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츠다머플라츠는 베를린이 감정가의 52%에 판 땅이고, 통일 전이라는 이유로 환수액이 깎였다
1990년 다임러에 ㎡당 1,505마르크, 1991년 소니에 3,272마르크. 유럽 집행위원회는 다임러에 3,383만 마르크를 돌려주게 했고 소니는 면제했다
포츠다머플라츠는 1990년 7월 베를린 주가 다임러벤츠에 61,710제곱미터를 9,287만 마르크에, 1991년 3월 소니에 30,900제곱미터를 1억 110만 마르크에 판 땅에 섰다. 유럽 집행위원회는 다임러 건에 3,383만 마르크 반환을 명령했고 통일 결정이 아직 없었다는 이유로 환수액을 깎았다. 소니 건은 베를린이 반값으로 다시 계산해 낸 셈으로 면제됐다. 깎아 판 땅값은 베를린이 25년 임대료로 되돌려 냈고, 소니센터는 한국 국민연금을 거쳐 캐나다 연기금과 노르웨이 국부펀드에 갔다. 《건물을 짓는 돈: 세계편》 25편.
이 글은 《건물을 짓는 돈: 세계편》 25편이다. 세계의 건물 한 채를 잡아 그 돈이 왜 그런 모양인지 본다. 편마다 메커니즘 하나와 건물 하나. 이번 메커니즘은 통일 직전의 도시가 행정 산정가로 도심의 땅을 넘기고 경쟁당국이 그 값을 사후에 뒤집은 구조이고, 건물은 베를린 포츠다머플라츠의 소니센터와 다임러 지구, 103미터의 반타워와 콜호프타워다. 국내 건물은 《건물을 짓는 돈: 국내편》에서 따로 다룬다.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2022년 6월 30일 소니센터 절반에 6억 7,700만 유로를 냈고, 그 땅을 베를린은 1990년에 감정가의 52%에 팔았다
2022년 6월 30일 노르웨이 국부펀드 운용기관이 베를린 소니센터 지분 50%를 6억 7,700만 유로에 샀다. 매수인은 그 거래가 자산 전체를 13억 5,400만 유로로 매긴 것이라고 공시했고, 판 쪽은 옥스퍼드 프로퍼티스와 매디슨 인터내셔널 리얼티였다. 캐나다 온타리오 지방공무원연금의 부동산 부문이 매디슨과 함께 2017년 10월 한국 국민연금에서 11억 유로에 산 건물이다. 국민연금은 2010년 6월 그것을 모건스탠리 주도 펀드에서 5억 8,500만 유로에 샀다. 소니는 2008년 3월 그 건물을 가진 법인의 지분 전부를 819억 6,200만 엔에 팔았다. 건물을 가진 법인은 그 네 번의 거래 내내 베를린 샤를로텐부르크 지방법원 등기번호 38768 B 하나였고 이름만 소니베를린에서 조크리벨로 바뀌었다. 그 땅의 첫 매도인은 베를린 주였다.

사진: Ansgar Koreng, CC BY-SA 4.0, 위키미디어 공용
1990년 7월 16일 베를린 주는 포츠다머플라츠의 61,710제곱미터를 다임러벤츠에 9,287만 3,550마르크에 팔았다. 제곱미터당 1,505마르크다. 유럽 집행위원회가 그 거래를 국가보조로 보고 독일 당국에 독립 감정을 요구했고, 베를린 주정부가 의뢰한 7인 감정위원회는 1990년 4월 시점의 시장가를 1억 7,970만 6,000마르크로 매겼다. 매각가는 감정가의 51.7%였다. 집행위는 1992년 4월 14일 차액 8,683만 마르크 가운데 5,300만은 분단 보상으로 인정하고 3,383만 2,450마르크를 다임러가 베를린에 돌려주도록 명령했다. 담당 집행위원 레온 브리튼이 환수액을 깎은 사유 둘 가운데 하나는 가격을 정한 1990년 봄에 통일 결정이 아직 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듬해 같은 광장에서 소니는 제곱미터당 3,272마르크를 냈고 같은 조항으로 따로 열린 심사에서 면제됐다. 그 면제의 근거가 된 셈은 땅을 판 베를린 자신이 감정액을 반으로 다시 계산해 브뤼셀에 낸 것이었다.
이 돈은 세 군데에 적혀 있다. 유럽 집행위원회 결정 92/465/EEC와 보도자료 IP/93/216, 베를린 감사원 2006년 연차보고, 그리고 다임러와 소니와 브룩필드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낸 보고서와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공시다. 결정문에는 감정위원회가 비교지 2,335마르크에서 다섯 단계를 거쳐 3,059마르크에 닿은 산식이 있고, 감사원 보고에는 베를린이 그 땅 위의 건물에 25년간 낼 임대료 단가와 "당시 토지 매매대금을 상당히 깎아줬기 때문"이라는 문장이 있다. 땅값에서 못 받은 것을 용적으로도 못 받았고 임대료로 되돌려 냈다는 구조가 그 세 문서에 걸쳐 있다.
1990년 5월 베를린 건설주택국이 매긴 값으로 7월 16일에 팔았고, 1991년 2월 유럽 집행위원회가 그 평가의 적법성부터 의심했다
이 땅은 장벽이 30년에 걸쳐 모아 둔 땅이었다. 1838년 포츠다머 장거리역이 열리면서 베를린의 중심이 된 교차로는 1945년에 거의 전파됐고, 1912년에 선 바인하우스 후트 한 채만 남았다. 1961년 8월 13일 장벽이 광장을 양분했고, 이곳은 본벽과 후방벽 사이 띠가 가장 넓은 지점이 됐다. 서측의 폐허 필지는 서베를린 주정부가 위험 제거 명목으로 순차 매입했고, 구 포츠다머 여객역 부지는 1972년 영토 교환으로 서베를린에 왔다. 레네 삼각지는 1988년 3월 31일 협정으로 96.7헥타르를 받고 87.3헥타르와 7,600만 마르크를 주는 교환에 포함돼 7월 1일 서베를린에 귀속됐다. 1990년 7월에 베를린 주가 한 덩어리로 팔 수 있었던 것은 그 축적의 결과다.

사진: Robert Hösle, CC BY-SA 4.0, 위키미디어 공용
파는 쪽의 값이 먼저 있었다. 유럽 집행위원회 보도자료 IP/91/183은 장벽이 열릴 무렵 다임러벤츠가 서비스 부문 본사를 서베를린에 두기로 정하고 베를린 주정부에 후보지 제안을 요청했다고 적는다. 선택된 땅이 옛 장벽 옆 포츠다머슈트라세의 61,710제곱미터였다. 1990년 5월 주정부 건설주택국이 부지를 평가했고, 그 값이 7월 16일 계약의 9,287만 3,550마르크가 됐다. 같은 문서가 그 평가를 두고 "건설주택국이 따른 원칙과 절차가 독일법의 관련 규정에 온전히 부합하는지 집행위는 납득하지 못했다"고 썼다. 7월에 서베를린 주정부와 동베를린 시정부가 알터나티베 리스테의 반대표를 넘어 계약을 승인했고, 8월에 베를린 주의회가 기민당과 사민당 표로 승인했다고 taz는 적는다. 공개 절차였다. 10월 3일 통일이 됐다.
조사의 계기는 야당도 감사원도 아니었다. 주정부 도시개발행정의 홍보담당 돌프 슈트라우프가 1990년 가을 유럽공동체 관리와 통화한 것이 심사의 계기였다. 의도치 않은 일이었다고 taz가 1992년 4월 15일 보도했다. 당시 시장 발터 몸퍼의 압력으로 그의 인사기록에 같은 일이 재발하면 공직에서 내보낸다는 경고가 기재됐다고 같은 기사는 적는다. 1991년 2월 28일 집행위가 유럽경제공동체 조약 93조 2항 절차를 열었다. "예컨대 베를린 토지가치 감정위원회 같은 완전히 자율적인 전문가 집단"의 2차 감정을 독일 당국에 요구했다. 7인 감정위원회가 1991년 7월 9일 서명한 감정서는 1990년 4월 시점 시장가를 1억 7,970만 6,000마르크로 매겼다. 다임러가 의뢰한 사설 감정은 9,924만, 건설주택국은 감정위원회 값이 820만 낮아야 한다고 답했다. 1992년 4월 14일 결정 92/465/EEC는 차액 8,683만 2,450마르크를 보조금으로 봤다. 그 가운데 벨뷰타워 인수와 철거의 순비용 5,300만만 분단 보상으로 인정했다. 나머지 3,383만 2,450마르크는 2개월 안에 베를린에 반환하라는 명령이었다.
감면의 사유가 이 편의 축이다. 브리튼 집행위원은 환수액이 비교적 작은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다. 다임러가 부지를 정리하며 5,300만 마르크의 추가 비용을 졌다는 것이 하나다. 다른 하나는 매입가가 정해진 1990년 봄의 사정이다. "장벽 옆의 포츠다머플라츠는 도시에 제대로 통합돼 있지 않았고 통일 결정은 아직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 1년 늦은 값이 쓰였는지는 베를린 감사원 검사부문장 폴커 디더리히스가 설명했다. 첫 번째 평가는 건설담당의 기준지가에 기댔고 그 기준지가는 3년마다 갱신되며 장벽 개방 전 포츠다머플라츠의 훨씬 낮은 값에 묶여 있었다는 것이다. taz의 에바 슈바이처는 그 제도를 한 문장으로 적었다. 베를린 주정부는 투기를 부추기지 않으려고 자기 땅에 시장가가 아니라 관청이 산정한 낮은 거래가치를 요구하는데, 그 산정은 실제 시장보다 최대 1년 늦다. 투기를 막으려고 만든 저가 산정 규칙이 도시 전체가 재평가되는 해에는 공공의 손실 장치가 됐다.
도시설계는 돈이 정해진 뒤에 그려졌다. 1991년 6월 28일 베를린 도시개발환경국이 16개 사무소에 과제를 배포했고, 10월 1일과 2일 옛 호텔 에스플라나데에서 심사가 열려 뮌헨의 힐머 운트 자틀러가 1등을 했다. 심사위원회는 지침의 상한인 용적률 5.0을 목표로 삼지 말고 건축 물량을 줄이라고 권고했다. 당선안은 처마선 35미터에 광장 쪽 60~70미터 고층 다섯 동, 50미터 격자의 블록이었다. 투자자 셋은 그 안을 거부하고 리처드 로저스에게 발주한 대안을 밀었다. 11월 7일과 8일 주의회 도시개발위원회가 전 정당 일치로 투자자의 요구를 물리쳤고, 도시개발담당 폴커 하세머는 "이 도시공간을 질서 짓는 공적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고 했다. 한 달 뒤인 12월 10일 같은 주정부가 광장 가장자리에 90~100미터를 허용하고 용적률 5.0을 승인했다. 하세머가 "큰 성공"이라고 부른 주택 20%, 약 3,000호가 그 대가였다. 그 주택 비율이 "투자자에게 더 높은 건축과 더 강한 토지 이용이 허용된 한 원인"이라고 그 자신이 밝혔다. 투자자는 설계안 싸움에서 지고 용적 싸움에서 이겼다.
소니는 1991년 3월 1일자 계약으로 30,900제곱미터를 1억 110만 마르크에 샀다. 제곱미터당 3,272마르크, 다임러의 2.17배다. 계약에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도시계획을 받아들이고 에스플라나데 건물을 보존하며 문화 용도 15,000제곱미터를 25년간 베를린 주에 임대로 제공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집행위는 1991년 12월 18일 이 건에도 절차를 열었다. taz가 그 감정서를 열람해 보도한 1992년 8월 감정위원회의 값은 2억 6,026만 7,697마르크였다. taz는 주정부 재정행정이 계약 체결 전에 알려진 비교 자료만 쓰라는 조건을 달아 다시 물었다고 보도했다. 1992년 12월 22일 경제담당 노르베르트 마이스너가 부지 가치 1억 3,000만 마르크라는 결과를 발표해 집행위에 냈다. 감정위원회는 자기들은 시가를 한 번만 산정했고 그것은 2억 6,000만이라고 답했다. 집행위는 1993년 3월 소니 건을 종결했다. 시장가 추정은 1억 2,800만에서 1억 4,950만 사이였다. 소니가 진 의무의 평가액 4,130만을 더한 총부담 1억 4,240만이 상한의 95.25%라 감정의 5% 오차범위 안이라는 논리였다. 추가 납부는 주 금고로 들어오는 돈인데 그것을 면해 달라고 집행위에 요청한 쪽도 주정부였다고 taz는 적었다.
공사는 계획 확정을 앞질렀다. 조정 지구상세계획 II-B 5는 1993년 3월 3일 수립의결을 거쳐 1994년 6월 28일 확정됐다. 다임러의 첫 삽은 1993년 가을이었고 벨뷰타워는 1993년 10월 9일부터 11일에 발파됐다. 1994년 10월 정초, 1996년 10월 크레인 19대가 베토벤 9번에 맞춰 움직인 상량이 이어졌다. 1997년 10월 24일 데비스하우스가 준공했고 1998년 10월 2일 연방대통령 로만 헤르초크가 참석해 다임러 지구가 열렸다. 소니센터는 1996년 착공해 2000년 6월 14일 오가 노리오가 베를린필을 지휘하는 행사로 열렸다. 1995년 10월 라이프치히광장에 선 붉은 컨테이너 인포박스는 옥상 전망에 2마르크를 받았고 2000년 6월 15일 누적 방문 800만 명을 기록한 뒤 2001년 1월 철거됐다. 베를린 주정부는 그 공사장을 스스로 "유럽 최대의 도심 공사장"이라고 불렀다.
계획은 단순계획과 후속계획 둘로 쪼개졌고, 용적 0.1을 올린 값이 계약서에 ㎡당 25마르크로 적혀 있었으며, 땅값의 조건은 25년 임대료가 됐다
이 땅의 도시계획은 두 층이었고 쪼갠 이유는 속도였다. 상위의 조정 지구상세계획 II-B 5는 건설법전 30조 2항의 단순계획으로, 도로와 철도면과 터널 노선과 공공 기반과 용도 구조와 건축 가능면만 정했다. 용적과 동 배치와 높이는 후속의 적격 지구상세계획 네 건이 정했고, 베를린 주정부는 그 네 건을 "투자자 프로젝트의 진척 속도에 따라" 구별로 개별 확정했다고 스스로 적었다. 다임러 II-165가 1995년 1월 26일, 파크 콜로나덴 II-166이 1995년 12월 1일, 소니 II-164가 1996년 1월 10일, 레네 삼각지 II-163이 1996년 12월 10일이다. 상위계획 확정이 1994년 6월 28일이고 다임러의 첫 삽은 1993년 가을이었으니 착공이 계획을 앞질렀다. 1991년 공모에서 이긴 안은 블록 격자와 처마선만 남았다. 주정부 문서는 소니 지구가 기준안의 35미터를 넘어 처마선을 일률 39미터로 올리고 103미터의 반타워와 덮인 포럼을 세운 것을 "도시설계안으로부터의 이탈"이라고 적는다.
용적의 값은 계약서에 미리 적혀 있었다. 집행위 결정문이 옮긴 1990년 7월 16일 계약은 용적지표 4.0을 기준으로 0.1이 움직일 때마다 제곱미터당 25마르크를 가감한다고 정했고 하한은 3.5였다. 1991년 12월 10일 주정부가 5.0을 허용했으니 제곱미터당 250마르크, 61,710제곱미터면 1,542만 7,500마르크가 추가 대금이 된다. 이 글의 유도이고 베를린이 실제로 받았는지는 결정문에 없다. taz는 1992년 2월 두 회사의 추가 납부 합계를 약 2,000만 마르크로, 같은 해 9월에는 건설담당 볼프강 나겔이 계산한 다임러의 추가 수익을 3억 마르크로 보도했다. 용적률을 4.0에서 5.0으로 풀어 주고 받은 돈이 2,000만, 그 용적으로 한 회사가 더 버는 돈이 3억이라는 계산을 한 쪽은 비판자가 아니라 땅을 판 쪽의 건설담당 본인이었다. 1991년 12월 10일의 결정에는 주차 4,000면이 들어 있다. 주차장 조례 요구치의 20%였다. 1993년 9월 15일 당선 설계자 힐머 운트 자틀러는 나겔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다임러 부지의 건축이 "거꾸로 가고 있다"고 썼다. 주정부와 다임러가 합의한 주택 20%는 "보통 주택의 형태로 실현되지 않는다"며 "원래 생각의 변질"이라고 했다.
소니 땅의 조건은 돈이 아니라 면적이었고 그 면적은 베를린이 돈을 내고 쓰는 면적이었다. 베를린 감사원 2006년 연차보고는 1991년 매각 조건을 "최소 18,500제곱미터를 필름하우스와 메디아테크 용도로 지어 베를린 주에 25년간 임대로 제공한다"로 옮긴다. 집행위 문서는 15,000제곱미터라고 적는다. 1997년 2월 10일 베를린 학술연구문화 담당 행정청이 매수인이 세운 임대회사와 임대차를 맺었고, 최종 면적은 필름하우스 14,337.46제곱미터와 메디아테크 2,370.54제곱미터, 합계 16,708제곱미터다. 월 순임대료는 필름하우스 제곱미터당 12.78유로, 메디아테크 25.05유로였다. 연 약 291만 유로, 25년이면 약 7,280만 유로가 된다. 물가조정과 관리비를 뺀 이 글의 유도다. 감사원은 배관으로 막힌 지하와 쓸 수 없는 면적과 존재하지 않는 202.03제곱미터까지 전액 임대료를 내고 있다며 연 약 30만 9,000유로, 25년 약 770만 유로를 부당지출로 판정했다. 내장공사도 안 된 메디아테크에 2001년 2월부터 2005년 8월까지 월 5만 9,382.03유로, 총 330만 유로를 낸 것은 "경제적으로 변호할 수 없다"고 썼다. 그 보고서에 베를린이 왜 필름하우스 임대료를 깎아 받았는지가 적혀 있다. "당시 토지 매매대금을 상당히 깎아줬기 때문"이다. 1996년 10월 내부 메모는 메디아테크의 재원이 "완전히 미확보"라고 적었는데 1997년 2월에 면적을 임차했다.
가로와 광장은 투자자가 짓고 소유했다. 독일어 위키백과가 정리한 당시 비판의 세 갈래 가운데 셋째가 그것이다. 투자자가 도로와 광장을 건설했을 뿐 아니라 소유권을 취득해 공개된 도시 공간에서 가택권까지 얻었다. 그래서 다임러 지구의 아케이드와 소니센터의 포럼은 지붕 있는 길처럼 보여도 사유지다. 1998년 11월 노조원이 아케이드에서 전단을 돌리다 가택권 위반으로 퇴거당했고, 1999년 4월 장벽 세그먼트 철거 때는 주정부 건설행정과 그 조각의 소유자가 동시에 출입금지를 선언했다. 브룩필드가 알테 포츠다머슈트라세를 자연석으로 다시 깔아 보행자 구역으로 바꾸는 것도 같은 구조에서 나온다. 공공이 할 일을 소유자가 자기 판단으로 하고, 그래서 빨리 되고 그래서 되돌릴 수 없다.
소유권의 그릇은 하나였다. 소니센터를 가진 법인은 베를린 샤를로텐부르크 지방법원 등기 HRB 38768 B의 소니베를린 유한회사이고, 소니가 2008년 3월 그 지분 전부를 팔면서 거래는 자산이 아니라 지분의 이동이 됐다. 현 상호는 조크리벨 유한회사이고 목적은 "소니센터로 알려진 포츠다머플라츠 토지와 부동산의 보유와 관리"다. 2017년 10월 30일과 11월 28일 사원명부가 연속 제출됐고, 11월 3일 대표이사 박현재(등기 표기 Hyunjae Park)의 퇴임이 등기됐다. 국민연금 시대가 끝난 흔적이다. 등기 공시에 이름이 오른 사원은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독일 법인 NBIM Jahn이고, 옥스퍼드가 나머지 절반을 쥔 채 자산운용을 맡는다. 다임러 지구 쪽은 다임러 계열 직접 보유에서 2008년 스웨덴 SEB 은행의 개방형 부동산펀드로, 그 펀드가 2010년 환매 정지와 청산에 들어가자 2015년 브룩필드와 아시아 국부펀드의 합작으로 넘어갔다. 2026년 8월 그 지구의 대출은 룩셈부르크 발행체 미테를 통해 모건스탠리가 주관하는 상업용부동산 저당증권으로 묶이는 중이라고 코스타가 보도했다. 건물은 그대로인데 이름과 주인은 네 번 바뀌었고, 준공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 두 지구 모두 원래 발주자가 없다.
감정위원회는 2,335마르크에서 다섯 단계로 3,059마르크에 닿았고, 소니센터는 14년 사이 1㎡가 2.6배가 됐으며, 베를린이 받은 땅값은 도로터널 한 개보다 작았다
감정의 산식이 결정문에 그대로 있다. 감정위원회는 땅을 세 구역으로 나눴다. 제1 미개발지 46,363제곱미터는 에른스트로이터플라츠와 하르덴베르크와 파자넨의 1988년 말 표준지가 2,335마르크에서 출발했다. 1988년 말부터 1990년 4월까지의 지가 상승 65%를 더하고 입지 차이로 10.7%를 뺐다. 용도 전환 계수로 20.2%를 더하고 포츠다머슈트라세 보존과 사유지 500제곱미터의 불확실성으로 5%를 뺐다. 도시계획 조건을 채우기까지의 3년 지연을 금리 8.7%로 할인해 22.2%를 뺀 3,059마르크가 됐다. 1억 4,182만 4,417마르크다. 제2 미개발지 14,285제곱미터는 2,415마르크로 3,449만 8,275마르크였다. 바인하우스 후트 1,062제곱미터는 순수익 11만 1,217마르크를 3%로 환원한 370만 7,233마르크에서 임차인이 부담한 사무실 두 곳의 개조비를 조정해 338만 3,763마르크였다. 셋을 더해 반올림한 1억 7,970만 6,000마르크가 결정문의 감정가다. 다임러가 주장한 추가 부담 2억 780만 마르크 가운데 집행위가 받아들인 것은 벨뷰타워 관련 순지출 5,300만뿐이었다. 1971년에 선 14층 호텔을 1990년 12월 6,420만에 사들인 값에서 용적률 5.0 환산 표준지가 2,170만을 뺀 4,250만이 가장 크다. 금융비용 570만, 학생 300명과 이주민 250명의 퇴거 710만, 철거 380만을 더하고 그 편입으로 주정부 땅의 가치가 오른 610만을 뺀 값이다. 집행위는 그 비용이 매입 시점에 알려지지 않았고 다임러가 나중에야 떠맡은 것이므로 1990년 4월과 5월의 시장가에 영향을 줄 수 없었다고 잘랐다. 따라서 매매대금에도 영향을 줄 수 없었다는 논리다. 반환 뒤 다임러가 낸 땅값 1억 2,670만 6,000마르크는 감정가에서 합법 보조금 5,300만을 뺀 값과 정확히 같다. 집행위가 매각가를 "감정가 빼기 허용 보조금"으로 다시 쓴 셈이고 감정가의 70.5%다. 이 글의 유도다.
같은 광장의 사인 거래는 다른 값을 가리켰다. taz의 에바 슈바이처는 1992년 2월 11일에 다임러가 1990년에 서비스센터용 소필지 하나에 제곱미터당 1만 3,600마르크를 냈다고 썼다. 롤란트 에른스트에게 사인이 제시한 땅은 2만 5,000마르크였다. 같은 신문은 그해 9월 7일에 신탁청이 몇백 미터 떨어진 땅을 1만 5,000마르크에 팔았다고 적었다. 주정부가 판 값은 1,505마르크였다. 동시대 보도 1건에 근거한 수치라 taz가 보도한 값으로 귀속한다. 소니 쪽도 같은 자리에 선다. taz가 1992년 9월 17일 감정서를 열람해 보도한 바로는 감정위원회가 소니 부지를 11개 비교 부지로 2억 6,026만 7,697마르크로 산정했다. 재정행정은 그 11개 가운데 9개가 소니 계약 뒤의 매매라는 이유로 계약 전 자료만 쓰라고 했고, 그 조건으로 나온 1억 3,000만이 브뤼셀에 갔다. 계약 시점에 알 수 없던 자료를 소급하면 안 된다는 행정의 논리는 법리로 맞다. 그 논리를 적용하면 통일이 땅값에 반영되기 전의 값이 영구히 정당한 값이 된다. 녹색당의 베른트 쾨플은 소니가 1991년 6월 수도 결정까지 계약 해제권을 갖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매수인은 수도 결정까지 빠질 권리를 가졌고, 매도인은 수도 결정으로 생긴 가치 상승을 청구하지 못했다.
다임러는 명목 투입의 66%에 팔았다. 다임러 지구의 공사비는 약 40억 마르크로 통용되고 1차 자료는 없다. 결정문이 적은 당초 추정치는 7억에서 8억이었다. 고정환율로 20억 4,500만 유로인 공사비에 환수 포함 땅값 6,480만 유로와 벨뷰타워 순지출 2,710만 유로를 더하면 명목 투입은 21억 3,700만 유로다. 다임러는 2007년 12월 13일 이사회 승인으로 그 지구를 SEB에 14억 유로 현금에 팔았고 2008년 2월 1일 종결했다. 2007년 말 매각예정자산 장부가는 9억 2,200만 유로, 영업이익 효과는 4억 유로였다. 매각 동기는 "핵심 자동차 사업에 집중하는 전략"이었고, 판 사무공간의 절반을 2012년 말까지 해지 불가로 되임차했다. 17년의 자가사용과 임대수익과 감가상각을 전부 뺀 명목 수치이므로 손익이 아니라 명목 원가보다 싸게 팔렸다는 사실만 성립한다. 2차 자료로는 2007년 10월 2일 다임러와 소니가 각자의 단지를 같은 날 시장에 냈다. 소니는 2008년 3월 소니베를린 지분 전부를 819억 6,200만 엔에 팔아 100억 800만 엔의 이익을 냈다. 유럽중앙은행의 2008년 3월 31일 환율 157.37엔으로 5억 2,080만 유로다. 소니유럽과 소니도이칠란트는 임차인으로 남았다.
소니센터는 네 번 팔렸고 한국의 공적 연금이 그 가운데 있다. 모건스탠리 주도 펀드는 2010년 6월 국민연금에 5억 8,500만 유로에 넘겼다. 운용과 자산관리는 하인스가 맡았고 "국민연금을 대리해 인수를 주도했다"고 밝혔다. 국내 보도의 8,500억 원은 5억 7,000만 유로를 전제한 환산이므로 5억 8,500만 유로와 나란히 쓰면 틀린다. 뉴스타파가 독일 연방관보의 연결재무제표로 확인한 바로는 룩셈부르크 지주회사가 독일 중간회사 셋을 거쳐 보유했다. 2011년 1,900만 유로와 2012년 1,700만 유로의 장부 손실로 2012년 자본이 마이너스 4,700만 유로였다. 국민연금은 2017년 10월 2일 그 건물을 옥스퍼드 프로퍼티스와 매디슨 인터내셔널 리얼티에 약 11억 유로에 팔았다. 7.26년에 1.88배, 배당과 운용보수와 환율을 뺀 연복리 9.1%다. 이 글의 유도다. 2022년 5월 19일 계약으로 노르웨이 국부펀드 운용기관이 50%를 6억 7,700만 유로에 샀고 자산 평가는 13억 5,400만 유로였다. 옥스퍼드가 지분 44.9%포인트를, 매디슨이 5.1% 전부를 팔아 옥스퍼드에 50%가 남았으니 2017년의 지분은 94.9% 대 5.1%였다. 임대가능면적 113,000제곱미터로 나누면 2008년 4,609유로, 2010년 5,177유로, 2017년 9,735유로, 2022년 1만 1,982유로다. 14년에 2.6배다. 2017년에서 2022년 사이에 2억에서 3억 유로의 재개발이 들어갔으므로 자본적지출을 뺀 가치 상승은 사실상 없거나 음수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다임러 지구는 팔리고 다시 빚으로 바뀌었다. SEB의 개방형 펀드 이모인베스트가 2010년 환매를 정지하고 뒤에 청산에 들어가자 자빌스 펀드 매니지먼트가 매각을 맡았다. 브룩필드 프로퍼티 파트너스가 2015년 12월 30일 16동을 약 13억 유로에 인수했다. 공시는 합작 상대를 아시아 국부펀드로만 적었고 업계지는 한국투자공사라고 보도했다. 인수 시 공실은 20%였다. 2016년 5월 브룩필드는 자기 지분 50%의 절반을 1억 4,600만 유로에 팔았다. 100% 지분가치 5억 8,400만 유로를 함의하고, 2015년 말 합작회사의 비유동부채 8억 3,800만 달러를 2016년 초 환율 1.0898달러로 환산한 7억 6,900만 유로와 합치면 13억 5,000만 유로로 매입가와 맞는다. 담보인정비율은 약 57%였다. 2018년 4분기 브룩필드는 이 지구를 11억 유로에 리파이낸스했다. 14억 유로 가치 기준이면 담보인정비율은 약 79%로 오른다. 가치 상승 없이 차입만 늘린 것이라면 지분 회수로 읽어야 한다는 추정이 선다. 2026년 8월 5일 KPMG가 모건스탠리를 위해 "프로젝트 포츠다머플라츠"라는 이름으로 상업 리스 165건과 주거 리스 220건을 합의된 절차로 대조한 서신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됐다. 발행체는 룩셈부르크의 미테, 유럽 대출 도관 43호다. 금액과 만기와 금리는 서신에 없다. 2007년 14억, 2015년 13억, 임대면적 267,000제곱미터로 나누면 제곱미터당 5,243유로에서 4,869유로다. 같은 광장에서 한쪽은 2.6배가 되고 한쪽은 제자리였다.
세율은 올랐고 거래는 지분으로 갔다. 베를린의 부동산취득세율은 1997년 3.5%, 2007년 4.5%, 2012년 4월 5%, 2014년 1월부터 6%다. 2008년 소니 거래는 법인 지분 전부의 양도였고, 2017년 국민연금 거래도 상업등기에 사원명부 제출과 대표이사 교체가 남아 지분 양도로 읽힌다. 2015년 브룩필드 거래를 두고 타게스슈피겔과 한델스블라트는 지분거래라 약 8,400만 유로의 세수가 베를린 금고에서 사라진다고 보도했다. 브룩필드는 다음 날 "자산거래이고 당연히 취득세를 낸다"고 반박했다. 8,400만은 14억 유로의 6%이고 실제 납부액은 조세비밀로 확인되지 않는다. 베를린이 세율을 올리는 동안 같은 광장의 10억 유로 단위 거래는 세율 인상의 대상이 되지 않는 형태로 반복됐다.
베를린이 받은 땅값은 도로터널 한 개보다 작았다. 다임러 환수분 포함 1억 2,670만 6,000마르크와 소니 1억 110만 마르크를 더한 2억 2,780만 6,000마르크는 고정환율로 1억 1,650만 유로다. 용적 조정금 1,543만 마르크는 수령이 확인되지 않아 뺐다. 티어가르텐 도로터널 2.4킬로미터는 7억 3,000만 마르크, 3억 7,300만 유로가 들었고 연방과 베를린이 분담했다. 2차 자료다. 필름하우스와 메디아테크의 25년 임대료 약 7,280만 유로는 받은 땅값의 62%다. 베를린 주의 부채는 1990년 95억 유로에서 2000년 424억, 2002년 470억 초과, 2015년 599억 유로가 됐다. 1991년부터 1994년의 재정체계 변경으로 베를린은 연 50억 유로 이상의 세입을 잃었다는 것이 2차 자료의 설명이다. 땅을 깎아 판 시기와 부채가 4.5배로 불어난 시기가 겹치지만, 그 인과를 적은 1차 문서는 없다.
포츠다머플라츠에서 베를린은 무엇을 넣고 무엇을 받았나
베를린이 내놓은 땅의 감정가는 다임러 몫만 1억 7,970만 마르크였고, 그 가운데 5,300만은 분단 보상으로 인정된 보조금이다. 받은 땅값은 다임러와 소니를 합쳐 2억 2,780만 마르크, 1억 1,650만 유로다. 거기에 25년 임대료 약 7,280만 유로와 금액이 확인되지 않은 기반시설 분담이 나갔다. 금액이 확인된 항목만 세면 받은 쪽이 크고, 확인되지 않은 분담을 넣으면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이 이 글의 유도다. 비현금 편익은 계량되지 않는다. 자리를 표로 둔다.
| 주체 | 넣은 것 | 가져간 것 | 확인 등급 |
|---|---|---|---|
| 베를린 주 | 땅(감정 1억 7,970만 마르크, 그 중 5,300만은 분단 보상으로 인정), 25년 임대료 약 7,280만 유로(유도), 기반시설 분담(금액 미확인) | 땅값 2억 2,780만 마르크(1억 1,650만 유로), 2015 취득세 약 8,400만 유로(납부 여부 미확인) | 1차+유도 |
| 연방·독일철도 | 북남 철도터널 3,586m, 중앙역, 광역역, 도로터널 7억 3,000만 마르크 | 교통망 | 2차 |
| 다임러벤츠 | 땅값 1억 2,670만 마르크(환수 포함), 공사비 약 40억 마르크(2차), 벨뷰 순지출 5,300만 | 2007년 14억 유로, 17년 보유와 그 사이 임대수익 | 명목 투입의 66%(유도) |
| 소니 | 땅값 1억 110만 마르크, 의무 평가액 4,130만, 공사비(미확인) | 2008년 819억 6,200만 엔, 이익 100억 800만 엔, 임차인 지위 | 1차 |
| 모건스탠리·코르푸스 지레오·존 벅 | 2008년 매입가(비공개) | 2010년 5억 8,500만 유로 | 차익 미확인 |
| 국민연금 | 2010년 5억 8,500만 유로 | 2017년 11억 유로, 1.88배(유도) | 1차 |
| 옥스퍼드·매디슨 | 2017년 11억 유로, 재개발 3억 유로(공식 팩트시트 기준)의 몫 | 2022년 6억 7,700만 유로 수령, 옥스퍼드 50% 잔류 | 1차 |
| 노르웨이 국부펀드 | 2022년 6억 7,700만 유로 | 50% | 2026 가치 미확인 |
| 브룩필드·아시아 국부펀드 | 2015년 약 13억 유로 | 2016년 1억 4,600만 유로 회수, 2018년 11억 유로 리파이낸스 | 1차 |
| 대주·저당증권 투자자 | 2018년 11억 유로, 2026년 유동화 | 이자 | 조건 미확인 |
| 문화 임차인 | 없음 | 필름하우스 사용, 임대료는 베를린이 지급 | 2006년 시점 6년간 서면 계약 없음(감사원) |
정치는 세 번 바뀌었고 매번 지는 쪽이 공공 재정의 이익을 주장하는 쪽이었다. 1990년에는 적록 연정의 소수 파트너 알터나티베 리스테가 땅값이 너무 싸고 기업이 도심의 모습을 정한다고 반대했다. 도시개발 담당 미하엘레 슈라이어는 "한 기업이 도시의 중심이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를 지시하는 것"을 승인할 수 없다며 사퇴를 여러 번 내걸었다. 거래는 기민당과 사민당 표로 통과됐고, 연정이 실제로 깨진 계기는 1990년 11월 마인처슈트라세 점거 건물 강제철거였다. 1991년 11월에는 주의회 도시개발위원회가 투자자를 이겼다. 다임러 대표 페터한스 카일바흐는 "이 기본 구조가 주어진다면 우리는 책임질 수 없다"고 했다. 소니 대표 라이너 바그너는 로저스안이 "더 자유롭고 우아하다"며 배제되면 "베를린이 망신당할 것"이라고 했다. 기민당 건축정책 대변인이자 전 건설담당인 게오르크 비트버는 바그너에게 "도시에서 무엇이 옳은지를 말하는 사람이 당신 혼자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 승리는 한 달 갔다. 1992년부터 1993년에는 녹색당의 쾨플이 자기 주정부를 상대로 소니 감정의 "변조"를 주장했고, 특별회의 요구는 기각됐으며 집행위는 주정부의 셈을 받았다. 쾨플이 주장한 손실 1억 6,000만 마르크는 추정이고 그의 표현은 "마이스너 경제담당과 소니의 아미고 관계"였다.
감사원은 두 거래를 같은 문장으로 지적했다. 두 거래 모두 감정위원회를 사후에야 불렀다고 베를린 주 감사원이 지적했다고 taz가 1992년 9월에 보도했다. 2006년 연차보고는 15년 뒤의 결과를 적는다. 임대료 조정 조항은 소비자물가지수가 10포인트 움직일 때만 작동해 하락을 반영하지 못했다. 메디아테크의 25.05유로는 2004년 상공회의소 조사에서 미테 1급지 상단이 18유로로 내려간 뒤에도 그대로였다. 수백만 유로의 내장공사는 주 예산법 55조와 건설발주규정을 어기고 임대회사에 수의계약으로 줬다. 낙찰 기한을 넘겨 최저가 입찰자가 철회해 14만 8,000유로 비싼 응찰에 낙찰됐다. 행정청은 유명 법률사무소의 조언을 받았으므로 과실이 없다고 답했다. 1993년 유럽 집행위원회의 결과보고서가 그 감사에서 다시 근거로 쓰였다. 집행위도 지하 공간은 더 낮은 임대료를 쓴다고 전제했다는 대목이다.
비평은 개관 전에 적혔고 개관 뒤에 집행됐다. 1996년 10월 11일 소니센터 고층동 정초식 날 taz의 롤프 라우텐슐레거는 "세련된 플라차는 통제되고 감시되며, 장사와 수도가 된 사회에 지저분한 아이들의 자리는 더 이상 없다"고 썼다. 같은 기사에서 문화재 전문가 가비 돌프는 카이저잘이 얀 계획의 "수위실"로 격하됐다고 했다. 카이저잘은 1996년 3월 1,300톤째 에어쿠션으로 약 75미터 옮겨졌다. taz는 거리를 70미터, 비용을 6,000만 마르크로 적고 "문화재 보호자들의 뜻에 반해"였다고 썼다. 1998년 10월 2일 다임러 지구 개관일 우베 라다는 1991년의 경고를 다시 꺼냈다. 도시사가 디터 호프만악스텔름과 전 도시개발담당 미하엘레 슈라이어가 경고한 "도시 안의 도시"가 "오히려 절제된 비판이었다"고 썼다. 헬무트 얀은 자기 엔터테인먼트센터의 준공공성을 당연한 것이 아니라 "도시에 주는 선물"로 본다고 숨기지 않았다. 1998년 11월 taz가 적은 어느 금요일, 상업·은행·보험 노조 조합원들이 오전 11시 15분 아케이드에서 전단을 돌리다 경비와 센터 매니저에게 가택권 위반을 통고받고 퇴거했다. 같은 날 오전 9시 백화점 카데베 직원 출입구 앞 공도에서는 문제가 없었다. 녹색당 의원 클라우디아 헤멀링은 "공공은 이 프로젝트들에 주는 위치에만 있고 이 장소의 공공성을 유지하라는 요구를 전혀 하지 않는다"고 했다. 1999년 4월 23일 장벽 세그먼트 철거 때는 자신을 소유자로 여긴 에리히 슈탕케와 주정부 건설행정이 11시 15분 동시에 출입금지를 선언했다. 녹색당 의원들은 "Can I stay"라고 적힌 조각 앞에 섰다가 연방 소유 구역으로 밀려났다. 동베를린 출신 트럭 운전사의 말을 taz가 받아 적었다. "그때는 사람들이 장벽이 없어져야 한다고 외쳤는데 지금은 그것도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군." 2022년 2월 21일 같은 신문의 베르트 슐츠는 포츠다머플라츠가 "결국 포템킨 마을이 됐다"며 "거리의 삶을 원한다면 공공 공간을 사유화하면 안 된다. 그러면 결국 잠긴다"고 썼다.
설계 쪽의 비판도 당사자에게서 나왔다. 1991년 공모 심사위원이던 렘 콜하스는 도중에 심사위원회를 떠났다고 2차 자료가 적는다. 1992년 9월 12일 taz의 마르틴 키렌은 다임러 건축 공모 직후 얀의 소니안을 깎았다. "블록 가장자리에서 건축 덩어리가 느슨한 벽지처럼 흔들리고 출렁이며, 블록도 공간을 만드는 선도 알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누가 처음 동서 베를린을 하필 그 중심에서 도시설계로 다시 붙여야 한다고 했고 왜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느냐는 질문도 그 글에 있다. 1994년 6월 ARCH+ 122호는 베를린 건축정책이 "지역주의적 민족주의의 모델을 따른다"고 썼다. "베를린 건축"은 "존재한 적 없는 역사적 연속성을 만들기 위한 구성물"이라는 것이다. 필립 오스발트는 1991년 이후 관철된 보수적 구상의 담당자로 건축국장 한스 슈티만과 클라이후에스와 콜호프와 자바데와 노이마이어를 들었다. 1993년 9월 당선자 자틀러는 taz에 "기업의 이익이 도시의 필요를 이기고 있다"고 했다. 정치 책임자들이 저항하지 않았고 그 가운데 "쇼핑센터를 그리 나쁘게 보지 않은 이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설계 권한을 지킨 하세머는 1996년부터 2002년까지 도시마케팅 회사 파트너 퓌어 베를린의 대표로 그 공사장을 파는 "샤우슈텔레 베를린"을 운영했다. 같은 사람이 설계 권한을 지킨 자리와 공사장을 파는 자리에 차례로 있었다.

사진: Gerddanigel, CC BY-SA 4.0, 위키미디어 공용
공사장은 상품이었다. 1995년 10월 라이프치히광장에 선 인포박스는 길이 65.5미터, 높이 23미터의 3층 컨테이너였다. 건설비 1,100만 마르크와 연 200만 마르크의 운영비를 투자자와 건설행정청이 함께 냈다. 2차 자료다. 본체는 무료였고 옥상 전망은 2마르크였다. 1996년 7월 누적 100만 명, 2000년 6월 15일 800만 명이었다. 소장 아리아네 리베크는 소음과 먼지가 명소가 된 이유를 "어린 시절의 꿈이 실현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뮌헨에서 온 형제가 옛 국경선의 잔재를 찾아 공사장을 뒤졌고, 그 중 한 사람은 "사실 아무것도 알아보지 못했다"고 taz가 적었다. 장벽을 지우는 공사가 장벽 관광의 대상이 됐다. 인포박스 옆 분식 매대 주인은 1996년 8월 1일 문이 닫히자 자기가 "역외"가 됐다고 느꼈다.
바인하우스 후트는 세입자 때문에 남았고 세입자를 내보내며 보존됐다. 1912년 와인상 빌리 후트가 연 이 건물은 1958년 영업을 끝냈고, 유족이 티어가르텐 구청에 판 뒤 철거 예정이었으나 "세입자를 배려해 철거가 무기한 연기"됐다. 그래서 1990년에 남아 있었고 다임러는 땅과 함께 "비자발적으로" 사야 했다. 사회주택 임대계약을 가진 세입자들은 공사 소음에 대한 고발과 가처분으로 공정을 반복해 막았고, 다임러는 제곱미터당 2,000에서 2,500마르크의 해지 대가를 제시했다. 1995년 10월 마지막 세입자가 나간 뒤 한 사람만 남아 67제곱미터에 제곱미터당 8,000마르크를 요구하다 1997년 1월 전 슈타지 협력자로 보도된 뒤 1년 뒤 합의했다. 다임러크라이슬러 이사 만프레트 겐츠는 7,000만 마르크의 개조를 "순수하게 경제적으로는 불균형한 지출이지만 포츠다머플라츠에 역사 한 조각을 남겼다"고 했다. 감정위원회는 1991년에 이 건물을 순수익 11만 1,217마르크의 3% 환원으로 370만 7,233마르크로 보고, 임차인 부담 개조비를 조정해 338만 3,763마르크로 평가했었다.
투기를 막는 산정 규칙이 재평가의 해에는 손실 장치가 되고, 땅값의 조건은 임대료로 되돌아오며, 상승분은 다른 나라의 공공이 가져간다
이 구조의 원리는 넷이다. 파는 값을 정하는 규칙이 시장을 못 따라가면 규칙이 손실 장치가 된다. 베를린은 투기를 막으려고 자기 땅을 관청 산정가로만 팔았고 그 산정은 3년 주기의 기준지가에 묶여 있었다. 도시 전체가 재평가되는 1990년에 그 규칙은 감정가의 51.7%를 만들었다. 사후 심사는 값을 되돌리되 시점은 되돌리지 않는다. 집행위는 다임러가 3,383만 마르크를 베를린에 더 내게 했지만, 차액의 대부분은 벨뷰타워 비용으로 인정하고 통일 결정이 아직 없었다는 사정까지 감면 사유로 들었다. 소니 건에서는 계약 전 자료만 쓰라는 베를린의 조건을 받아들였다. 계약 시점에 알 수 없던 것을 소급할 수 없다는 법리는 맞고, 그 법리 아래에서 통일 전의 값은 영구히 정당한 값이 됐다. 땅값으로 못 받은 조건은 공공이 돈을 내는 면적으로 돌아온다. 소니에게 붙인 문화면적 조건은 베를린이 25년간 임대료를 내는 임대차가 됐고, 감사원은 그 임대료의 일부를 부당지출로 판정했다. 그리고 상승분은 땅을 판 공공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공공이 가져간다. 소니센터는 한국 국민연금이 1.88배를 받고 팔았고 지금은 온타리오 지방공무원연금과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반씩 갖고 있다.
같은 질문에 다른 편은 다르게 답했다. 하나의 자산에 값이 셋인 것은 거짓이 아니라 제도의 결과다. 트럼프타워 상가 한 칸이 대주에게 공실 1.3%, 세무서에 공실 17%로 적힌 사례에서 숫자를 만든 쪽은 매번 그 숫자를 받을 상대를 보고 있었다. 소니 땅은 주정부가 받은 1억 110만, 감정위원회 2억 6,000만, 주정부 재계산 1억 3,000만으로 셋이었고 제출 상대가 달랐다. 2015년에 다임러 지구를 산 회사는 뉴욕에서 99년치 지대 대부분을 하루에 선납하고 그 금액을 발표하지 않은 브룩필드다. 당사자가 값을 말하지 않을 때 그 값을 말하는 것은 등기부이거나 경쟁당국이다. 국가의 철도 부지를 두고도 답이 갈린다. 킹스크로스에서 국가는 부지를 지분으로 넣고 완성 9년 전에 팔았는데 베를린은 현금을 받고 끝냈고 그 현금은 도로터널 하나보다 작았다. 한국의 짝은 둘이다. 외환위기 뒤 외국 펀드가 산 서울의 건물들에서 쟁점은 산 값과 판 값의 차이가 아니라 그 차이를 누가 어떤 이름으로 가져가는가였고, 2010년 베를린에서 그 역할을 한 쪽은 한국의 국민연금이었다. 공공이 가진 도심의 큰 땅을 민간에 넘길 때 그 값을 누가 정하는가는 코레일이 땅값 8조 원을 준공 뒤로 미뤄 준 용산 국제업무지구에서도 같은 질문이었다. 베를린에는 그 값을 뒤집는 기구가 밖에 있었고 서울에는 없었다. 다만 그 기구는 값을 뒤집었을 뿐 시점을 뒤집지는 않았다.
확인하지 못한 것을 적는다. 다임러가 3,383만 2,450마르크를 실제로 반환한 시점의 1차 기록이 없다. 용적률 조정금 1,542만 7,500마르크를 베를린이 받았는지도 없다. 소니센터의 공사비 1차 자료가 없고 다임러 지구의 40억 마르크는 2차 1건이다. 2008년 모건스탠리 컨소시엄의 매입가, 2015년 아시아 국부펀드로만 공시된 합작 상대의 지분율과 금액, 2026년 저당증권의 금액과 만기와 금리가 없다. 소니센터를 가진 법인 계열의 연도별 재무제표 109건은 연방관보에 공시돼 있으나 열람하지 못했다. 1990년 8월 주의회 표결과 1991년 11월 도시개발위원회의 회의록 원문, 베를린 감사원의 1992년과 1993년 연차보고 원문, 집행위의 소니 건 종결은 보도자료 IP/93/216과 사건번호 N 662/92로 확인되지만 결정문 전문이 없다. 약속한 주택 약 3,000호가 몇 호로 실현됐는지, 소니 매각 면적 30,900제곱미터와 건축부지 26,500제곱미터의 차이가 어디로 갔는지, 레네 삼각지와 바이스하임 필지의 매각 금액이 없다.
결론을 뒤집을 조건은 넷이다. 1990년 5월 건설주택국 평가의 원문에서 기준지가가 아니라 다른 근거가 확인되면 산정 규칙이 손실 장치였다는 서술이 바뀐다. 용적률 조정금 수령이 확인되면 베를린이 받은 땅값이 6.8% 늘고 용적을 공짜로 풀었다는 서술이 약해진다. 소니센터 법인의 재무제표에서 국민연금 보유기의 배당이 확인되면 1.88배와 9.1%가 그보다 커진다. 2026년 저당증권의 담보인정비율이 공개돼 2018년 추정 79%보다 낮으면 다임러 지구가 빚으로 바뀌었다는 서술에 단서가 붙는다. 2026년 10월 7일 시점 네 기록 모두 없다.
1990년 5월 베를린 건설주택국이 장벽 개방 전 기준지가로 값을 매겼고, 7월 16일 다임러벤츠가 그 값에 61,710제곱미터를 샀다. 1991년 7월 감정위원회가 두 배 가까운 값을 매겼고, 1992년 4월 14일 유럽 집행위원회는 3,383만 마르크를 돌려주게 하면서 통일 결정이 아직 없었다는 이유로 나머지를 용서했다. 소니는 1991년 3월 제곱미터당 2.17배를 냈고 1993년 3월 베를린이 다시 낸 셈이 들어간 범위 안에서 오차로 처리돼 면제됐다. 베를린은 깎아 판 땅값을 1997년에 맺은 25년 임대차로 되돌려 냈고 감사원이 2006년에 그것을 적었다. 그 땅 위의 소니센터는 2008년부터 세 번 전부 팔리고 2022년에 절반이 팔려 13억 5,400만 유로로 평가됐고, 다임러 지구는 2007년 14억에서 2015년 13억으로 팔린 뒤 2018년 11억의 빚으로 바뀌었다. 광장은 사유지이고 가택권은 1998년과 1999년에 집행됐다. 1990년에 ㎡당 1,505마르크로 내놓은 땅의 상승분을 가장 많이 가져간 주체도 공공이었지만, 그 공공은 베를린 시민이 아니었다.
출처
본문의 다임러 매각가와 감정가와 감정 산식과 벨뷰타워 내역과 반환 명령은 유럽 집행위원회 결정 92/465/EEC 전문이고, 조사 개시와 건설주택국 평가에 대한 평가는 보도자료 IP/91/183, 소니 건의 면적과 금액과 종결 논리는 IP/93/216이다. 필름하우스와 메디아테크의 임대차 조건과 부당지출 판정과 "매매대금을 상당히 깎아줬기 때문"이라는 문장은 베를린 감사원 2006년 연차보고 T282~291이다. 다임러 지구의 2007년 매각과 장부가와 되임차, 소니의 2008년 매각대금과 이익, 브룩필드의 2015년 인수와 2016년 지분 매각과 2018년 리파이낸스, 2026년 저당증권 준비는 각 회사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낸 보고서다. 국민연금의 매입과 매각은 하인스와 매디슨의 보도자료, 2022년 거래는 노르웨이 국부펀드 운용기관과 옥스퍼드의 보도자료다. 지구상세계획의 번호와 확정일은 베를린 미테구의 일람이고, 1991년 공모와 조정계획의 법적 성격은 베를린 주정부의 옛 공식 프로젝트 사이트를 웨이백으로 열어 읽었고, 1991년 12월 10일 주정부 결정은 taz의 이튿날 보도다.
1990년대의 정치와 인용은 taz의 동시대 기사이고, 브리튼 집행위원의 감면 사유와 감사원 검사부문장의 설명과 감사원 지적과 사인 거래 단가와 슈트라우프의 통화는 전부 taz 보도 1건에 근거하므로 본문에 그렇게 귀속했고, 1991년 11월 의회 청문의 발언도 taz 이튿날 기사다. 사인 거래 단가와 다임러 지구 공사비와 도로터널 비용과 인포박스 비용과 베를린 부채는 2차이고 등급을 본문에 적었다. 타게스슈피겔 연표는 환수액을 유로로 잘못 환산했으므로 금액은 집행위 원문을 따랐다. 소니센터 지주회사의 손실은 뉴스타파가 독일 연방관보로 확인한 수치를 옮겼다. 법인 등기의 변동은 노스데이터가 공개한 상업등기 이벤트다.
출처 전체(84건) 펼치기
유럽 집행위원회·베를린 감사원·의회·계획
- Commission Decision 92/465/EEC of 14 April 1992 concerning aid granted by the Land of Berlin to Daimler-Benz AG (C 3/91 ex NN 5/91) — EUR-Lex · 1992-04-14
- Commission investigates possible State aid by Land of Berlin to Daimler-Benz AG, IP/91/183 — European Commission · 1991
- Commission closes State aid enquiry into Daimler Benz Berlin site, IP/92/295 — European Commission · 1992-04-14
- Commission terminates Article 93(2) procedure with regard to purchase of land by Sony in Berlin, IP/93/216 — European Commission · 1993
- Jahresbericht 2006, T 282~291 — Rechnungshof von Berlin · 2006
- Drucksache 12/2233, Kleine Anfrage Nr. 2911 Bebauungsplanverfahren Potsdamer Platz (2) — Abgeordnetenhaus von Berlin · 1992-11
- Drucksache 12/0574, Kleine Anfrage Nr. 1250 Weitere Entwicklung im Bereich Potsdamer Platz — Abgeordnetenhaus von Berlin · 1992
- Drucksache 12/2381, Große Anfrage Bauverzögerungen am Potsdamer Platz — Abgeordnetenhaus von Berlin · 1993-01-19
- Plenarprotokoll 12/44 — Abgeordnetenhaus von Berlin · 1993-02-25
- Bebauungspläne Tiergarten (alt), Stand 16.01.2026 — Bezirksamt Mitte von Berlin · 2026-01-16
- Begründung zum Bebauungsplan I-200 Pariser Platz, I-200이 포츠다머플라츠가 아니라 파리저플라츠임을 확정한 원문 — Berlin FIS-Broker · 1996-01-25
- Begründung zum Bebauungsplan II-201da — Senatsverwaltung für Stadtentwicklung, Bauen und Wohnen · 2024-09
- FAQ Grunderwerbsteuer — Senatsverwaltung für Finanzen Berlin
- Jahresabschluss 2015 — Senatsverwaltung für Finanzen Berlin · 2016
- Haus Huth, Obj.-Dok.-Nr. 09050278 — Denkmaldatenbank Berlin
- Fragmente des Grand Hotel Esplanade, Obj.-Dok.-Nr. 09050255 — Denkmaldatenbank Berlin
- Leipziger und Potsdamer Platz, Planungen, Wettbewerb — Senatsverwaltung für Stadtentwicklung (웨이백)
- Wettbewerb, Juryentscheidung — Senatsverwaltung für Stadtentwicklung (웨이백)
- Wettbewerb, Teilnehmer — Senatsverwaltung für Stadtentwicklung (웨이백)
- Planungsgrundlagen, Koordinierungsbebauungsplan — Senatsverwaltung für Stadtentwicklung (웨이백)
- Planungsgrundlagen, Konzept Hilmer und Sattler — Senatsverwaltung für Stadtentwicklung (웨이백)
- Realisierung, Potsdamer Platz, Sony — Senatsverwaltung für Stadtentwicklung (웨이백)
- Realisierung, Potsdamer Platz, debis — Senatsverwaltung für Stadtentwicklung (웨이백)
- Geschichte, Zeittafel — Senatsverwaltung für Stadtentwicklung (웨이백)
- Geschichte, nach 1989 — Senatsverwaltung für Stadtentwicklung (웨이백)
- Planungsgrundlagen, Baulogistik und Energieversorgung — Senatsverwaltung für Stadtentwicklung (웨이백)
공시·회사·공모 자료
- Form 20-F for fiscal year 2007, Note 18 Assets and Liabilities Held for Sale — Daimler AG · 2008-02-27
- Form 6-K, Sony to Sell Sony Center am Potsdamer Platz — Sony Corporation · 2008-02-28
- Form 20-F for fiscal year ended March 31, 2008 — Sony Corporation · 2008
- Form 6-K, Third Quarter 2015 Results — Brookfield Property Partners · 2015-11-05
- Form 6-K, Brookfield Property Partners Acquires Potsdamer Platz in Berlin — Brookfield Property Partners · 2016-01-04
- Form 20-F 2016 — Brookfield Property Partners · 2017
- Form 6-K, Fourth Quarter 2018 Results — Brookfield Property Partners · 2019-02-20
- Form 6-K, Third Quarter 2022 Supplemental — Brookfield Property Partners · 2022
- Form ABS-15G, Exhibit 99.1 KPMG Data AUP Letter, Project Potsdamer Platz — Morgan Stanley Principal Funding · 2026-08-06
- Fund makes new investment in Berlin — Norges Bank Investment Management · 2022-05-20
- Oxford forms partnership with Norges at Berlin's iconic Sony Center in €677 million deal — Oxford Properties · 2022-05-20
- Superhuman lease agreed at Oxford Properties' newly redeveloped Das Center — Oxford Properties · 2025-11-24
- Oxford Properties and Madison International Realty announce acquisition of the Sony Center, Berlin — Madison International Realty · 2017-10-02
- NPS Acquires Sony Center in Berlin — Hines · 2010
- NPS Sells Sony Center Berlin To Oxford Properties — Hines · 2017-10-02
- Factsheet — Das Center am Potsdamer Platz
- Geschichte — Das Center am Potsdamer Platz
- Geschichte — Potsdamer Platz, Brookfield Properties
- Office Leasing — Potsdamer Platz, Brookfield Properties
- Sochribel GmbH, HRB 38768 B, 등기 이벤트 — North Data
- Ergebnis: Potsdamer und Leipziger Platz Berlin — wettbewerbe aktuell
- Wettbewerb Potsdamer Platz vor 25 Jahren — Bauwelt 40.2016 · 2016
- Von Berlin nach Neuteutonia, ARCH+ 122 — ARCH+ · 1994-06
동시대 보도·연구
- Alte oder neue Bauklötzchen? — taz · 1991-05-27
- Für Investoren bleibt nur noch Gesichtsverlust — taz · 1991-11-08
- Hassemer geht auf hundert — taz · 1991-12-11
- Filetstücke zu Kotelett-Preisen — taz · 1992-02-11
- EG verdonnert Daimler zu Nachzahlung — taz · 1992-04-15
- Sony-Gutachten soll im Juni vorliegen — taz · 1992-04-15
- Orientierung am Verkehrswert vor der Maueröffnung — taz · 1992-09-07
- In der Mitte geflickt — taz · 1992-09-12
- Grundstücks-Gutachten widerspricht Sony — taz · 1992-09-17
- Schwankende Werte zum gleichen Preis — taz · 1992-12-23
- Ein Gutachten mit Senats-Auflagen — taz · 1992-12-24
- EG billigt Dumpingpreis — taz · 1993-03-20
- Konzerninteressen setzen sich durch — taz · 1993-09-15
- Einmal gucken für zwei Mark — taz · 1996-08-16
- Kaisersaal wird zur Pförtnerloge — taz · 1996-10-11
- Der Potsdamer Platz als Zitadelle — taz · 1998-10-02
- Öffentlichkeit ausgesperrt — taz · 1998-11-21
- Amüsante Schlacht um letzte Mauerstücke — taz · 1999-04-24
- Auferstanden aus Ruinen — taz · 1999-10-13
- Millionen blickten von der Infobox — taz · 2000-06-16
- Berliner Landesregierung 1990 — taz · 2010-11-16
- Potsdamer Platz in Berlin: Ein Unort wie im Film — taz · 2022-02-21
- Chronik: Daimler Benz am Potsdamer Platz — Der Tagesspiegel
- Milliardendeal: Berlin entgeht beim Verkauf des Potsdamer Platzes viel Geld — Der Tagesspiegel · 2016-01-05
- Investor Brookfield zahlt Grunderwerbsteuer für Potsdamer Platz — Handelsblatt · 2016-01-06
- Quartier Potsdamer Platz wechselt den Besitzer — FAZ · 2015-10-13
- LBBW backs Brookfield's Potsdamer Platz redevelopment with €1.1bn loan — IPE Real Assets · 2019-02-04
- KIC joins Brookfield on Potsdamer Platz purchase — PERE · 2016
- 국민연금 투자 소니센터 지주회사, 매년 수백억 원 결손 — 뉴스타파
- 국민연금, 베를린 소니 센터 7000억 차익에 매각한다 — 한국경제 · 2017-10-04
- 연금공단, 독일 베를린 명물 '소니센터' 8500억원에 매입 — 서울신문 · 2010-04-26
- Tiergartentunnel B 96 Berlin — DAUB
- Verschuldung des Landes Berlin — haushaltssteuerung.de
- Potsdamer Platz — Wikipedia (독일어)
- Lenné-Dreieck — Wikipedia (독일어)