경에 그 값을 치르고 있다.
광화문의 힘은 고객과의 거리다. 2018년 인베스트조선 보도에 따르면 대형 로펌이 도심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대기업 본사 고객과 정부 부처에 대한 근접이다. 자문과 소송의 상대방, 즉 일감의 원천이 반경 안에 있다. 이 수요의 가치는 건물주 쪽 계산에서도 확인된다. 2025년 한국경제TV 보도에 따르면 법무법인 세종은 광화문 디타워에 입주하면서 연 5개월의 렌트프리, 즉 무상 임대 기간을 제시받았다. 건물의 격을 만들어주는 앵커 테넌트에게는 건물주가 먼저 값을 깎아 준다. 가장 비싼 권역 안에서도 수요의 질에 따라 값이 다시 갈리는 것이다.
세 권역이 공통으로 보여주는 것은 하나다. 회사들이 임대차 계약으로 산 것은 면적이 아니라 각자의 반경이다. 여의도는 감독기관의 반경, 판교는 개발자 노동시장의 반경, 광화문은 고객과 부처의 반경. 그 반경이 만들어내는 이득이 임대료 차액을 넘는 동안 공실은 생기지 않는다. 뒤집어 말하면 권역의 값은 건물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웃이 만든다. 같은 사양의 건물이라도 그 이웃들 사이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다른 값이 매겨진다.
같은 임대료가 누구에겐 입장료고 누구에겐 원가다
임대료가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놓고 보면, 오피스 임차와 상가 임차는 같은 임대차 계약으로 전혀 다른 상품을 사고 있다.
2021년 뉴스핌 보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파크원 타워1의 8개 층을 5년간 530억 원, 연 106억 원 규모로 임차했다. 연 106억 원은 큰돈이지만 이 회사의 연 매출에 견주면 0.05% 안팎이다. 반대편 극단에 리테일이 있다. 2020년 비즈한국 분석에 따르면 스타벅스코리아의 임차료는 매출의 약 14%였다. 같은 임대료라는 항목이 한쪽 손익계산서에서는 반올림 오차 수준이고, 다른 쪽에서는 손익을 가르는 원가다.
비중이 다르면 임대료의 역할이 다르다. 스타벅스에게 자릿세는 매출을 만드는 원가다. 목 좋은 자리가 유동인구를 데려오고 유동인구가 곧 매출이 되므로, 임대료는 원두와 같은 줄에 서는 투입물이다. 매출의 14%를 차지하는 항목은 점포 하나하나의 입지 판단이 사업의 성패를 결정한다. LG에너지솔루션의 106억 원은 매출을 직접 만들지 않는다. 그 돈이 사는 것은 채용 시장에서의 위치, 금융과 정보의 반경, 그리고 여의도 초고층에 본사를 둔 회사라는 신용 신호다. 앞 장의 언어로 말하면 인재와 정보와 신용에 대한 접근권의 입장료다. 매출 대비 0.05%짜리 항목은 값이 두 배가 되어도 의사결정을 바꾸지 못한다. 오피스 임대료가 물가의 두 배 속도로 올라도 수요가 빠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수요 구조는 시리즈 앞 편들에서 본 공급자의 계산과 맞물린다. 파크원에 들어온 회사들은 완공 전에 건물의 절반을 사거나 빌리기로 약정했고, 그 확정 수요가 2조 1,000억 원의 대출을 움직였다. 대주단이 믿은 것은 건물이 아니라 그 건물에 들어오겠다는 회사들의 약속이었다. 4편의 산식대로 임대료가 건물값을 만든다면, 그 임대료를 지탱하는 것은 이 입장료 성격의 수요다. 매출의 0.05%를 내고 반경을 사는 회사들이 줄을 서 있는 한, 공실률 3.5%와 물가 두 배의 임대료 상승은 이상 현상이 아니라 균형에 가깝다.
정비업의 집적은 도심에 없다
자영업에도 집적의 세 기제는 그대로 작동하는데, 업종마다 그것이 일어나는 장소가 다르다. 정비업의 집적은 도심 오피스가 아니라 산업단지와 보험사의 발주망에서 일어난다.
정비공업사와 검사장을 운영하는 글쓴이의 자리에서 보면 이렇다. 공업사가 산업단지에 모이는 이유는 판교의 개발자 시장과 같은 구조다. 부품 유통, 외주 가공, 숙련 기술자의 이동이 단지 반경 안에서 돌고, 혼자서는 유지하기 어려운 설비와 거래처 기반을 단지가 나눠 쓰게 해준다. 그리고 정비업 매출의 큰 몫인 보험수리는 유동인구가 아니라 보험사의 사고차 배정에서 나온다. 고객이 간판을 보고 걸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사고가 나면 보험사와 제휴망이 차를 보낸다. 공업사의 입지 가치는 지도 위의 좌표보다 이 발주망 안에서의 자리가 결정한다. 오피스 회사들이 임대료로 반경 접근권을 산다면, 공업사는 협력 계약과 네트워크로 발주망 접근권을 산다. 형태만 다를 뿐 같은 매칭의 값이다.
여기서 자영업 입지 분석의 일반형이 나온다. 입지 분석은 평당가가 싼 곳을 찾는 일이 아니라, 반경 안에서 내가 유일해지는 매칭을 찾는 일이다. 카페라면 그 골목의 유동인구 가운데 나에게만 오는 수요가 있는지, 공업사라면 그 권역의 발주망에서 나만 채울 수 있는 자리가 있는지를 먼저 계산하고, 임대료는 그 매칭이 정당화하는 만큼만 의미를 갖는다. 매칭 없는 싼 자리는 싼 것이 아니라 값이 없는 것이고, 매칭이 확실한 비싼 자리는 원가가 아니라 입장료로 계산해야 한다. 글쓴이가 광명시흥으로 공장 이전을 준비하며 하는 계산도 이것이다. 평당가가 아니라, 그 자리의 배후 수요와 제조사·보험사 발주망 안에서 유일해질 수 있는가. 이 계산은 9편에서 시리즈의 틀 전체를 걸고 다시 편다.
건물의 돈에서 시작한 시리즈가 이제 절반을 넘었다. 건물은 계약으로 지어졌고, 값은 임대료가 만들었고, 그 임대료는 반경을 사려는 회사들이 지탱한다. 남은 질문은 그 회사들 자신이다.
다음 편은 건물 안 회사들의 장부다. 좋은 반경에 자리 잡은 회사들, 김앤장과 증권사와 지주회사의 재무제표를 펴서 이들이 실제로 무엇으로 버는지 본다. 건물 이야기가 회사 이야기로 바뀌는 지점이다.
출처
본문의 공실률·임대료 수치는 부동산 자문사 조사와 경제지 보도, 경기도 공식 조사에 기대고 있다. 환산임대료(NOC)는 산정 기준이 기관마다 달라 절대 수준의 비교에 한계가 있고, 권역별 업종 비중은 정량 통계를 확보하지 못해 임대차 시장의 관행상 구분으로만 서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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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실률·임대료
- 서울 A급 오피스 공실률 3.5%, 사실상 만실 — 머니투데이(세빌스 조사) · 2025-01
- 자연공실 감안 시 공실률 5% 미만은 만실, 서울 오피스 시장 분석 — 더이코노미 · 2024-02
- 서울 프라임 오피스 2025년 3분기 보고서, 임대료 상승률 4.6% — 세빌스코리아 · 2025
집적의 경제학
- 마셜, 『경제학 원리』 · 1890
- 도시 집적경제의 미시 기제(공유·매칭·학습) — 전미경제연구소(NBER) 워킹페이퍼 w9931, 뒤랑통·푸가 · 2004
- 글레이저, 『도시의 승리』 · 2011
권역 사례
- 여의도로 돌아오는 금융사들, 유관기관 근접성 — 메트로서울 · 2024-04
- 판교테크노밸리 입주기업 총매출 167조 7,000억 원 — 경향신문(경기도 조사) · 20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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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료 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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