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비는 은행이 아니라 미래가 낸다
6년 멈춘 파크원을 다시 움직인 돈의 조건, 브릿지론과 본PF의 문턱, 레고랜드가 증명한 신용의 값
이 글은 《자본의 구조》 시리즈 2편이다. 1편이 파크원 한 건의 계약 구조를 해부했다면, 2편은 그 계약에 돈이 붙는 순서를 따라간다. 착공 전의 고금리 브릿지론, 문턱을 넘어야 열리는 본PF, 그리고 그 전체를 떠받치는 신용이라는 전제까지. 공사비를 대는 것은 은행의 금고가 아니라 계약으로 고정된 미래의 현금흐름이다.
6년 동안 바뀐 것은 계약뿐이었다
파크원 공사는 2010년 10월에 멈췄고 2016년 11월에야 다시 시작됐다. 그 6년 사이 철골도 땅도 그대로였다. 사업 주체도 같은 회사였다. 바뀐 것은 계약이다.
멈춘 이유는 지상권 소송이다. 땅 주인인 재단이 지상권 설정 자체가 무효라며 소송을 걸었고, 1심과 2심에서 시행사가 이겼는데도 공사는 서 있었다. 대법원이 2014년 7월 10일 재단 패소를 확정하면서 분쟁이 끝났다. 법률신문 보도에 따르면 재판부는 이 지상권 설정이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판결로 법적 불확실성이 사라진 뒤에도 공사는 2년을 더 멈춰 있었다. 법원이 풀어준 것은 땅의 문제였지 돈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초 시공사였던 삼성물산은 2016년 이투데이 보도 기준 수천억 원의 손해를 보고 현장을 떠났다. 새 시공사 포스코건설은 2016년 11월, 기한 내 준공을 확약하는 책임준공에 미이행 시 시행사의 대출 채무를 통째로 인수한다는 조건까지 얹어 들어왔다. 그리고 다음 달 2조 1,000억 원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조성됐다. 파크원의 리스크 배분 구조에서 정리했듯, 대주단 34곳이 심사한 것은 건물이 아니라 이 계약 묶음이었다.
여기서 이번 편의 질문이 나온다. 공사비는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움직이는가. 은행이 건물과 땅을 보고 돈을 빌려주는 것이라면 6년의 공백은 설명되지 않는다. 건물도 땅도 6년 내내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은행이 본 것은 미래의 현금흐름을 고정해 둔 계약이고, 돈은 그 계약이 완성되는 순간에만 움직인다. 이 원리가 제도로 정리된 것이 브릿지론과 본PF라는 두 단계다.
브릿지론과 본PF는 무엇이 다른가
브릿지론은 착공 전에 토지비와 초기 사업비를 대는 만기 6개월~1년의 단기 고금리 대출이고, 본PF는 인허가가 끝나고 시공사의 신용보강이 붙은 뒤 공사비를 대는 대출이다. 2023년 한국금융신문의 정리를 기준으로 두 단계를 놓으면 이렇다.
| 구분 | 브릿지론 | 본PF |
|---|---|---|
| 시점 | 착공 전 | 인허가 완료, 착공 후 |
| 용도 | 토지비·인허가 비용 | 공사비, 브릿지론 대환 |
| 만기 | 6개월~1년 | 공사·분양 일정에 연동 |
| 기대는 것 | 인허가가 날 것이라는 전망 | 분양수입금과 시공사 신용보강 |
| 금리 | 2023년 5월 지방 사업장 12~13% | 2023년 10월 10% 안팎, 2024년 10월 우량 사업장 6%대 |
이름 그대로 다리다. 사업의 실체가 아직 서류뿐인 구간을 건너가는 대출이라 금리가 시장의 공포를 그대로 반영한다. 2021년에 8~9% 수준이던 브릿지론 금리는 2022년 하반기 자금경색 국면에서 법정 최고금리인 20%까지 치솟은 사례가 스트레이트뉴스 보도로 확인된다. 2023년 5월 EBN 보도 기준으로도 지방 사업장 브릿지론은 12~13%, 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차환 금리는 15%대였다.
본PF도 싸지 않았다. 2023년 10월 한국경제 보도에 따르면 대형 건설사가 신용보강을 서도 선순위 금리가 연 10% 안팎이었다. 대우건설이 보강한 사업장이 10.5%에 6,000억 원, 포스코이앤씨가 보강한 사업장이 11%였다. 2024년 10월 대한경제 보도 기준으로야 우량 사업장이 6%대로 내려왔다. 같은 사업장의 돈값이 단계와 시점에 따라 세 배 넘게 벌어지는 시장이다.
문턱은 명확하다. 2025년 인베스트조선의 정리에 따르면 브릿지론이 본PF로 전환되려면 인허가 완료, 책임준공 같은 신용보강을 제공할 시공사 선정, 그리고 분양성 세 가지가 갖춰져야 한다. 상환 구조도 이 문턱에 맞춰 설계된다. 본PF의 상환 재원은 분양수입금이고, 실무에서는 통상 분양대금의 8~9할가량을 상환 전용 계좌로 먼저 돌리는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파크원이 2016년에 넘은 문턱이 정확히 이 세 가지였다. 대법원 판결이 인허가와 권리관계의 불확실성을 지웠고, 포스코건설의 책임준공과 채무인수가 신용보강 자리를 채웠고, NH투자증권의 타워2 선매입이 분양성을 계약으로 증명했다. 셋이 모이자 6년간 없던 2조 1,000억 원이 한 달 만에 나타났다. 돈은 처음부터 있었다. 조건이 없었을 뿐이다.
한국 개발업은 3%의 자기 돈으로 돌아간다
2024년 한국개발연구원(KDI) 분석에 따르면 국내 시행사의 자기자본은 총사업비 대비 평균 3.2%다. 사업비의 97%가 빌린 돈이라는 뜻이다. 2024년 한국경제가 정리한 해외 비교로는 미국 시행사가 33%, 일본이 30%, 호주가 40%를 자기 돈으로 넣는다. 열 배 차이다.
자기자본이 얇으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앞 섹션의 금리표가 그대로 답이 된다. 자기 돈 3%로 시작하는 시행사는 토지비부터 브릿지론으로 조달해야 하고, 12~20%짜리 이자를 무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개발이익은 대주와 시공사 쪽으로 넘어간다. 금리가 낮을 때는 적은 밑천으로 큰 판을 돌리는 지렛대였던 구조가, 금리가 오르면 시행사부터 부러지는 구조로 반전된다. 정부도 이 구조를 문제로 지목했다. 2024년 11월 14일 경제관계장관회의는 시행사 자기자본비율을 2026년 10%, 2027년 15%, 2028년 20%로 끌어올리는 유도 방안을 내놨다.
시장 전체의 숫자는 축소 국면을 가리킨다. 금융위원회 집계 기준 부동산 PF 대출 잔액과 연체율 추이는 다음과 같다.
| 시점 | PF 대출 잔액 | 연체율 |
|---|---|---|
| 2023년 말 | 135조 6,000억 원 | 2.70% |
| 2024년 말 | 128조 1,000억 원 | 3.42% |
| 2025년 9월 말 | 116조 4,000억 원 | 4.24% |
잔액은 2년 새 19조 원 넘게 줄었는데 연체율은 오히려 올랐다. 새 사업에 돈이 붙지 않아 분모가 줄어드는 동안, 이미 꽂혀 있는 부실은 그대로 남아 비율을 끌어올리는 국면이다. 2023년 말 기준 증권사의 PF 연체율은 13.73%로 업권 평균의 다섯 배에 달했다. 참고로 이 135조 계열 수치는 대출 잔액이고, 채무보증과 토지담보대출까지 합친 익스포져는 금융위 집계로 2024년 말 202조 3,000억 원, 2025년 9월 말 177조 9,000억 원으로 따로 잡힌다. 두 숫자는 범위가 다르므로 같은 축에 놓으면 안 된다.
97%를 빌려서 돌아가는 산업이라는 사실은, 이 시장 전체가 결국 하나의 전제 위에 서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빌려준 돈이 약속대로 돌아온다는 믿음이다. 2022년 가을, 그 전제가 실제로 깨지는 실험이 벌어졌다.
신용은 개별 사업의 재료가 아니라 시장의 공공재다
2022년 가을의 레고랜드 사태는 지방자치단체의 보증 하나가 깨졌을 때 전국의 채권시장이 멈출 수 있다는 사실을 실물로 증명했다. 사건의 뼈대는 단순하다. 강원중도개발공사(GJC)는 2020년 특수목적법인(SPC)인 아이원제일차를 통해 2,050억 원 규모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발행했다. BNK투자증권이 주관했고, 강원도가 지급보증을 서면서 이 어음은 최고 신용등급인 A1을 받았다. 퍼블릭뉴스가 정리한 발행 구조다.
여기서 ABCP라는 도구의 생김새를 봐야 사태의 크기가 이해된다. 자본시장연구원의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기초자산인 PF 대출의 만기는 사업장에 따라 1~3년인데, 그 위에 발행되는 ABCP의 만기는 1~3개월이다. 어음이 돌아올 때마다 새 어음을 찍어 갚는 차환 구조이고, 차환이 안 되면 증권사가 약정한 매입확약이 우발채무로 현실화된다. 몇 년짜리 사업을 몇 달짜리 어음으로 잘게 썰어 굴리는 셈이라, 이 구조는 시장이 어음을 계속 받아준다는 전제 없이는 하루도 서 있지 못한다.
전제가 깨진 날짜는 특정된다. 2022년 9월 28일, 강원도는 만기가 돌아온 어음의 채무를 인수하는 대신 GJC의 회생절차를 신청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다음 날 어음은 만기 상환에 실패했고, 신용등급은 A1에서 C로 떨어졌으며, 10월 초 최종 부도 처리됐다. 딜사이트에 따르면 지자체가 보증한 ABCP가 부도난 첫 사례다.
2,050억 원은 부동산 PF 대출 잔액이 135조 원을 넘던 시장의 규모에 견주면 작은 숫자다. 그런데 시장 전체가 얼었다. 이유는 금액이 아니라 전제에 있다. 시장의 모든 보증부 어음 가격에는 "이 등급의 보증은 깨지지 않는다"는 가정이 들어 있었다. 지자체 보증이 부도날 수 있다면 다른 모든 보증도 다시 계산해야 하고, 재계산이 끝날 때까지 어음을 받아주는 손이 사라진다. 차환에 의존하던 전국의 사업장이 동시에 유동성 압박으로 들어갔고, 경색은 부동산 어음을 넘어 채권시장 전반으로 번졌다. 결국 강원도는 2022년 12월 15일 2,050억 원 전액을 상환했다. 한국경제 보도로 확정된 결말이다. 돈이 없어서 멈춘 시장이 아니었다. 약속이 의심받아서 멈춘 시장이었다.
이 사태가 이 시리즈에 놓이는 자리는 명확하다. 신용은 개별 사업이 가져다 쓰는 재료가 아니라 시장 참여자 전원이 공유하는 공공재다. 파크원의 대주단이 포스코건설의 채무인수를 담보로 칠 수 있는 것도, 브릿지론이 본PF로 갈아타지는 것도, 어음이 석 달마다 차환되는 것도 전부 약속은 지켜진다는 공유 전제 위에서다. 한 주체가 그 전제를 흔들면 값은 그 주체 혼자 치르지 않는다. 강원도가 아끼려던 것은 2,050억 원이었다. 결국 그 돈은 그대로 나갔고, 방침 발표에서 전액 상환까지 두 달 반 동안 시장 전체가 값을 나눠 치렀다.
자영업 조달에는 브릿지가 없다
자영업자의 시설 투자에는 브릿지론과 본PF의 구분이 없다. 토지 매입부터 준공까지 시설자금 대출 하나로 간다. 인허가 전이라고 금리가 20%로 뛰고 착공하면 6%대로 내려오는 단계 구조 자체가 없다. 개발업의 조달 사다리에서 가장 비싼 구간을 애초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대신 자영업자가 쥔 패는 반대쪽에 있다. 자기자본 비율이다. 시행사 평균이 총사업비의 3.2%인 시장에서, 총투자 20억 원짜리 공장에 자기 돈 5억 원을 넣는 사장의 비율은 25%다. 정부가 2028년까지 유도하겠다는 20%를 이미 넘고, 미국 시행사 평균에 가까운 수치다. 은행 심사에서 이 숫자는 장식이 아니다. 자기 돈 3%로 판을 벌이다 연체율 4%대를 만든 차주들과 같은 잣대로 심사받을 이유가 없다는 협상의 근거가 된다. 규모가 작다는 사실과 구조가 위험하다는 사실은 다른 이야기이고, 자기자본 비율은 그 차이를 심사역의 언어로 증명하는 숫자다.
본PF의 전환 조건 세 가지도 규모를 줄이면 그대로 시설자금 조달의 채비 목록이 된다. 글쓴이는 공장 신축을 준비하면서 일의 순서를 이 목록대로 배치하고 있다. 인허가 리스크를 먼저 제거한다. 보증기관의 보증으로 개인 연대보증의 자리를 좁힌다. 그리고 준공과 동시에 돌아갈 일감을 계약으로 먼저 확보한다. 파크원에서 NH투자증권의 선매입이 하던 역할을, 공장에서는 준공 전에 맺어둔 제조사 인증과 보험사 협력 계약이 한다. 은행이 대는 것은 결국 미래의 현금흐름이고, 그 미래를 계약서 형태로 만들어 보여주는 쪽이 조달의 조건을 정한다.
공사비는 은행이 낸다고 쓰지만, 은행은 통로다. 내는 것은 미래다. 그 미래를 누가 어떤 계약으로 고정하느냐가 이 시리즈가 계속 따라갈 질문이다.
다음 편은 리스크의 가격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완공하겠다는 책임준공 확약과 그 확약을 대신 서주는 신탁이 어떻게 값이 매겨지는지, 그리고 그 값이 2024년 신탁사들의 손실로 되돌아온 과정을 따라간다.
출처
본문의 금리·잔액·연체율 수치는 금융당국 발표와 경제지 보도, 국책·민간 연구기관 보고서에 기대고 있다. 브릿지론과 본PF의 금리는 공시되는 단일 통계가 아니라 개별 사업장 보도의 집합이므로, 같은 시점에도 사업장 조건에 따라 편차가 크다는 전제로 읽어야 한다. PF 대출 잔액(135조 계열)과 익스포져(202조 계열)는 집계 범위가 다른 별개의 숫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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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크원 중단과 재개
- 파크원 지상권 분쟁 대법원 확정 판결 — 법률신문 · 2014-07
- 삼성물산, 파크원 시공 손실과 이탈 — 이투데이 · 2016
- 포스코건설 파크원 시공 계약, 6년 만의 공사 재개 — 한국금융신문 · 2016-12
- NH투자증권 주선 파크원 PF 2조 1,000억 — 서울경제 · 2020
브릿지론과 본PF
- 브릿지론·본PF의 단계 구조 정리 — 한국금융신문 · 2023-09
- 브릿지론 금리, 법정 최고금리 20% 사례 — 스트레이트뉴스 · 2022
- 지방 브릿지론 12~13%, PF-ABCP 15%대 — EBN · 2023-05
- 대형 건설사 신용보강에도 본PF 선순위 연 10% 안팎 — 한국경제 · 2023-10
- 우량 사업장 본PF 금리 6%대 진입 — 대한경제 · 2024-10
- 본PF 전환의 조건: 인허가·시공사·분양성 — 인베스트조선 · 2025-11
PF 시장 규모와 시행사 자기자본
- 2023년 말 부동산 PF 대출 잔액·연체율 — 금융위원회 ·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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