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는 값을 받고 이전된다
책임준공 확약의 값은 수수료 1%였고, 돌아온 청구서는 원금 전액이었다
이 글은 《자본의 구조》 시리즈 3편이다. 1편은 파크원 한 건의 계약 구조를, 2편은 공사비를 조달하는 신용의 사슬을 따라갔다. 이번 편은 그 사슬을 지탱하는 계약, 즉 남의 리스크를 대신 져주는 약속에 가격이 매겨지는 방식과, 가격을 잘못 매긴 쪽이 치른 값을 다룬다.
포스코건설은 공짜로 리스크를 지지 않았다
포스코건설이 파크원에서 책임준공과 채무인수 조건을 받아들인 대가는 공사비 1조 1,940억 원 전액을 지급받는 보장이었다. 1편 파크원의 리스크 배분에서 확인한 구조다. 대주단 34곳이 2조 1,000억 원을 빌려주며 실제로 믿은 것은 시행사의 신용이 아니라, 기한 내에 준공하지 못하면 그 대출을 통째로 인수하겠다는 시공사의 확약이었다.
이 계약을 거래로 다시 읽으면 이렇게 된다. 포스코건설은 준공 리스크라는 상품을 팔았고, 값으로 1조 2,000억 원짜리 일감을 받았다. 대주단은 그 상품을 산 덕에 돈을 움직일 수 있었다. 리스크는 어디로도 사라지지 않았다. 값을 받은 쪽으로 이동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 상품의 정가는 얼마인가. 파크원에서는 대형 시공사가 일감을 값으로 받고 팔았지만, 한국 개발금융에는 같은 상품을 수수료를 받고 전문으로 파는 산업이 따로 있다. 부동산 신탁업이다. 신탁사들은 준공 확약을 보수 1%대에 팔았고, 부동산 경기가 꺾인 2023~2024년에 그 가격이 틀렸다는 청구서를 받았다. 손실은 분기 수천억 원 단위였고, 회사 하나는 금융당국의 경영개선명령까지 갔다.
이번 편은 그 가격표를 따라간다. 준공 리스크가 산업 전체에서 어떤 값에 팔렸는지, 가격이 틀렸다는 사실이 어떻게 드러났는지, 그리고 값을 아예 받지 않고 같은 리스크를 지는 자리가 어디인지. 마지막 자리에 자영업 사장이 서 있다.
수수료 1%로 무엇을 판 것인가
부동산 신탁사가 책임준공확약형 신탁에서 파는 것은 시공사가 무너져도 준공은 된다는 약속이고, 받는 값은 업계 통상 매출의 1~1.5% 수준이다. 팔린 것과 받은 것 사이의 이 간격이 이번 편 전체의 주제다.
부동산 신탁은 사업의 명의와 자금을 신탁사에 맡기는 제도다. 시행사가 부도나도 사업장이 시행사 채권자에게 넘어가지 않게 격리하는 장치인데, 신탁사에 무엇까지 맡기느냐에 따라 상품이 갈리고 값도 갈린다. 보수율은 사업장마다 협상으로 정해지므로 아래 숫자는 업계에서 통용되는 수준으로 읽어야 한다.
| 유형 | 신탁사가 파는 것 | 보수(업계 통상 수준) |
|---|---|---|
| 관리형 토지신탁 | 사업 명의와 자금 관리 | 매출의 1% 이하 |
| 차입형 토지신탁 | 명의·관리에 더해 사업비 직접 조달 | 3% 안팎 |
| 책임준공확약형(책준형) | 관리형에 더해 준공 확약 | 2%대에서 출발, 2022년 경쟁으로 1~1.5%대 |
책준형이 작동하는 자리는 신용도 낮은 중소 시공사의 사업장이다. 파크원의 대주단은 포스코건설의 확약을 믿고 돈을 냈지만, 중소 시공사의 확약만으로는 대주단이 움직이지 않는다. 이때 신탁사가 시공사가 쓰러지면 다른 시공사를 붙여서라도 기한 내에 준공하겠다고, 못 하면 대주단의 손해를 물어주겠다고 확약한다. 시공사의 신용을 신탁사의 신용으로 갈아 끼우는 장치다. 기한을 하루만 넘겨도 채무 전액을 부담하는 구조라는 비판이 나올 만큼(2024, 미래한국) 확약의 책임은 전부 아니면 전무에 가깝다.
장사는 잘됐다. 금융감독원 집계에 따르면 책준형 수탁액은 2020년 말 8조 4,000억 원에서 2023년 9월 말 17조 1,000억 원으로, 3년이 채 안 되는 사이 103.6% 늘었다(서울경제). 부동산 호황기에 중소 시공사 사업장이 쏟아졌고, 신탁사들에게 책준형은 자기 돈을 대는 차입형보다 가볍고 관리형보다 비싼, 중간의 좋은 장사로 보였다.
가격은 반대로 움직였다. 2022년 딜사이트 보도에 따르면 2%대였던 책준형 보수율은 수주 경쟁 속에 교보자산신탁 1.37%, 우리자산신탁 1.21%, 신한자산신탁 0.5~1% 수준까지 내려왔다. 파는 물건은 사실상 준공 무한책임인데, 값은 리스크의 크기가 아니라 경쟁이 정했다. 보험료를 사고의 확률이 아니라 옆 보험사의 호가를 보고 정한 셈이다.
청구서는 회계와 판결 양쪽에서 왔다
가격이 틀렸다는 사실은 부동산 경기가 꺾이자 재무제표와 법원 판결 양쪽에서 확인됐다. 공사비 급등과 분양 부진으로 중소 시공사가 쓰러지기 시작하면서, 계약서 위의 확약은 실제 지출로 바뀌었다. 신탁사는 멈춘 현장에 자기 돈(신탁계정대)을 넣어 공사를 이어가야 했고, 회수가 불투명한 그 돈은 곧바로 충당금이 됐다.
숫자부터 보면 이렇다. 뉴시스가 집계한 2024년 8월 기준 자료에 따르면 14개 부동산 신탁사는 2024년 2분기에 합산 영업손실 2,468억 원을 냈다. 신탁계정대에 쌓은 대손충당금은 2023년 6월 말 5,746억 원에서 2024년 6월 말 1조 3,241억 원으로 1년 새 130% 늘었다. 신한자산신탁의 충당금은 같은 기간 1,222%, KB부동산신탁은 742% 증가했다.
개별 회사로 내려가면 손실의 진원지가 책준형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블로터 보도에 따르면 책준형 수주에 공격적이던 신한자산신탁은 2024년 영업손실 2,504억 원, 순손실 3,086억 원을 기록했고, 준공 기한을 지키지 못한 책준 사업장이 2023년 말 기준 133곳이었다. KB부동산신탁은 2024년 영업손실 1,068억 원으로 2년 연속 적자였다. 무궁화신탁은 책준형 수주를 2019년 679억 원에서 2022년 약 1조 원으로 불렸다가 부실이 돌아오면서 영업용순자본비율(NCR)이 69%까지 떨어졌고, 2024년 11월 27일 금융당국의 경영개선명령을 받았다(뉴시스).
확약의 법적 무게를 확정한 것은 법원이다. 신탁사들은 소송에서 공기 지연이 불가항력이었다고 다퉜지만, 2024년 한국경제 보도에 따르면 법원은 코로나19에 따른 지연조차 불가항력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확약서에 적힌 기한은 변명이 통하지 않는 기한이라는 뜻이다. 이어 서울중앙지법은 2024년 5월 30일, 책준 기한을 넘긴 사업장의 새마을금고 대주단이 입은 손해에 대해 신한자산신탁에 원금 256억 원과 지연이자 전액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리걸타임즈). 파이낸셜뉴스에 따르면 2024년 7월 기준 신탁사를 상대로 한 같은 구조의 소송이 약 15건, 청구액은 수천억 원대다.
여기서 가격과 책임의 비대칭이 숫자로 완성된다. 받은 값은 사업장 매출의 1% 안팎이고, 배상 단위는 대주단 대출 원금의 100%다. 백 번 확약을 팔아 한 번만 물어줘도 남는 게 없는 장사인데, 2023년 이후에는 한 회사에서만 물어줄 사업장이 세 자릿수로 쌓였다. 경쟁이 정한 가격이 리스크의 크기를 따라잡는 데 4년이 걸리지 않았다.
태영건설에서는 크기를 재는 것부터 다툼이 됐다
리스크는 값을 매기기 전에 크기를 재는 단계부터 어긋난다. 2023년 12월 28일, 시공능력평가 16위 태영건설은 PF 채무 480억 원을 상환하지 못해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을 신청했다.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은 A-에서 CCC로 떨어졌다(더벨).
회사를 무너뜨린 것은 480억 원이 아니다. 그 뒤에 서 있던 보증의 총량이었다. 태영건설은 전국 사업장에 책임준공 확약과 연대보증 같은 신용보강을 깔아뒀고, 이렇게 쌓인 우발채무의 규모를 회사는 2조 5,000억 원이라고 주장했다. 채권단 쪽에서는 9조 5,000억 원을 넘는다는 수치가 나왔다(2024년 1월, 더벨). 같은 회사가 맺은 같은 계약 묶음을 놓고 크기가 네 배 가까이 벌어진 것이다.
간격의 정체는 셈법이다. 우발채무는 아직 터지지 않은 보증이다. 분양이 순항하는 사업장의 책준 확약은 현실화 확률이 0에 가깝고, 공사가 멈춘 사업장의 확약은 사실상 확정된 빚이다. 어느 사업장을 어느 쪽으로 분류하느냐에 따라 2조 5,000억 원과 9조 5,000억 원이 갈린다. 회사는 터지지 않을 보증을 빼고 세고, 돈을 떼일 처지의 채권단은 터질 수 있는 보증을 다 넣어 센다. 자기 리스크의 크기를 정하는 자를 자기가 쥐고 있지 않다는 것, 이것이 보증을 깔아두고 사업을 키운 회사가 위기에서 마주치는 두 번째 문제다.
파크원과 겹쳐 보면 차이가 선명하다. 파크원의 리스크 배분표는 사업이 시작되기 전에 계약서로 확정됐고, 그래서 2조 1,000억 원이 움직였다. 태영건설의 리스크 총량은 워크아웃 협상 테이블 위에서야 처음 계산됐다. 측정된 리스크는 값을 받고 팔 수 있지만, 측정을 미룬 리스크는 가장 불리한 시점에 가장 불리한 자로 재진다.
자영업판 책임준공은 대표의 연대보증이다
자영업 대출에서 신용 보강자 역할을 하는 것은 신탁사도 시공사도 아닌 대표 개인이다. 법인 명의로 돈을 빌려도 은행은 대표의 연대보증을 요구하고, 사업이 무너지면 대표가 개인 재산으로 갚는다. 구조의 자리만 보면 포스코건설의 채무인수, 신탁사의 준공 확약과 정확히 같은 칸이다. 사업의 리스크를 사업 바깥의 신용이 받아주는 자리.
다른 것은 가격이다. 포스코건설은 그 자리에 서는 값으로 1조 2,000억 원짜리 일감을 받았다. 신탁사는 낮게 잡아도 매출의 1%는 받았고, 그 가격조차 틀렸다는 것이 앞 장의 결론이었다. 대표의 연대보증은 같은 자리에서 아무 값도 받지 않는다. 연대보증 덕에 대출이 나오니 대가가 있는 셈 아니냐고 볼 수도 있는데, 그 논리는 포스코건설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포스코건설은 공사 수주라는 이익 위에 공사비 전액 지급 보장까지 얹어 받았고, 사장은 대출 승인 외에 얹어 받는 것이 없다. 값을 받지 못하고 통째로 지는 계약, 리스크 이전의 가격표에서 가장 불리한 칸이다.
같은 자리를 값을 치르는 계약으로 바꾸는 제도가 이미 있다.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의 보증이다. 사업자가 보증료를 내면 기관이 은행에 대출 상환을 보증하고, 일반보증 기준 같은 기업에 최고 30억 원까지 가능하다(신용보증기금). 구조로 보면 파크원 쪽에 가까운 설계다. 리스크를 넘겨받는 쪽이 값을 받고, 넘기는 쪽이 값을 낸다. 보증료를 아까운 비용으로 읽는 사장이 많지만, 이 시리즈의 언어로 읽으면 보증료는 비용이 아니라 리스크의 가격이다. 신탁사들이 1%를 받고 팔다가 원금 전액을 물어낸 바로 그 상품을, 사장은 보증료를 내고 기관에 파는 쪽에 설 수 있다.
리스크는 없앨 수 없고 배분만 할 수 있다는 것이 1편 배분표의 결론이었다. 이번 편의 결론은 그 배분에 가격이 붙는다는 것이다. 신탁업은 경쟁이 정한 가격에 팔았다가 분기 수천억 원의 손실로 정산했고, 태영건설은 크기를 재는 자부터 채권단과 달랐고, 자영업 사장은 값을 받지 않은 채 가장 큰 칸을 채우고 있다. 자기 사업의 리스크 배분표에서 누가 어느 칸을 얼마에 채우고 있는지 적어보는 것이 이 편의 숙제다. 글쓴이가 준비하는 광명시흥 신공장의 조달 설계에 이 가격표를 실제로 적용하는 작업은 9편에서 한다.
다음 편은 건물값의 산식이다. 임대료가 자본환원율이라는 나눗셈 하나를 거쳐 건물 가격이 되는 구조를, 4조 1,000억 원까지 갔다가 무너진 여의도 IFC 매각에서 따라간다.
출처
본문의 수치는 금융당국 집계와 경제지·법조 전문지 보도에 기대고 있다. 신탁 보수율은 공시 항목이 아니라 사업장별 협상으로 정해지므로, 본문의 요율은 업계 통용 수준을 전한 보도 기준이며 개별 계약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태영건설 우발채무 규모는 회사와 채권단의 주장이 갈린 수치를 그대로 병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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