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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자본
재무·자본 · 자본의 구조 · 1편 / 9편

여의도 파크원은 완공되기 전에 이미 팔려 있었다

땅은 사지 않았고, 돈은 계약 뒤에 왔다. 2조 6,000억 원 개발의 자금 설계도

홍정현·2026.08.11
12분 읽기

이 글은 《자본의 구조》 시리즈 1편이다. 강남과 여의도의 대형 건물은 어떤 돈으로 지어지는가, 그 안에 들어찬 회사들은 무슨 구조로 돈을 버는가, 그리고 회사는 무엇으로 커지는가. 이 세 질문을 아홉 편에 걸쳐 추적한다. 출발점은 여의도에서 가장 높은 건물 하나다.

여의도에서 가장 비싼 질문

여의도역에서 내려 북쪽으로 걸으면 빨간 기둥을 두른 초고층 건물 두 동이 보인다. 파크원이다. 오피스 타워 두 동과 백화점, 호텔로 이루어진 이 단지의 총사업비는 2조 6,000억 원이었다. 서울에서 가장 큰 단일 개발 사업 중 하나이고, 백화점 동에는 더현대서울이 들어와 있다.

이 건물 앞에서 물을 수 있는 질문은 단순하다. 이 돈은 누구 주머니에서 나왔는가. 2조 6,000억 원을 현금으로 쌓아둔 회사가 땅을 사고 공사를 발주했을 것 같지만, 실제 구조는 정반대에 가깝다. 땅은 아무도 사지 않았고, 공사비는 완공 후에 들어올 돈을 담보로 조달됐고, 건물의 절반은 완공되기 전에 이미 임자가 정해져 있었다.

지금 공장 신축과 이전을 준비하는 처지라, 건물이 지어지는 돈의 구조를 남의 일로 볼 수가 없다. 수십억 원짜리 공장과 2조 6,000억 원짜리 오피스 단지는 규모가 천 배 다르지만, 이 시리즈를 관통해 확인하게 될 사실은 두 구조가 같은 식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다른 것은 규모가 아니라 계약의 두께다.

1편은 파크원 한 건을 해부한다. 땅, 시행사, 공사비, 리스크의 순서로 따라간다.

땅 사는 돈은 없었다

파크원 부지 약 4만 6,465㎡의 소유자는 지금도 통일교 재단이다. 재단이 1972년에 취득한 여의도 종교용지인데, 개발을 맡은 시행사는 이 땅을 사는 대신 2005년에 존속기간 99년의 지상권 설정계약을 맺었다. 조건은 두 가지다. 매년 토지 감정가의 5%를 지대로 지급할 것, 그리고 계약이 끝나는 2104년에 건물째 재단에 돌려줄 것. 2014년 법률신문 보도로 정리된 계약 내용이다.

국내 최대급 개발 사업의 첫 단추가 토지 매입 자금 조달이 아니라 미래 지대의 지급 약속이었다는 사실은 이 시리즈 전체의 예고편이기도 하다. 여의도 한복판의 금싸라기 땅은 현금이 아니라 계약으로 확보됐다. 판 큰 개발일수록 돈이 먼저 움직이는 게 아니라 계약이 먼저 움직인다.

땅 주인 입장에서도 계산이 선다. 팔면 한 번 받고 끝나지만, 지상권을 주면 감정가의 5%를 99년간 받고 마지막에는 초고층 건물까지 돌려받는다. 땅을 내준 것이 아니라 땅의 사용권을 장기 채권으로 바꾼 것이다. 소유와 사용이 분리되고, 분리된 사용권 위에 2조 6,000억 원짜리 건물이 올라간다.

이 구조가 공짜는 아니었다. 2010년, 공사가 한창이던 시점에 재단이 지상권 설정 자체가 무효라며 소송을 걸었고 공사는 전면 중단됐다. 분쟁은 대법원이 2014년 7월 지상권 유효를 확정하고서야 끝났다. 계약으로 세운 구조는 계약이 흔들리면 통째로 멈춘다. 이 6년의 공백이 돈의 조건을 어떻게 바꿨는지는 2편에서 다룬다.

시행사는 회사가 아니라 그릇이다

파크원의 사업 주체는 와이이십이프로젝트금융투자, 줄여서 Y22라는 회사다. 이 회사는 파크원 하나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이고, 직원이 상주하며 다른 사업을 벌이는 회사가 아니다. 지상권, 시공 계약, 대출 계약, 임대차 계약이 전부 이 회사 이름으로 묶인다. 회사라기보다 계약을 한 지점에 모아두는 그릇에 가깝다.

그릇의 재무 구조를 보면 개발금융의 생김새가 드러난다. 총사업비 2조 6,000억 원 중 Y22가 자기자본으로 넣은 돈이 5,000억 원, 나머지 2조 1,000억 원은 2016년 12월 NH투자증권이 주선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이다. 농협은행과 농협손해보험 같은 NH 계열사부터 새마을금고, 지방행정공제회까지 34개 기관이 돈을 댔다. 당시 국내 상업용 부동산 개발 사상 최대 규모의 PF였다.

자기자본 5,000억이면 총사업비의 19% 수준이다. 적어 보이지만 한국 기준으로는 오히려 두꺼운 편이다. 2024년 한국개발연구원(KDI) 분석에 따르면 국내 시행사의 자기자본은 총사업비 대비 평균 3.2%에 그친다. 사업비의 97%가 빌린 돈이라는 뜻이다. 미국 33%, 일본 30%와 비교하면 한국의 개발업은 거의 전액을 남의 돈과 남의 신용으로 돌리는 산업이고, 정부가 2024년 11월에 이 비율을 2028년까지 20%로 끌어올리는 로드맵을 발표했을 정도다. 파크원은 그 기준을 10년 앞서 충족하고 있었던 셈이다.

여기서 첫 번째 원리가 나온다. 대형 개발에서 사업 주체의 주머니 사정은 부차적이다. 중요한 것은 그릇 안에 담긴 계약들이 미래의 현금흐름을 얼마나 단단히 고정하고 있는가다. 대주단 34곳이 심사한 것도 Y22라는 회사가 아니라 그 그릇 안의 계약 묶음이었다.

2조 1,000억 원은 무엇을 보고 움직였는가

대주단이 2조 1,000억 원을 빌려준 근거는 시행사의 신용이 아니라 리스크를 나눠 진 계약들이다. 파크원의 계약 구조를 주체별로 펼치면 다음과 같다.

주체떠안은 리스크받은 대가
통일교 재단땅을 99년간 묶어둠토지 감정가 5%의 지대를 99년간, 2104년에 건물째 회수
시행사 Y22자기자본 5,000억 원, 사업 실패 시 전액 손실개발이익 전체
포스코건설책임준공 확약, 미이행 시 2조 1,000억 채무 인수공사비 1조 1,940억 원 전액 지급 보장
대주단 34곳2조 1,000억 대출이자, 그리고 시공사 채무인수라는 안전판
NH투자증권주선 실패 시 인수 부담과 평판주선 수수료, 타워2를 약 9,500억 원에 사옥으로 선매입

표에서 가장 무거운 칸은 포스코건설이다. 2016년 시공 계약에서 포스코건설은 책임준공, 즉 무슨 일이 있어도 기한 내에 건물을 완공하겠다는 확약에 더해, 이를 지키지 못하면 시행사의 PF 채무를 통째로 인수한다는 조건까지 받아들였다. 여기에 오피스 타워1의 상당 면적을 준공 후 3년간 책임 임차하는 조건도 붙었다. 공실 리스크의 일부까지 시공사가 진 것이다.

포스코건설이 왜 이런 조건을 받았는가. 공사비 1조 1,940억 원 때문이다. 6년간 멈춰 있던 현장의 공사를 재개하면서, 시공사는 공사비 전액을 PF 대출금에서 지급받는 보장을 얻는 대신 사업 전체의 신용을 자기 이름으로 보강했다. 대주단이 실제로 믿은 것은 Y22가 아니라 포스코건설의 신용이었고, 포스코건설이 그 신용을 빌려준 대가는 1조 2,000억 원짜리 일감이었다.

NH투자증권의 계산도 같은 식으로 읽힌다. 주선 수수료만 받은 것이 아니라 타워2를 약 9,500억 원에 사들여 자기 사옥으로 쓰기로 했다. 건물의 절반이 완공 전에 이미 팔린 것이고, 이 선매입 약정 자체가 대주단에게는 담보였다. 준공만 되면 최소 9,500억 원이 들어온다는 사실이 계약서에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리스크는 사라지지 않았다. 값이 매겨져 각자에게 배분됐을 뿐이다. 지대 5%는 땅을 묶어두는 값이고, 공사비 보장은 채무인수의 값이고, 이자는 대출의 값이다. 이 배분표가 완성된 순간에 돈이 움직였다. 반대로 배분표가 없던 2010년에는 소송 하나로 6년이 멈췄다. 대형 건물은 철근과 콘크리트가 아니라 이 배분표 위에 서 있다.

수십억 규모로 옮기면 무엇이 남는가

파크원 구조에서 자영업 규모로 그대로 가져올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갈린다.

가져올 수 있는 것은 소유와 사용의 분리다. 땅을 사지 않고 장기 사용권으로 사업을 세우는 방식은 수십억 규모에서도 작동한다. 산업용지의 장기 임차, 지상권 설정, 공공 부지의 조건부 분양이 전부 같은 계열이다. 토지 매입 대금이 통째로 빠지면 같은 자기자본으로 시설에 더 투자할 수 있다. 대신 파크원의 소송 6년이 보여주듯, 사용권 계약의 법적 완결성이 사업 전체의 목줄이 된다는 조건도 함께 온다.

가져올 수 없는 것은 채무인수다. 파크원에서 대주단을 안심시킨 것은 포스코건설이라는 신용 보강자였다. 자영업 규모의 공장 신축에는 그 역할을 해줄 시공사가 없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 대표 개인의 연대보증이다. 구조의 자리는 같은데, 값을 받고 리스크를 진 포스코건설과 달리 개인 연대보증은 아무 대가 없이 리스크를 떠안는다. 같은 자리를 신용보증기금이나 기술보증기금의 보증으로 채우면 보증료라는 값을 내고 리스크를 기관에 넘기는, 파크원에 가까운 설계가 된다. 이 차이는 3편과 9편에서 다시 다룬다.

그리고 하나 더. 파크원의 돈은 선매입과 책임임차, 즉 완공 전에 확정된 수요를 보고 움직였다. 공장으로 옮기면 이 자리는 완공 전에 확보한 일감이다. 제조사 인증 계약, 보험사 협력 계약처럼 준공과 동시에 매출이 도는 구조를 계약으로 먼저 만들어두는 것이, 규모와 무관하게 조달의 조건을 바꾼다.

시리즈가 갈 길

이 시리즈는 파크원에서 시작해 건물의 돈, 건물 안 회사의 돈, 회사가 커지는 돈까지 내려간다.

다루는 것
2편공사비의 조달. 브릿지론과 본PF, 그리고 레고랜드가 보여준 신용의 사슬
3편리스크의 가격. 책임준공 확약과 신탁이 손실로 돌아온 2024년
4편건물값의 산식. 임대료와 자본환원율, IFC 딜이 무너진 이유
5편집적. 회사들이 비싼 도심을 떠나지 않는 이유
6편입주 회사의 재무제표. 자산 없이 버는 회사들
7편성장의 돈. 이익 유보와 자본 조달, 쿠팡의 순서
8편성장의 조건. 투하자본수익률이 조달비용을 이기는가
9편적용. 광명시흥 신공장을 이 틀로 해부한다

건물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건물 이야기가 아니다. 미래의 현금흐름을 오늘의 자본으로 바꾸는 능력, 즉 신용이 만들어지고 배분되고 값이 매겨지는 구조를 따라가는 이야기다. 그 구조를 알면 2조 6,000억짜리 판과 수십억짜리 판이 같은 식으로 읽힌다.

다음 편은 공사비다. 6년 멈췄던 파크원 공사가 재개될 수 있었던 돈의 조건 변화에서 시작해, 브릿지론과 본PF의 구조, 그리고 2022년 가을 채권시장을 얼려버린 레고랜드까지 간다.

출처

본문의 계약·금액 수치는 법조 전문지와 경제지 보도, 금융당국·국책연구기관 발표에 기대고 있다. 파크원의 개별 계약 조건(지대율, 채무인수, 선매입가)은 당사자 공시가 아니라 언론 보도 기준이므로 세부 조건에는 보도 시점과 실제 계약 사이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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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크원 계약 구조

시행사 자기자본 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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