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데이비슨, 죽어가던 회사를 라이더 커뮤니티로 살린 회사
1981년 6월 임원 13명의 회사 인수에서 1983년 1월 HOG 출범까지, 그리고 2014년 정점 이후 다시 흔들리는 지금
이 글은 《뛰어난 기업의 고객관리》 시리즈 17편이다. 13~16편이 접점을 줄이는 답을 가진 제품·인터페이스 캠프였다면, 17편부터는 손님을 회사의 동료로 호명하는 커뮤니티·소속 캠프다. 첫 사례로 할리데이비슨을 보고, 레고와 샤오미·디스코드(18편)가 이어진다. 발행 시점 이후 중요한 사실 변동이 확인되면 추후 업데이트한다.
1983년 1월 1일, 부도 직전이던 회사가 라이더 클럽을 만들다
1983년 1월 1일,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한 모터사이클 회사의 마케팅 부서가 라이더 클럽을 출범시켰다. 이름은 Harley Owners Group, 약자 HOG. 모터사이클 회사가 자기 손으로 자기 라이더 클럽을 만든 것은 산업 최초였다. 이 회사는 불과 두 해 전인 1981년 6월 16일에 부도 직전이었다. 임원 13명이 약 8천만 달러를 빌려 모회사 AMF에서 자기 회사를 사들였다. Citicorp가 자금을 댔고, 25센트 환산가로 회사를 인수했다.
13명의 직원 매수와 1년 반 뒤의 라이더 커뮤니티 출범, 이 두 사건이 하나의 회복기로 묶인다. 할리데이비슨은 1969년 산업 복합기업 AMF에 매각된 뒤 12년간 품질이 무너졌고, 같은 시기 일본 4사인 혼다·야마하·가와사키·스즈키가 미국 시장에 들어오면서 750cc 이상 시장 점유율이 100%에서 15% 미만으로 떨어졌다. AMF 시절의 할리는 "기름 새는 할리(leaky Harley)"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 바닥에서 13명이 회사를 사들였고, 1년 반 뒤 라이더 클럽을 만들었고, 1986년 NYSE에 상장했다.
할리데이비슨은 이 시리즈의 다섯 캠프 중 네 번째, 커뮤니티·소속 캠프의 첫 사례다. 13편 아마존이 접점을 줄이는 답, 14편 애플이 한 접점을 인터페이스로 응축한 답, 15편 코스트코가 손님을 가입자로 정의한 답, 16편 넷플릭스·스포티파이가 알고리즘 자체가 관계라는 답이었다면, 17편 할리데이비슨은 손님을 회사의 동료로 호명하는 답이다. 회사는 손님을 매장의 구매자가 아니라 라이더 클럽의 구성원으로 대했고, 그 구성원들을 회사 운영의 한가운데로 끌어들였다. 이 결정이 부도 직전의 회사를 시장 1위로 되돌린 회복기의 중심에 있다.
1903년 헛간에서 1969년 AMF까지, 단단하던 회사가 무너진 과정
할리데이비슨의 시작은 1903년 위스콘신주 밀워키 데이비드슨 가족의 뒷마당이었다. 21세 윌리엄 S. 할리(William S. Harley)가 엔진 설계도를 그렸고, 동갑내기 친구 아서 데이비드슨(Arthur Davidson)과 그의 형 월터(Walter), 큰형 윌리엄 A. 데이비드슨(William A. Davidson) 셋이 합류했다. 가구장이였던 아서의 아버지가 10×15피트(약 3×4.6미터) 크기의 나무 헛간을 직접 지어 줬다. 그해 모터사이클 3대를 만들었고, 1904년 헛간을 두 배로 늘려 8대, 1906년에는 체스트넛 스트리트(현 주노 애비뉴)에 28×80피트의 첫 공장을 세워 50대를 생산했다. 1907년 9월 Harley-Davidson Motor Company로 정식 법인화됐다.
1909년 첫 양산형 V-twin 엔진(811cc, 7마력, $325)이 나왔다. 첫 모델은 흡기 문제로 27대만 생산하고 전량 회수·폐기됐지만, 1911년 재설계를 거치며 V-twin은 회사의 시그니처 엔진으로 굳어졌다. 1910년 5월 6일부터 Bar and Shield 로고를 쓰기 시작했고, 같은 해 7월 19일 미국 특허청에 상표를 출원했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등록 상표 중 하나가 여기서 시작됐다. 1920년 회사는 세계 최대 모터사이클 제조사가 됐다.
첫 큰 위기는 1929년 대공황이었다. 1929년 21,000대였던 판매량이 1933년 3,703대까지 떨어졌다. 두 번째 변곡점은 1953년에 왔다. 미국의 또 다른 모터사이클 제조사 인디언 모터사이클(Indian Motorcycle Manufacturing Company)이 그해 폐업했고, 이후 50여 년간 할리데이비슨은 미국 유일의 미국 모터사이클 제조사로 남았다. 경쟁자가 사라진 시장은 회사를 단단하게 만들지 않았다. 1969년 회사는 산업 복합기업 AMF(American Machine and Foundry)에 매각됐고, 그때부터 품질이 빠르게 무너졌다.
1970년대 혼다·야마하·가와사키·스즈키가 미국 시장에 들어온 시점과 정확히 맞물려, 할리데이비슨의 750cc 이상 시장 점유율은 100%에서 15% 미만까지 떨어졌다. 회사의 정체성을 만든 V-twin 엔진과 Bar and Shield 로고는 그대로였지만, 그 로고를 단 모터사이클의 품질은 산업 평균보다 한 단계 아래였다. 회사는 자기 손님인 미국 라이더의 신뢰를 잃어 가고 있었다. 이 회사가 자기 발로 회복할 수 있는가. 1981년 직원 매수는 그 질문에서 시작됐다.
할리데이비슨은 부도 직전에서 어떻게 회복했는가
회복은 1981년 6월 16일 임원 13명의 회사 인수에서 시작됐다. 그날 13명의 할리데이비슨 임원이 모회사 AMF에서 회사를 사들였다. 인수가는 약 8천만 달러, 부채를 포함하면 약 8,300만 달러였고, Citicorp가 자금을 댔다. 인수를 주도한 사람은 1928년 매사추세츠 출생의 MIT 출신 엔지니어 본 빌즈(Vaughn Beals)였고, 그 옆에 1903년 공동 창업자 윌리엄 데이비드슨의 손자이자 회사 디자인 책임자인 윌리 G. 데이비드슨(Willie G. Davidson)이 있었다. 13명이 25센트 환산가로 회사를 사들였다는 숫자가 당시 회사의 처지를 그대로 보여 준다.
빌즈는 그 무렵 혼다의 미국 매리스빌(Marysville) 공장을 직접 방문했고, 돌아와 자기 회사의 위기를 이렇게 진단했다.
"The problem was us." 우리가 문제였다.
본 빌즈, 혼다 공장 방문 뒤
위기의 원인이 일본 경쟁사가 아니라 자기들의 운영이라는 진단이다. 여기서 두 가지 결정이 따라 나왔다. 하나는 일본식 적시생산(JIT)과 통계적 공정관리(SPC)의 도입이다. 재고를 쌓아 두지 않고 필요한 만큼 만들고, 공정 불량을 통계로 잡아내는 방식, 즉 자기들이 비웃던 일본 회사의 운영 도구를 그대로 가져와 자기 공장에 깔았다. 다른 하나는 1983년 4월 Reagan 행정부에 700cc 초과 일본·독일 모터사이클의 긴급 수입 제한을 청원한 것이다. Reagan은 1983년 4월 1일 대통령 메모와 4월 15일 Proclamation 5050에 서명해 5년 단계 관세를 부과했다. 해마다 세율이 내려가는 구조였다.
| 연차 | 관세율 | 쿼터 면제 |
|---|---|---|
| 1년 차 (1983) | 45% | 일본 6,000대, 독일 5,000대 |
| 2년 차 (1984) | 35% | 일본 7,000대, 독일 5,000대 |
| 3년 차 (1985) | 20% | 동일 |
| 4년 차 (1986) | 15% | 동일 |
| 5년 차 (1987) | 10% | 동일 |
첫해 45%로 시작해 5년째 10%까지 내려간다. 보호를 한 번에 걷지 않고 회사가 그 사이에 체력을 회복하도록 설계된 일정이다.
이 관세가 회사를 직접 살렸는지에 대해서는 후일 평가가 갈린다. 혼다와 가와사키는 미국 내 조립 공장에서 연간 9만 대 생산분을 관세 없이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실효성에 한계가 있었다는 평가가 있고, JIT·SPC를 깔지 않았다면 관세만으로는 회복하지 못했으리라는 평가도 있다. 분명한 것은 회사가 이 보호막을 5년도 안 돼 자기 발로 벗어났다는 사실이다. 1987년 3월 회사는 자발적으로 관세 해제를 청원했고, 빌즈는 이렇게 말했다.
"We no longer need tariff relief to compete." 더 이상 관세 보호가 없어도 경쟁할 수 있다.
본 빌즈, 1987년 3월 관세 해제 청원
Reagan은 1987년 10월 9일 관세를 해제했다. 5년짜리 관세가 4년 반 만에, 그것도 보호받던 회사의 청원으로 끝났다. 1986년 회사는 NYSE에 상장했다. 그해 매출 약 2억 9,500만 달러, 순이익 약 430만 달러였다. 13명이 8천만 달러로 사들인 회사가 5년 만에 공개 시장에서 값을 평가받는 위치로 돌아왔다.
이 회복기의 한가운데에 HOG가 있었다. 직원 매수와 관세가 회사 안쪽의 운영을 바꾼 결정이었다면, HOG는 회사와 손님의 관계를 바꾼 결정이었다.
할리데이비슨은 라이더 클럽 HOG를 어떻게 만들었는가
1982년 9월, 회사는 마케팅 부서의 젊은 직원 스티브 필(Steve Piehl)에게 임무를 하나 줬다. 3개월 안에 라이더 클럽을 만들어 출범시켜라. 필이 받은 컨셉은 미국 자동차 협회(AAA)의 모터사이클 버전이었다. 정비 출장 서비스, 도난 보상, 미국 전역 딜러 목록이 담긴 투어링 핸드북, 핀과 패치와 카드가 든 멤버십 팩. 손님에게 자동차 협회 같은 서비스 조직을 만들어 주자는 구상이었다.
필 본인이 처음에는 가볍게 여긴 요소가 하나 있었다. 사회적 요소, 라이더들이 모여서 같이 타는 시간이었다. 바로 그 요소가 HOG의 본체가 됐다. 자동차 협회 모델이 정비와 보험에 머무는 것과 달리, 라이더 클럽에서는 라이더들이 함께 달리는 시간 자체가 회사와의 관계가 됐다. 손님을 매장의 구매자로 두지 않고 클럽의 구성원으로 두자, 도구의 성격이 서비스 조직에서 커뮤니티로 넘어갔다.
1983년 1월 1일 HOG가 정식 출범했다. CEO 본 빌즈가 직접 발표했고, HOG를 "가장 충성스러운 손님과 회사의 브랜드·라이프스타일을 풀뿌리로 다시 연결하는 조직"이라고 소개했다. 첫 이벤트는 1983년 콜로라도 그릴리(Greeley)·브렉큰리지(Breckenridge)·콜로라도 스프링스 일대를 도는 3일짜리 매직 마운틴 투어(Magic Mountain Tour)였다. 250명이 모였다.
가입 모델의 설계도 방향이 일관됐다. 할리 신차 구입자에게 1년 무료 가입권을 줬다. 첫해는 회사가 비용을 부담하고, 둘째 해부터 라이더 본인이 회비를 낸다. 신차 구매자를 자동으로 클럽 구성원으로 만들고, 1년 동안 클럽 생활에 익숙해진 라이더는 둘째 해부터 자기 돈을 내고 남을 확률이 높다는 계산이었다. 출범 첫해 말 미국·캐나다 회원이 33,000명이 됐다. 1985년 미국 49개 지역 챕터, 회원 60,000명. 1991년 영국 첼튼햄(Cheltenham)에서 첫 유럽 HOG Rally가 열리며 국제화됐다. 2006년 회원 100만 명을 돌파했다.
이때 회사는 100만 번째 회원을 따로 호명하지 않고 사내 매거진 Hog Tales 5·6월호 표지를 모든 회원에게 헌정했다. 한 명을 영웅으로 만드는 대신 100만 명 전체를 주인공으로 세운 처리였다. 현재 1,400개 이상의 챕터, 100만 명 이상의 회원으로 세계 최대 공장 후원 모터사이클 클럽으로 남아 있다.
HOG가 마케팅 도구를 넘어 회사 운영의 중심에 들어갔다는 사실은 수치로 확인된다. HOG 회원은 HOG에 가입하지 않은 할리 소유주보다 회사의 머천다이즈와 이벤트에 약 30% 더 많은 금액을 쓴다. 라이더를 동료로 호명하는 클럽이 곧 회사 매출 구조 안에 들어와 있다는 뜻이다. 챕터 운영 구조도 이 방향과 일치한다. 모든 챕터는 딜러 한 곳을 후원자로 두어야 하고, 후원 딜러가 없으면 챕터가 존재할 수 없다. 손님과의 관계를 본사 마케팅 부서가 아니라 매장 단위에서 운영한다는 설계이고, 이 설계 아래에서 매장은 판매처인 동시에 라이더 커뮤니티의 거점이 된다.

미국의 야외 랠리 풍경. 연출된 장면이다 (AI 생성 이미지)
회원 제도에도 특이점이 있다. Full Member는 할리 소유가 필수이고, Associate Member는 Full Member의 후원으로 가입한다. 라이더 한 명이 자기 친구를 데려와 회원으로 만드는 경로가 제도 안에 박혀 있는 셈이다. 손님 한 명이 회사 영업의 일부가 되는 구조다. 1983년 마케팅 부서 직원 한 명의 3개월 작업이 40여 년간 회사의 뼈대 하나를 지탱해 왔다.
회복기의 두 번째 인물과 2010년대 이후 위기
빌즈의 다음 세대는 리처드 티얼링크(Richard Teerlink)였다. 1981년 LBO 직후 CFO로 합류했고, 1987년 모터사이클 부문 사장·COO를 거쳐 1989년 CEO가 됐다. PBS Frontline 인터뷰에서 그는 회사의 회복을 이렇게 정리했다.
"The name on the gas tank never changed. The only thing that changed was how we felt about our customers."
연료탱크 위의 회사 이름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바뀐 것은 우리가 손님을 어떻게 느끼는가뿐이었다.
리처드 티얼링크, PBS Frontline 인터뷰
시장 점유율이 23%까지 떨어졌던 회사가 살아남은 이유에 대해서는 다른 인터뷰에서 한 문장을 더 남겼다.
"We don't believe in super heroes at Harley." 우리는 할리에서 영웅을 믿지 않는다.
리처드 티얼링크
영웅 한 명이 회사를 살린 게 아니라, 위기 앞에서 다르게 결정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는 뜻이다. 티얼링크는 빌즈에 대해서도 "지휘자였지만, 결국 다르게 하기로 결정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었다"라고 표현했다. 회사 운영의 첫 결정이 직원에게서 시작된다는 관찰은 9편 사우스웨스트, 10편 시벨, 11편 허브스팟에서 본 것과 같은 결이다.
1990년 출시된 Fat Boy는 회사를 750cc 초과 헤비급 시장 점유율 1위로 되돌린 모델이 됐다. 회사의 SEC 10-K 자료(2004 회계연도)에 따르면 1986년 이래 미국 651cc+ 헤비급 시장 점유율 1위를 매년 유지했고, 2004년 시점 약 49.5%였다. 이 1위는 1990년대를 지나 201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매출 정점은 2014년이었다. Macrotrends 기준 약 62억 달러. 그 후 매년 매출이 줄었다. 2017년 56.5억 달러, 2023년 58.4억 달러, 2024년 51.87억 달러. 2024년 매출은 전년 대비 11%, 글로벌 출하는 17% 줄었다. 2025년 1분기에는 매출 13.29억 달러로 23% 줄었고, 회사는 2025년 가이던스 자체를 철회했다.
본문에 언급된 연도만 표시했다. 자료: Macrotrends, Harley-Davidson IR
하락의 원인은 하나가 아니다. 가장 자주 인용되는 진단은 세대 문제다. 빌즈 시기에 합류한 베이비부머 라이더 세대는 늙어 가는데, 다음 세대가 같은 비율로 들어오지 않는다. HOG의 강점이 베이비부머 라이더의 라이프스타일 위에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 그 세대가 라이딩을 그만두는 시점에 회사 매출이 함께 줄어드는 구조다. 다음 세대를 어떻게 클럽으로 끌어올 것인가. 이것이 회사의 다음 10년 질문이다.
2020년 PUMA 전 CEO 요헨 자이츠(Jochen Zeitz)가 새 CEO로 취임했고, 2021년 2월 2일 5개년 전략 The Hardwire를 발표했다. 핵심 70%(투어링·대형 크루저·트라이크)에 자원을 집중하고, 새 카테고리(어드벤처 투어링)에 20%, 기타에 10%를 배분하는 구조였다. 전기 모터사이클 부문 LiveWire는 분사됐다. 2021년 12월 SPAC 상장 과정에서 가치 17억 7천만 달러로 평가받았고 2022년 NYSE에 상장했다. 그러나 LiveWire는 2024년 한 해 612대를 팔고 9,390만 달러의 영업손실을 냈다. 2025년 1분기 판매는 33대였다. 원래 목표는 2025년까지 53,000대였다.
자이츠는 2025년 4월 은퇴를 발표했다. 매출 정점이 이미 11년 전인 2014년이었다는 사실, LiveWire가 목표 대비 50배 이상의 차이로 미달했다는 사실, 회사가 2025년 가이던스를 철회했다는 사실이 한 시기에 겹쳐 있다. 1981년 13명의 인수로 시작된 회복기는 약 30년을 갔다. 이제 회사는 다른 도구로 다시 회복해야 하는 국면에 있다. HOG는 여전히 작동하지만, HOG만으로는 다음 세대 라이더를 끌어오지 못한다. 한 시기에 회사를 살린 도구가 다음 시기에 회사의 한계가 된다는 것. 17편이 보여 주는 또 하나의 단면이다.
한국에서 할리는 롤렉스처럼 팔린다

한국의 크루저 라이더들. 연출된 장면이다 (AI 생성 이미지)
한국에서 할리데이비슨이 정식으로 팔리기 시작한 것은 1994년이다. 그때까지 한국은 일본·외국 모터사이클의 정식 수입을 막고 있었고, 할리는 서울 중구 퇴계로 일대의 병행 수입 매장에서만 구할 수 있었다. 1999년 기흥그룹이 미국 본사와 정식 계약을 맺고 서울 한남동에 할리데이비슨 코리아(Harley-Davidson of Korea Co., Ltd.)를 설립했다. 같은 해 HOG Korea Chapter도 출범했다. 시장 진출 5년 만에 라이더 커뮤니티가 따라온 것이다. 현재 한국에는 8개 딜러십과 인천공항 부티크 1곳이 있고, 한남동 본사·쇼룸 외에 강남·용인·일산·대구에 A/S 센터와 쇼룸이 있다. HOG Korea 회원은 약 1,000명대로 보고된다. 사회공헌 단체 '할리천사'가 2008년부터 운영되고 있고, 연 2회 열리는 호그 랠리는 국내 최대 규모 바이크 축제 중 하나다.
한국 대형 모터사이클 시장 자체가 좁다. 한국은 OECD 가입국 중 유일하게 모터사이클의 고속도로 통행이 금지된 나라다. 미국의 HOG가 주를 넘는 장거리 투어를 중심으로 굴러가는 클럽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대형 투어링 모터사이클의 사용 가치를 규제가 직접 깎는 한국에서 클럽이 미국만큼 자랄 수 없는 이유는 규제 층위에서 이미 정해져 있는 셈이다. 이 시장에서 대형(750cc 이상) 레저용 모터사이클은 BMW·할리데이비슨·이탈리아 브랜드 같은 외국 회사가 차지하고, 토종 회사 대림·S&T(효성)는 125~250cc 배달·통근용 시장에 서 있다. 두 시장은 거의 겹치지 않는다. 할리데이비슨 코리아 COO 케빈 강은 한 인터뷰에서 한국 라이더를 이렇게 표현했다.
"Having a Harley is like owning a Rolex." 할리를 갖는 것은 롤렉스를 갖는 것과 같다.
케빈 강, 할리데이비슨 코리아 COO
한국에서 할리는 이동 수단이 아니라 시간·자금·여가를 모두 가진 손님의 라이프스타일 소비재로 작동한다. 미국에서 1,400개 챕터에 100만 회원을 가진 클럽과 한국의 1,000명대 클럽은 같은 이름을 달고 있어도 다른 물건이다. 시장의 구조가 커뮤니티라는 운영 도구의 크기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한국 사례가 그대로 보여 준다.
커뮤니티라는 도구의 수명
HOG의 40여 년을 한 표로 접으면 도구의 수명이 보인다.
| 시기 | HOG의 역할 | 회사 상태 |
|---|---|---|
| 1983~1986 | 부도 직전 회사에 남아 있던 마지막 자산, 라이더의 애착을 조직화 | 회복 시작, 1986년 NYSE 상장 |
| 1990~2014 | 신차 구매 → 1년 무료 가입 → 유료 잔류의 자동 경로. 회원이 비회원보다 약 30% 더 소비 | 헤비급 점유율 1위 유지, 2014년 매출 정점 약 62억 달러 |
| 2014~현재 | 베이비부머의 클럽으로 굳어져 다음 세대 유입에 실패 | 매출 연속 감소, 2025년 가이던스 철회 |
표 밖에 전제가 하나 있다. HOG를 만든 회사는 직원이 주인이 된 회사였다. 1981년의 인수는 외부 자본의 구제가 아니라 임원 13명이 빚을 내서 자기 회사를 사들인 거래였고, 그 13명 안에 창업자의 손자가 있었다. 손님을 동료로 호명하는 클럽은, 직원이 먼저 회사를 자기 일로 여기게 된 조직에서 나왔다. 순서가 거꾸로였다면, 그러니까 품질이 무너진 AMF 시절의 조직이 라이더 클럽부터 만들었다면, 그 클럽은 기름 새는 모터사이클에 대한 불만 창구가 됐을 것이다. 가게로 옮겨도 순서는 같다. 직원이 가게 운영에 몫을 갖는 형태, 이익 분배든 재량이든 단골 데이터의 공유든, 그 기반이 깔린 다음에야 단골 모임이 직원에게 붙는다. 사장 혼자 열심인 가게에서 단골 커뮤니티는 사장의 취미로 끝난다.
이 전제 위에서, 한국의 작은 가게로 옮기면 HOG는 단골 모임이다. 단골 모임을 만드는 일 자체는 어렵지 않다. 할리데이비슨 사례에서 배울 것은 만드는 법이 아니라 두 가지 설계다.
하나, 커뮤니티를 사장이 아니라 접점에 붙였다. 모든 챕터에 후원 딜러를 강제한 구조 덕분에 커뮤니티가 커질수록 매장이 같이 컸다. 가게로 옮기면, 단골 모임을 사장 개인의 인맥으로 두지 말고 가게라는 공간과 직원에게 붙여 두라는 뜻이다. 사장이 빠져도 모임이 돌아가야 그 모임이 가게의 자산이다. 사장 개인에게 붙은 단골은 사장이 아프면, 가게를 옮기면, 승계하면 흩어진다.
둘, 도구에는 수명이 있다. HOG는 한 세대를 조직했기 때문에 그 세대와 함께 늙었다. 가게를 살린 단골 모임도 그 단골들과 함께 늙는다. 모임이 가장 잘 돌아갈 때가 다음 세대 손님을 위한 두 번째 모임을 실험할 시점이다. 할리데이비슨은 그 실험(LiveWire, The Hardwire)을 매출이 꺾인 뒤에야 시작했고, 그 비용을 지금 치르고 있다. 목표 53,000대에 실제 판매 612대. 실험이 얼마나 늦었는지를 이 두 숫자가 보여 준다.
다음은 18편, 레고와 샤오미·디스코드다. 커뮤니티·소속 캠프 안에서 서로 다른 답을 가진 세 회사를 본다.
출처
책
- Reid, Peter C. Well Made in America: Lessons from Harley-Davidson on Being the Best. McGraw-Hill, 1990. (Malcolm Forbes 서문, 13명 LBO·턴어라운드 가장 권위 있는 1차 가까운 자료) https://archive.org/details/wellmadeinameric00reid
Harley-Davidson 공식
- Harley-Davidson Archives. "Bar & Shield Story." https://www.harley-davidson.com/us/en/experiences/museum/archives/historicstories/barshield.html
- Harley-Davidson Archives. "Early Years of Harley-Davidson." https://www.harley-davidson.com/us/en/experiences/museum/archives/historicstories/earlyyears.html
- Harley-Davidson HOG Stories. "The Birth of H.O.G." https://hogstories.harley-davidson.com/en-eu/the-birth-of-h-o-g/
- Harley-Davidson IR. "The Hardwire Five-Year Strategic Plan" (2021-02-02). https://investor.harley-davidson.com/news/news-details/2021/Harley-Davidson-Unveils-The-Hardwire-Five-Year-Strategic-Plan-Targets-Profitable-Growth-And-Brand-Desirability/default.aspx
- Harley-Davidson IR. "Q4 and Full Year 2024 Results." https://investor.harley-davidson.com/news/news-details/2025/Harley-Davidson-Delivers-Fourth-Quarter-and-Full-Year-Financial-Results-and-2025-Outlook/default.aspx
- Harley-Davidson IR. "Q1 2025 Financial Results." https://investor.harley-davidson.com/news/news-details/2025/Harley-Davidson-Delivers-First-Quarter-Financial-Results/default.aspx
인터뷰·평전
- PBS Frontline. "Interview with Richard Teerlink, CEO of Harley-Davidson." https://www.pbs.org/wgbh/frontline/wgbh/pages/frontline/america/interviews/teerlink1.html
- Harvard Business School. "Vaughn L. Beals Jr. — 20th Century Leaders Profile." https://www.hbs.edu/leadership/20th-century-leaders/details?profile=vaughn_l_beals_jr
- Harvard Business Review. "Harley's Leadership U-Turn" (Teerlink, 2000-07). https://hbr.org/2000/07/harleys-leadership-u-turn
- Seattle Times. "Vaughn Beals, Harley-Davidson's turnaround driver, dies at 90." https://www.seattletimes.com/nation-world/vaughn-beals-harley-davidsons-turnaround-driver-dies-at-90/
1983 관세
- Cycle World 1983년 6월호. "The Great Tariff Controversy." https://magazine.cycleworld.com/article/1983/6/1/the-great-tariff-controversy
- Wikipedia. "1983 motorcycle tariff." https://en.wikipedia.org/wiki/1983_motorcycle_tariff
- RevZilla. "Motorcycle tariffs and Harley-Davidson: Lessons from the last time." https://www.revzilla.com/common-tread/motorcycle-tariffs-and-harley-davidson
백과·해설
- Wikipedia. "Harley-Davidson." https://en.wikipedia.org/wiki/Harley-Davidson
- Wikipedia. "Harley Owners Group." https://en.wikipedia.org/wiki/Harley_Owners_Group
- Wikipedia. "Vaughn Beals." https://en.wikipedia.org/wiki/Vaughn_Beals
- Wikipedia. "LiveWire (motorcycle)." https://en.wikipedia.org/wiki/LiveWire_(motorcycle)
- Wikipedia. "Indian Motorcycle." https://en.wikipedia.org/wiki/Indian_Motorcycle
- Macrotrends. "Harley-Davidson Revenue 2012-2025." https://www.macrotrends.net/stocks/charts/HOG/harley-davidson/revenue
한국 시장
- Branding in Asia. "The Rise of Harley Davidson in Korea — Same Bike, Slightly Different Lifestyle." https://www.brandinginasia.com/harley-davidson-korea/
- 기흥그룹 공식. "Harley-Davidson of Korea." https://khg.kr/whatwedo/harley/view?i=706
- 할리데이비슨 코리아 공식. https://harley-korea.com/
- 한국경제 (2025-02-04). "고급 취미 중대형 오토바이만 달린다."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5020430801
이 글에서 단정하지 않은 것
- 1990년대 미국 헤비급 점유율이 60%를 넘었다는 서술이 여러 2차 자료에 있으나 1차 자료로 확인하지 못했다. 본문은 SEC 10-K로 확인되는 "1986년 이래 1위 유지"와 "2004년 약 49.5%"까지만 적었다.
- 매출 정점 연도를 2017년으로 적은 자료가 있으나, Macrotrends 연간 매출 기준 정점은 2014년 약 62억 달러다. 본문은 2014년을 썼다.
- HOG 회원 수의 현재 시점 수치는 회사 IR에서 직접 확인하지 못했다. 본문은 "100만 명 이상"으로만 적었다.
- HOG Korea 회원 약 1,000명대는 Branding in Asia 보도 시점 기준이며, 현재 수치는 확인하지 못했다.
- "We don't sell motorcycles, we sell a lifestyle"이라는 유명 문구는 1차 출처를 확인하지 못해 쓰지 않았다. 본문은 빌즈의 HOG 출범 발표 표현(brand and lifestyle)을 썼다.
- Bar & Shield 로고의 디자이너는 할리데이비슨 공식 아카이브에도 "미상"으로 남아 있어 본문에서 추정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