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회사는 이익으로 크지 않는다
이익을 모아 크는 속도에는 산식으로 정해진 상한이 있다. 쿠팡은 완전자본잠식 상태로 5조 원을 조달했다
이 글은 《자본의 구조》 시리즈 7편이다. 앞의 여섯 편이 건물이 지어지는 돈과 건물 안 회사들의 손익을 따라왔다면, 여기서부터는 회사가 커지는 돈을 본다. 이익을 모아 크는 속도의 상한에서 시작해, 그 상한을 넘은 회사가 쓴 창구와 그 창구 밖에 서 있는 320만 자영업자까지 간다.
이익을 모아 크는 속도에는 상한이 있다
회사가 번 이익만으로 클 수 있는 속도는 산식으로 정해져 있다. 재무학이 지속가능성장률이라고 부르는 값이다. 외부에서 자본을 새로 받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회사가 유지할 수 있는 성장 속도는 자기자본이익률(ROE)에 유보율을 곱한 값에 수렴한다. 유보율은 이익 가운데 배당으로 내보내지 않고 회사에 남기는 비율이다. 남긴 이익이 자기자본을 불리고, 불어난 자기자본이 이듬해 같은 수익률로 돌아야 성장이 이어진다는 단순한 구조다.
숫자를 넣으면 상한의 높이가 드러난다. ROE 7%인 회사가 이익의 70%를 남기면 자기자본은 연 4.9%씩 는다. 이 속도로 10년을 가면 1.6배다. 짜게 잡은 가정이 아니다. 금융위원회의 2024년 밸류업 자료에 따르면 한국 상장사의 ROE는 2014~2023년 평균 8.0%였다. 평균적인 한국 회사가 이익을 착실히 유보해서 갈 수 있는 곳은 10년 뒤에도 지금의 두 배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큰 회사들의 실제 성장 곡선은 이 산식을 아무렇지 않게 넘는다. 매출이 10년에 열 배가 되는 회사가 있고, 적자를 내면서 몸집을 불리는 회사가 있다. 유보이익만으로는 수학적으로 불가능한 속도다. 그 간극을 메운 돈이 어디서 왔는가. 이것이 이번 편의 질문이다.
앞의 여섯 편이 건물을 지은 돈과 건물 안 회사들의 손익 구조를 따라왔다면, 여기서부터는 회사를 키운 돈을 따라간다. 산식이 무력해 보이는 가장 극단적인 사례부터 본다.
적자 회사에 누가 왜 5조 원을 주는가
투자자는 지나간 손익계산서가 아니라 앞으로의 현금흐름을 산다. 쿠팡의 조달 이력이 이 문장의 증명이다. 2010년에 창업한 이 회사는 이익을 유보해서 큰 것이 아니라, 이익이 나기 전에 자본을 먼저 받았다.
돈이 들어온 순서를 보면 통상의 성장 공식이 뒤집혀 있다. 딜사이트 정리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2015년 쿠팡에 10억 달러를 투자했고, 2018년에는 비전펀드를 통해 20억 달러를 더 넣었다. 합쳐서 30억 달러다. 이 기간 내내 쿠팡은 적자였다. 상장 직전에는 누적적자가 납입된 자본을 다 갉아먹어 자기자본이 마이너스인 완전자본잠식 상태였고, 누적적자 규모는 약 4조 5,000억 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법인 구분이 필요하다. 언론 보도에서는 상장 주체인 미국 법인 쿠팡Inc의 수치와 한국 사업 법인 쿠팡㈜의 결손금이 자주 섞여 인용된다. 두 장부는 집계 범위가 다르므로 같은 축에 놓고 비교하면 안 된다. 위의 누적적자는 상장 주체인 쿠팡Inc 기준의 추정치다.
자본잠식 상태의 회사가 2021년 3월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하며 신주를 팔아 45억 5,000만 달러, 당시 환율로 약 5조 1,678억 원을 조달했다(내일신문). 그리고 첫 연간 영업흑자는 그로부터 2년 뒤에 왔다. 2023년 영업이익 6,174억 원, 창사 14년 만이다.
순서를 다시 늘어놓으면 이렇다. 자본이 먼저 왔고, 성장이 그다음이었고, 이익은 마지막이었다. 이익은 성장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였다. 1편에서 본 파크원이 완공 전에 팔려 있었던 것과 같은 문법이다. 건물이 서기 전에 선매입 계약이 돈을 불러왔듯, 이익이 나기 전에 미래 현금흐름에 대한 해석이 자본을 불러왔다.
그 해석의 내용이 이 절 제목의 답이다. 투자자들이 산 것은 쿠팡의 손익계산서가 아니라, 물류망과 시장 점유가 굳어진 뒤에 나올 현금흐름에 대한 지배력이었다. 14년의 적자는 그 지배력을 만드는 선투자로 읽혔고, 그 해석에 돈을 건 투자자가 있었기에 자본이 이익보다 먼저 도착했다. 지속가능성장률 산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속도가 이렇게 나온다. 산식은 틀리지 않았다. 산식의 전제인 "외부 자본 없이"가 무너졌을 뿐이다.
물론 이 문법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30억 달러를 받으려면 30억 달러짜리 해석을 검증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 검증이 일어나는 창구가 자본시장이다.
한 해 290조 원이 지나가는 창구가 있다
한국 기업이 주식과 회사채로 직접 조달한 돈은 2023년 한 해 245조 6,682억 원이다(금융감독원). 주식이 10조 8,569억 원, 회사채가 234조 8,113억 원으로, 대부분이 회사채다. 이 창구는 계속 커져서 2025년에는 289조 9,576억 원에 이르렀다. 기업의 일상적인 조달 창구는 극적인 유상증자가 아니라 채권시장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창구마다 돈의 가격이 다르다. 2024년 기준으로 늘어놓으면 사다리가 보인다.
| 조달 수단 | 비용 | 기준 |
|---|---|---|
| 회사채 AA- 3년물 | 연 약 3.3% | 2024년 말, 국고채 금리 2.597%에 가산금리 0.68%포인트를 더해 계산 |
| 은행 대출(신규 취급 평균) | 연 4.64% | 2024년 12월, 한국은행 |
| 주식(자본비용) | 연 8~10%대 수준 | 자본시장연구원 2025년 추정 |
두 가지가 통념과 어긋난다. 첫째, 신용이 검증된 회사는 은행보다 시장에서 더 싸게 빌린다. 우량 회사채 금리가 은행 대출 평균보다 1%포인트 이상 낮다. 은행이라는 중개자를 거치지 않고 투자자에게 직접 가면 중개의 값이 빠지기 때문이고, 그 직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신용평가와 공시다. 둘째, 주식은 이자도 만기도 없지만 가장 비싼 돈이다. 주주는 원리금 대신 배당과 주가 상승으로 갚아야 하고, 그 요구수익률이 연 8~10%대에 이른다. 쿠팡이 상장으로 받은 5조 원은 공짜가 아니라 가장 비싼 값의 돈이었다. 그런데도 그 돈을 쓴 이유는 앞 절에 있다. 만기가 없는 돈만이 14년짜리 적자를 견딜 수 있다.
이 창구에는 입장권이 있다. 회사채를 찍으려면 신용평가등급이 있어야 하고, 등급을 받으려면 감사받은 재무제표가 있어야 한다. 주식을 공모하려면 상장 심사를 통과할 지배구조와 공시 체계가 있어야 한다. 형식은 다르지만 공통분모는 하나다. 남이 검증할 수 있는 미래 현금흐름. 창구의 문턱은 회사의 크기 그 자체가 아니라, 장부를 열어 남의 검증을 받을 수 있는가에 있다. 크기는 그 검증을 통과한 결과에 가깝다.
창구 밖에 320만 명이 있다
자영업자의 조달은 사실상 대출 한 칸이다. 회사채도 유상증자도 자영업 규모에는 열려 있지 않다. 앞 절의 사다리에서 자영업자가 설 수 있는 칸은 은행 창구 하나이고, 그 창구에 선 사람의 수가 웬만한 나라 인구 규모다.
| 항목 | 수치 | 기준 |
|---|---|---|
| 자영업자 대출 잔액 | 1,095조 5,000억 원 | 2026년 1분기,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 |
| 대출 차주 수 | 320만 1,000명 | 같은 자료 |
| 전 금융권 대출 중 비중 | 28.5% | 같은 자료 |
| 개인사업자 신용대출 평균 금리 | 연 5.19% | 2024년 말 |
|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 일반보증 한도 | 동일기업 최고 30억 원 | 신용보증기금 |
수치를 겹쳐 읽으면 창구 안팎의 비대칭이 드러난다. 나라 전체 대출의 28.5%를 쓰는 320만 명의 차주 집단에게 대출 바깥의 조달 수단이 사실상 없다.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의 보증이 은행 문턱을 낮춰주지만, 이것도 대출이라는 같은 칸 안에서 조건을 바꿔주는 장치이지 다른 칸으로 옮겨주는 장치가 아니다. 한도도 동일기업 최고 30억 원에서 끝난다.
돈의 가격 차이보다 무거운 것은 돈의 성질 차이다. 대출은 만기와 원리금 상환 일정이 정해진 돈이다. 사업이 궤도에 오르기 전에 상환이 시작되므로, 대출은 성장보다 먼저 이익을 요구한다. 자본은 반대로 이익보다 먼저 성장을 산다. 쿠팡의 14년 적자를 견뎌줄 대출은 어떤 은행에도 없다. 그 시간을 견딘 것은 만기가 없는 돈, 즉 자본이었다.
그래서 큰 회사와 자영업의 격차는 흔히 말하는 매출 격차 이전에 접근권 격차다. 같은 사업 기회 앞에서 한쪽은 3%대 회사채와 8~10%대 주식 사이에서 돈의 성질을 골라 쓰고, 다른 쪽은 5%대 대출 한 칸에서 만기 안에 답을 내야 한다. 조달의 선택지가 사업의 시간표를 정한다.
다음 칸으로 가는 통로는 장부다
수십억 규모 사업의 조달에도 사다리가 있고, 칸을 옮기는 조건은 매출이 아니라 검증 가능성이다. 자영업에서 출발하는 조달의 칸을 순서대로 놓으면 이렇다.
| 칸 | 돈의 출처 | 심사받는 것 |
|---|---|---|
| 유보이익 | 회사 안 | 없음 |
| 담보대출 | 은행 | 담보물의 처분 가치 |
| 보증부 대출 | 은행과 보증기관 | 재무제표와 상환 능력 |
| 기관 딜 | 기관투자자 | 검증 가능한 미래 현금흐름 |
아래 칸일수록 사업의 미래와 무관한 것을 심사한다. 담보대출의 대주는 사업이 잘될지 보지 않는다. 망했을 때 담보를 얼마에 팔 수 있는지 본다. 위로 올라갈수록 심사 대상이 과거의 물건에서 미래의 현금흐름으로 옮겨 가고, 마지막 칸에 이르면 앞 절의 자본시장과 같은 질문이 나온다. 이 사업의 미래 현금흐름을 남이 검증할 수 있는가.
그래서 다음 칸으로 가는 통로는 하나로 좁혀진다. 검증 가능한 현금흐름의 문서화다. 개인 지갑과 섞이지 않은 분리 회계, 감사를 받을 수 있는 수준의 장부, 계약서로 고정된 매출. 매출을 더 올리는 일이 아니라 이미 있는 매출을 남이 믿을 수 있는 형태로 바꾸는 일이다. 자영업 장부의 상당 부분은 사장 본인만 해석할 수 있는 상태로 남아 있고, 그 상태로는 얼마를 벌든 아래 칸을 벗어나지 못한다. 은행이 개인 신용과 담보만 보는 것은 은행이 야박해서가 아니라 그것 말고는 검증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 원리는 시리즈 1편에서 이미 한 번 나왔다. 파크원의 대주단 34곳이 심사한 것은 시행사라는 회사가 아니라 그릇 안에 담긴 계약 묶음이었다. 2조 원대 개발금융과 수십억 규모 공장 조달의 공통 원리가 이것이다. 돈은 회사를 보고 오지 않는다. 문서로 고정되어 남이 검증할 수 있게 된 미래를 보고 온다. 글쓴이가 준비하는 신공장의 조달 설계도 이 사다리 위에 얹혀 있고, 그 해부는 9편에서 한다.
다만 조달은 성장의 절반이다. 돈을 싸게 당겨 오는 능력과 그 돈으로 조달비용 이상을 벌어내는 능력은 다른 문제이고, 후자가 무너지면 싸게 당겨 온 돈이 회사를 무너뜨린다.
다음 편은 성장의 조건이다. 조달한 돈으로 굴린 사업의 투하자본수익률이 조달비용을 이기는가. 이 부등호 하나가 회사를 키우기도 하고, 대우조선해양과 웅진처럼 무너뜨리기도 한다.
출처
본문의 수치는 금융당국·한국은행 통계와 경제지 보도에 기대고 있다. 쿠팡의 상장 전 누적적자는 상장 주체인 미국 법인 쿠팡Inc 기준의 추정치로, 한국 법인 쿠팡㈜의 결손금과 집계 범위가 다르다. 주식 자본비용은 시장에서 직접 관측되지 않는 값이므로 연구기관 추정 범위로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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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성장률
- 지속가능성장률 산식(ROE×유보율) — Corporate Finance Institute
-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한국 상장사 ROE 2014~2023 평균 8.0% — 삼일PwC(금융위원회 자료 인용) ·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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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프트뱅크의 쿠팡 투자 10억+20억 달러 — 딜사이트
- 쿠팡 뉴욕 상장, 45억 5,000만 달러 조달 — 내일신문 · 20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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